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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men, Dec. 17th.
연말을 맞아 짧게나마 업무와 일상을 떠나 휴가를 청해본다. 이렇게 휴가를 써대도 올해 휴가의 절반도 다 못 쓰고 반납한단건 참 슬프기 그지없다. 그런다고 특근 수당이 더 나오는 것도, 내 실적이나 실무평가가 올라간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울적한 마음 술으로라도 달래봐야지.
Boon Gueze Mariage Parfait 2013 (Lambic, 8%)
분의 괴즈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5살의 빈티지 람빅, 병입 이후로도 3년은 족히 묵었으리라. 묵힌 람빅의 저력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다. 3분수만큼 마시기 편하면서 밸런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렸거나, 깐띠용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 나이 든 람빅은 매력이 가득하다. 다양한 요소를 잘 녹여내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자극적인 신 맛을 위시로 한 강한 브렛의 향은 식초충을 미소짓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다음엔 10년 묵힌 람빅을 마셔보리라.
Pixie dust (Kingpin, NEIPA, 9%)
트리플 뉴잉이파. 아주 신선한 IPA의 기분 좋은 산뜻한 풀내음, 홉 향기가 강하다. 오렌지 필, 자몽을 위시한 새콤한 시트러스 향도 인상적이다. 금귤, 열심히 조물락거린 귤의 달콤한 맛과 함께 망고, 코코넛 워터, 파파야 등의 녹진한 열대과일의 느낌, 물러져버린 메론, 복숭아의 진한 시럽같은 단 맛도 뒤따른다. 크리미하고 고소하기까지 한 단 맛은 약간 요구르트같은 기분 나쁘지 않은 발효취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단 맛이 내 기준에는 많이 강하긴 하지만 9도의 도수임에도 알콜 부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달콤한 과일과 홉의 주스.
Dekadents (P?haste, Imperial Stout, 11.2%)
에스토니아에서 넘어온 임스. 그 미남미녀 많기로 유명한 발트 삼국의 에스토니아 맞다. 좀 변태스럽지만 또한 (의외로) 잘 만든 스톤의 조코베자 대신에 시켜본 조금 생소한 임스. 임스를 위시한 다양한 스타우트, 슈바르츠비어 등에서 종종 경험하고는 하는, 장 발효취와 비슷한 간장, 된장내가 느껴진다. 대부분의 경우 달갑지 않은 향이다. 끈적한 몰트, 흑설탕, 바닐라, 다크 초콜렛과 함께 바싹 구워낸 흑빵의 조금은 달고, 또한 시큼털터름한 냄새가 난다. 의외로 11도를 넘는 알콜 도수는 혀에서 부즈의 형태로 좀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도수에 비해서). 약간의 산미를 아직 가지고 있는 로스트한 원두의 풍미를 길게 남긴다. 근데 그 원두가 아주 잘 숙성된 최상급의 원두로 느껴지진 않는다는 흠이 있다. 살짝 탄 호박피칸 파이같은 이미지도 남는다.
솔직히, 스타우트를 매력적으로 잘 만드는 크래프트/마이크로브루어리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조차 없는 까탈스런 잣대를 들이대곤 하지만, 이 역시 꽤나 수준급의 임스임은 틀림없다.
마지막은 간만에 혼밥혼술을 면하게 해 준 내 친구. 저녁식사때부터 나와 함께 해 주었지만 식사 후 펍에서는 피곤하다고 사진촬영을 거부하고 계속 뒤에서 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친구비가 부족했었나보다.
(이 여행일기는 2일차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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