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와 옷깃같은 옷의 가장자리에 검은 천을 대어 입는 것을 말합니다.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조 예종이 이 심의를 입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널리 입었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치를 내어주게 됩니다.
않기 위해 덧대놓았다고 하네요.
차츰 여러색의 천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네. 저 좋으라고 넣는 짤입니다.
더 나아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하층민이 도포를 입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고 하네요.
가장 많았고 그 형태는 고구려때 쓰던 찰갑의 양식을 계승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갑옷의 장단점을 따져 실용성이 좋은
두정피갑이 유행하게 되는데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이 갑옷은
원나라의 갑옷 형식을 그대로 따르는게 아니라 실용성있게 변형되고
재료와 문양이 달랐다고 하네요.
쾌자
화보는 차마 진짜 부부라기에 갈라놓지 못하고...여성분도 함께 모셔왔습니다.(깊은 한숨
아무튼 사진상에서 남자분들이 입은 소매없는 겉옷을 쾌자라고 하는데
쾌자이외에도 답호, 작자, 더그레, 호의라고도 불렸던 이옷은
군복의 일부였다가 차츰 무관과 문관을 가리지 않고 평상복으로 입었던 옷입니다.
정약용의 아언각비를 보면 쾌자는 괘자가 잘못 알려졌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옷은 왕과 왕세자, 왕자를 가리지 않고 두루마기위에 입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남자 아이들의 돌복으로 입혀집니다.
라고는 하는데 돌잔치를 안가봐서 모르겠네요.
혹시 어느분 돌잔치 갔다가 아이들이 쾌자 입을거 보면
아이고 쾌자가 참 잘어울리는 구나(쓰담쓰담 해주고 오시면 되실듯 합니다.
철릭
저 좋으라고 올리는 짤2222
여기서 한가지 문제 나갑니다!
철릭은 한벌 이다 아니다! OX로 정답을 맞춰보세요!
두구두구두구두구~
철릭은 두벌로 만든 한 벌 옷입니다!
상의와 하의를 따로 만들어 허리를 고정시키는 형태의 철릭은
조선조 왕을 비롯해 문무관들이 착용하던 직령포로
하의인 상에 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철릭은 첩리, 천익, 철익등으로 표기 되어있기도 한데
초기에는 겉옷과 밑받침 옷의 구분이 있었고 또 궁중의 사람들이 입는것
무관만이 입는 것 마다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차츰 하나의 표기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고려 중엽부터 입은 것으로 보이는 이 철릭은
왕이 바깥으로 거동할 때 위군사들이 착용해야 하는 옷이었고
무관들이 몸을 움직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입었던 옷이었습니다.
무관들만이 융복으로 입던 이 철릭이 문관들에게도 선호된 시기는
전란이 잦던 병자호란 이후라고 합니다.
소매도 처음에는 넓은 형태였지만 차츰 좁아져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지금 우리의 저고리 소매만큼 좁아졌다고 합니다.
구군복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위에서 언급한 철릭과
이 구군복!! 구군복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복의 섹시함은 유교사상이 강했던 조선에서도 얄짤 없는 겁니다!!
...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했네요...
아무튼
구군복은 갑주안에 입기도 했던 무관의 대례복으로
모자인 전립, 검은 두루마기에 붉은색 안감을 대고 붉은 소매를 단 뒤
옆 솔기를 튼 동달이, 소매와 깃이 없으면서 뒤트임을 준 전복, 광대와 전대를 가슴에 두르고
신분증인 병부를 차고, 가죽으로 만든 화살통인 동개를 맨뒤
수구와 환도, 등채를 들고,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인 목화를 신는 차림을 통틀어 구군복이라고 합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광대, 전대, 전복, 동달이
이 구군복은 무관이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할 수 있는 차림이었지만
왕이 행차를 할 때에는 문관과 무관 모두 구군복 차림을 했습니다.
고종시절 을미개혁을 하면서 신식군복을 들여와
육군복장규칙을 세우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지금! 경복궁에 가면! 이 구군복 차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걸어 나와도 멋있고 가만히 서있어도 섹시하며
흙먼지가 날리는 가운데에도 품위가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도 반한 구군복!!
정말 구군복은 더럽...The Love♥♥♥
내 마음속 10점 만점에 100만점 ㅠㅠㅠ
그러니까 여러분 한복의 아름다움을 설명할때
꼭 구군복을 소개하세요...진립니다...진짜로...
아무튼 이만큼 길게 왔으면 다 끝났어야 할 것 같은데 저한테 자료가 남았네요?
왼쪽에서 부터 순서대로 석, 화, 이
신발은 그 모양과 용도에 따라 석?, 화靴, 이履로 나뉩니다.
석은 왕과 왕비가 예식에서 신는 신으로 겹창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붉은색이 일반적이고 가장자리에 검은 선을 두르고 수를 놓아 장식하는 형태였습니다.
왕의 조복인 강사포에는 흑색의 석을 왕비의 대례복에는 청색의 석을 신었다고 전해집니다
화는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모양으로 신목이 붙어있는 형태로
신라에서는 이 화에 귀금속 장식을 하는게 유행이었고
고려에서는 관복을 개정하면서 흑피화를 신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기록에서 흑피화를 왕과 왕비, 왕세의 공복이나 법복에
흑피화를 신을 기록이 있고 조선말기에는 흑피화 대신 목화를 많이 신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화와 달리 신목이 없는, 우리가 아는 고무신 형태의 신을 이야기 하는데
조선 전기에 흑피혜와 흑리를 관복에 함께 신었던 기록이 있고,
이후 부녀자들의 사이에서 당혜나 운혜로 발전 되기도 했습니다.
6. 모자
어떤 은혜로운 분의 덕으로 수고를 좀 더네요.
위 그림은 신분의 순서 상관없이 나열되어있지만
전통적으로 어떤 모자를 써왔는지 대략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쪽의 검색 기능을 이용해 주세요...
7. 각대와 대
각대
관리들이 관복에 갖춘다해서 품대라고도 불린 이 각대는
품계에 따라 그 재질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품에게는 혼례복에도 쓰였던 서대
정 2품은 삽금대 종 2품은 소금대
정 3품은 삽은대 종 3품과 4품 은 소은대
5품에서 9품까지는 흑각대를 썼습니다.
서대는 무소뿔, 삽금대는 보상화문을 새긴 금색 띠
삽은대는 역시 보상화문을 새긴 은색 띠 소금대와 소은대는
무늬를 넣지 않는 띠를 말하고 흑각대는 검은 무소뿔을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 대는 관복 허리에 겨드랑이 아래 소매의 진동과
무 사이에 옷감이나 실을 이용해 끈이나 고리를 만들어
고정시키는 형태였습니다
대(띠)
왼쪽에서 부터 세조대, 동다회, 광다회, 교대
이 띠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의복이 없다고 봐야 할 만큼 다양한 의복에 사용되는데요.
벨트의 역할을 했던 띠인 이 대는 관복용과 편복용으로 나뉘고
세조대는 견사를 여러겹으로 합사한 끈으로 둥글고 가는 모양으로
도포, 창의같은 곳에 가장 많이 이용되었고
굵기는 0.8cm 길이는 대개 370~400cm입니다.
품계에 따라 당상관은 홍색, 자색을 쓰고, 당하관은 청색, 녹색
서민은 흑색을 쓰고, 상주는 백색을 썼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동다회는 세조대보다 굵고 납작한 모양에 끝에 딸기술을 맺어 달고
간편하게 입는 관복용 포에 사용하며 역시 계급에 따라 색을 달리했고
광다회는 동다회보다도 폭이 넓으며 문, 무관의 융복에 쓰는 띠입니다.
안타깝게도 광다회를 짜는 기법이 단절 되었지만 기본 12사 광다회를
만드는 기법을 일본에 가서 배워온 분이 있어 다시 그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고 하네요.
교대는 상복에 매는 삼띠로 상복에 따라 그 재질을 달리했고
염을 할때 수의에 두르기도 하기 때문에 오색실로 만든 것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8. 보와 흉배
흉배는 왕이나 왕세자, 왕비만이 사용하는 보로
왕이나 왕세자는 원형의 보에 금실로 용을 수놓고, 왕비는 봉황무늬를
넣었고, 가슴, 등, 양어깨에 네개를 부착하며
왕의 용은 발톱이 다섯, 왕세자는 발톱이 넷이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오조룡을 수놓은 오조룡보입니다.
흉배는 백관의 단령포에 사각형모양으로 수를 놓은
것으로 관품에 따라 넣는 무늬가 다르고 여러번 변경되었다네요.
세종때 이 흉배의 제정이 처음 논의 되었는데
그때에는 황의께서 검소한 기풍에 위배된다 해 반대한 기록이 있고
단종때 양성지에 의해 처음 변경된 기록이 있는데
대군은 기린, 도통사는 사자, 제군은 백택, 문신 1품은 공작
2품은 운학, 3품은 백한, 무신은 1품과 2품 모두 호표, 3품은 웅표,
대사헌은 해태로 정하고 3품 당상관 이상만 흉배를 붙이게 했지만
연산군에 이르러 사슴, 멧돼지, 거위, 기러기등의 문양을 추가해
9품까지 흉배를 붙여 품계를 구별하게 했다가
영조때에 다시 간략하 한뒤 고종때까지 시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패기 만만하게 잉여로운 시간을 죽이자고 시작한 글이
마무리 되려니 지쳐 쓰러질 지경이네요...
이렇게 저의 토요일은 사라지나 봅니다...
하지만 뿌듯하긴 하네요...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열심히 일요일을 불사르기로 하고
이 여징어 물러갑니다!
여러분 좋은 주말 되세요!!!
또...
또 볼까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