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똥볼 덕분에 나치 전범이 사형을 피한 사건

1942년 9월 12일, 나치 독일 해군 소속 유보트가 영국 소속의 수송선 HMS 라코니아를 격침하게 됨.
근데 해당 함선에는 이탈리아군 포로들을 옮기던 포로 수송선이란걸 뒤늦게 확인한 후 함장은 곧바로 상부에 연락해서 구조 지원 요청을 요청함.
이 요청을 받은 그 유명한 되니츠 제독은 유보트 7척을 파견하는것은 물론 연합군 측에 해당 지역에 대한 공격 중단과 구조 동참 권고함.
동시에 당시 라코니아함을 격침 후 구조에 들어간 유보트의 함장이던 베르너 함장은
"조난당한 라코니아호의 탑승자들을 구출하는 배가 있다면 본 함정은 그 배를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본 함정이 함정이나 군용기로부터 공격받지 않는 동안만 지속될 것입니다. 또한 본 함정은 현재 193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라코니아호와 본 함정의 위치는 남위 4도 53분, 서경 11도 26분입니다."
라는 무전을 계속 반복하며 자신들은 격침된 함선의 생존자를 구조중이며 구도 동참과 그동안은 공격하지 말라며 자신의 위치를 평문으로 공개하며 적대 의사가 없다는걸 밝힘.
그러나 이 무전을 들은 영국군은 이걸 기만이라 생각해서 반응하지 않았는데 문제라면 미군이였음.
생존자들을 구조한 유보트들에게 미군 소속의 B-24 폭격기가 접근해서 갑판에 가득한 생존자들과 부상한채로 적십자기를 내걸고 발광신호를 계속 반복한걸 확인했음에도 첫 조우 후 30분 후 선임 장교 리차드슨 대위는 독일군은 신뢰할 수 없다며 공격명령을 내린것.
결국 투하된 5발의 폭탄이 떨어진 뒤, 폭탄은 유보트는 커녕 애꿋은 견인중이던 구명선만 맞춰버렸고 유보트들은 그 즉시 생존자들과 견인 중이던 구명선들을 포기하고 잠항해버렀는데
이 사건은 결국 되니츠 제독이 격분하며 앞으로 유보트의 생존을 위해 생존자 구조는 오로지 중요한 인물만 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는 '라코니아 명령'으로 이어지게됨.
이후에 전쟁이 끝나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영국은 이 라코니아 명령을 영화에 자주 나오는것처럼 격침된 배의 생존자들을 무차별 학살 명령이라고 주장하며 되니츠 사형을 얻어내려함.
그러나 정작 당시에은 미국과 영국 모두 아무런 처벌없이 묻어버린 라코니아 사건이 다시 재부상되자 당시 라코니아함이 침몰할때 영국 장교들이 탈출시 혼란을 이유로 이탈리아 포로들 구역을 잠궈버려서 못나오게 만든게 밝혀졌고
게다가 폭격기가 명백하게 당시에 갑판 가득하던 생존자들과 적십자기, 견인중이던 구명선을 보고서도 일방적으로 폭격을 가한점, 그리고 생존자 구조는 엄연히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라 함의 생존을 우선시하라는 라코니아 명령이 생존자 학살 명령이라는 주장은 수세에 몰림.
거기다가 미국쪽에서도 니미츠 제독을 포함한 미 잠수함대가 재판과정에서 되니츠의 편을 들어 집단적 반론에 참가하는 상황까지 벌어짐.
이 과정에서 심지어 '저들은 우리보다 더 깨끗하게 전쟁했다.'라는 발언까지 미 잠수함대쪽에서 나오며 되니츠를 지지했고 결국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되니츠 제독은 사형을 피하게 됨.




되니츠 사형 근거가 '유대인 강제노동'이었던가.
본인은 몰랐다하지만, 당시 독일 노동상황상 강제노동 없이 해군쪽 물품 생산이 불가한걸 모르진 않았다던데.
애초에 사형도 안당했고 10년형받고 복역하다 나왔음. 소위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도 안당함
왜 독일군을 신뢰하지 못했나?
그동안 독일군은 적십자가 그려진 함선은 잘만 공격해서 침몰시켰고 본인들은 적십자 그려서 민간 함선인 것처럼 '위장'해서 연합국 공격했던 사례가 있어서
이런거보면 명분이라는게 진짜 중요하다는걸 알 수 있음.
명분은 사실 실리와 한 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