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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무도우.. | 25/01/09 15:17 | 추천 10 | 조회 50

[유머] 황희 관련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쉴드 절대 못 치는 사건 +50 [6]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910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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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9년 6월 21일 무인 3번째 기사 참고

 

 

세종대왕 시절에 서달이라는 사람이 있었음

 

서달의 집안은 어마무시했는데 아버지인 서선과 집안 어르신들은 국정을 주도하는 양반 계층인 문반이었고

 

거기다 그 유명한 황희가 서달의 장인 어르신이다보니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됨


그래서인지 서달은 목에 힘을 주며 돌아다니는 양아치 재벌 2세 같이 행동해왔던 것으로 보임 

 



현대로 치면 재벌 회장 일가이자 거대 정당의 최고 원로의 아들이며 국회의장이자 사위였다고 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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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서달이 어머니를 모시고 대홍현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창현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고을 아전이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자 그가 인사를 하지 않고 도망갔다고 화를 내며 

 

종들을 시켜 아전을 잡아오게 시키면서 사건이 터짐

 

아전인 표운평은 서달의 종들에게 두드려 맞고 서달 앞으로 끌려왔는데

 

이 때 서달이 어리둥절해 하는 표운평을 보고 술을 마셔 정신 못차리는 것 같다며 더욱 화를 내며

 

종들을 시켜 계속 패라고 시켰고 결국 표운평은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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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연하게도 표운평의 집안은 이 사건을 고발하였고 곧 초기 감사를 맏은 조계생이 

 

지직산현사 조순과 온수 현감 이수강을 시켜 조사하였고 신창이라는 곳에서 국문을 하였음

 

 곧 서달이 이 사건의 책임자였다는 것을 알아내었고 보고서만 올렸고

 

이 때 관노를 통해 조서를 감사에게 보내면서 거의 다 끝났는데...

 


마침 황희가 나타나 표운평 집안과 화해를 주선 시켜달라고 

 

맹사성(당시 사건 지역의 판부사이고 신창이 고향임)에게 청탁을 함

 

( 이미 터진 살인 사건에 화해한다고 감형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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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표운평의 형 표복만이 마침 서울에 왔기에 맹사성이 그를 불러내기 위해 

 

'신창 고을의 풍속을 아름답지 못하게 하지 말라'며 곱게 포장된 협박을 하며 화해를 주선함

 

그리고 신창의 현감인 곽규와 살인 사건을 조사한 조사관이자 온수 현감 이수강을 

 

황희가 따로 만나 서달이 귀한 외아들이라며 말하며 동정을 구했음

 

또한 이웃 고을 수령인 현감 노호 또한 나섰는데 노호는 서달의 아버지인 서선의 사위였으니

 

곧 현감 곽규와 내통하여 보고서를 가로채었고 사람들을 보내 호소를 하였다고 함

 

여기서 또 강윤이라는 자가 또한 끼어들었는데 서달의 어머니인 최씨의 혈연 관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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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은 개인적으로 일을 끝내자며 나서며 형인 표복만에게 그 뇌물을 받았고

 

곧바로 한참 분노와 슬픔에 잠겨 있을 표운평의 집에 찾아가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 말을 하길

 

 

"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고, 본고을 재상과 현임 수령의 명령을 

 

아전으로서 순종하지 않다가 나중에 몸을 어디다가 둘 것이냐 " 


라고 말하며 사건을 개인적으로 덮어두자고 함

 

 

그렇게 협박 반 고을 카르텔 반을 섞어서 설득하며 

 

결국 개인적으로 은원을 해결했다는 사홧장을 표윤평의 아내로부터 받아냄

 

다시 조사를 한 현감 이수강이 다른 조사관인 현감 조순을 꼬드겨 다시 증언을 모았음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끼어들면서 사건을 조작하여

 

 

모든 사건의 책임은 서달이 아닌 다른 이에게 책임을 돌렸는데

 

결국 표운평을 때려죽인 종들의 우두머리인 잉질종이 모든 원흉으로 바뀌게 됨

 

감사인 조계생과 충청도 도사 신기가 '진짜 최종 Final 보고서 pdf '.를


보고 받았은 뒤 별 의심 없이 그대로 형조에 올렸고

 

형조 좌랑 안숭선은 보고서를 받고 7개월간 미루다 참판 신개에 넘겼는데

 

신개 또한 사건을 자세히 보1지 않고 서달을 방면하고 잉질종을 구금한 뒤 최종 결정권자에게 넘기며 사건이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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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짜로 이렇게 그냥 사건이 끝날 것이었으면 아예 세종대왕님이 언급도 되지 않고 끝났을테지만

 

당시 사건을 최종적으로 보고받아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 세종대왕님께서

 

사건의 조서가 들어온 후 곧바로 이상함을 눈치채고 '직접' 수사를 시작하심

 

그래서 다이렉트로 의금부에 시켜 재수사를 시작하였고 곧 15명의 공범자들을 죄다 털어내 자백을 받아냄

 

결국 이들의 형벌은 이랬음

 

 

맹사성(우의정) / 황희 (좌의정) 파면

 

서선 (형조판서, 서달의 아버지) 직첩 회수 

 

* ( 직위 해제라고 보면 됨. 지금 보면 겨우? 라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국정을 주도하는 정당의 당대표급 최고 원로급 인물이 한순간에 나가리 됬다고 생각하면 됨 )

 

신개 ( 형조판서) 귀양

 

조계생 ( 대사헌 ) 귀양

 

안숭선 ( 형조좌랑 ) 귀양

 

이수강 ( 온수 현감 ) 곤장 100대 / 귀양

 

조순 ( 지직산현사 ) 장100대 / 3년간 노역을 하고 노역금은 벌금으로

 

이운 (직산현감)  장100대 /  3년간 노역을 하고 노역금은 벌금으로

 

윤환 (목천현감)  장100대 / 3년간 노역을 하고 노역금은 벌금으로

 

노호(대흥현감, 서달의 처남) 장 90대 / 2.5년 노역하고 노역금은 벌금으로

 

곽규 (신창현감) 장 100대 3년 노역

 

강윤 (신창현감, 서달의 친척) 장 100대 3년 노역

 

신기 ( 충청도 도사) 장 100대

 

그리고 이 사건의 주범인 서달은 원래 교수형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외동아들인지라 세종대왕님이 자비를 베풀어서 사형은 면하였고

 

장 1백대와 3천리 정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보내고 벌금형을 선고하심

 

 

나중에 황희가 다시 요직으로 돌아왔듯 서선과 신개, 조계성 등등 일부 관련자들이 돌아오는데

 

귀양 중에서도 머리에 열 좀 뺴고 나중에 다시 불러줄게 라는 식의 정치적 귀양이 있어서

 

조선시대 당시 능력이나 총애를 받거나 집안이 좋으면 귀양 갔다가 요직에 복귀하는 일은 흔했음

 

 

아무튼 이 일로 그동안 황희에 대해 떠돌던 수많은 뇌물 수수 의혹이 폭발하면서

 

황희가 살아가는 내내 탄핵의 주요 사유가 된 '황금대사헌' 뇌물 의혹과 함께


사위 서달 사건이 항상 뒤따라 다녔음

 

계속된 고발들로 인해 황희를 비롯한 사건의 관계자들이 불만을 표하거나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세종대왕님이 

 

"야 그러고보니 니네 살인, 뇌물, 꽌시짓하던 옛날 일 생각나냐? "라며 은근히 협박하며 적절히 컨트롤 하였음

 

그러면서 다른 신하들의 탄핵과 재수사, 재 처벌 청원이 올라오면 적절히 쉴드를 쳐가며 

 

채찍과 당근으로 다스렸고 결국 이들 모두 세종 임기 내내 끌려다녀야 했음

 

 

세종대왕이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이새끼 이걸로 평생 노예 각이다 하면서 부려먹은 것에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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