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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 18/12/16 00:35 | 추천 107 | 조회 2807

유진우가 해방되는 길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 +107 [18]

디시인사이드 원문링크 https://m.dcinside.com/view.php?id=superidea&no=166845


생각 :

유진우가 해방되는 길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



이유 :

오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5회를 보고 나니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떠오름.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주인공 도리언은 대체적으로 사회적 체면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음. 어느날 제 외모가 아름답다는 걸 자각하게 되면서 유미적 쾌락주의에 빠져들게 됨. 나아가 영원히 늙지 않는 제 초상화를 질투하며 초상화 속 아름다움과 영혼을 맞바꿈. 덕분에 도리언은 불멸의 미와 젊음을 얻지만, 초라하고 악한 자아는 초상 속에 박제되어 버림. 쾌락에 탐닉할 수록 초상화는 더욱 빨리 늙어가는 메커니즘. 그런데 이러한 초상화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 몇 차례 이어지게 되면서 초상화가 점점 추악하고 잔혹스럽게 변해 가자, 도리언은 (일종의 죄책감으로) 더 이상은 이런 초상화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초상화 속 인물을 칼로 찔러 버림. 하지만 정작 죽어 버린 건 도리언. 나중에 하인들이 그의 방으로 찾아 갔을 때 그들이 맞닥뜨린 건 아름다운 외모의 초상화 아래 늙고 추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도리언이었음.


어떤 이들에게 예술은 현실과 분리된 채 존재해야 하는 것. 예술은 실재보다 과장되거나 왜곡되어야 하는데 특히 유미주의자들에게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함’. 현실의 고단함과 고통, 추함 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건 예술이 아님. 이런 맥락에서 도리언 그레이가 비극으로 치달을 건 현실에서 저지른 죄의 댓가를 뒤늦게 치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버린 욕망 그 자체에 있음.


게임도 현실과 분리된 예술의 일종이라고 한다면 유진우와 차형석도 도리언 그레이가 그러했듯 현실과 게임(예술)의 경계를 흐려 버린 욕망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는 중이라 볼 수 있음. 그들의 전투가 끝나지 않(못하)는 이유는 게임(예술)을 게임(예술)으로 즐긴 게 아니라, 현실에서 해소되지 못한 복수에의 욕망을 게임(예술)에 투사했고, 그로 인해 억압된 자아가 게임(예술)에 박제되어 버렸기 때문.


현실 속 도리언 그레이 - 초상

현실 속 유진우, 차형석 - ar 게임


게임(예술)의 측면에서 봤을 때 플레이어가 레벨업을 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는 건 매뉴얼대로 행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행위자가 현실세계에서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는 건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로 인식함. 정세주와 마르꼬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개인적 원한이 있을 것임. (그것도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엄청난) 뭐, 현실과 게임(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증강현실게임(ar)이 원죄라고 볼 수도 있고.


아무튼 정리하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플레이어들의 억압된 욕망 때문에 현실과 게임(예술)의 경계가 붕괴되면서 모든 게 꼬여 버린 이야기로서, 유진우가 게임에서 해방되는 길은 차형석이 아니라 스스로를 죽이는 것 뿐이지 않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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