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라 불리었던 영국 여왕의 국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베르트 국서]
빅토리아 여왕이 그의 외모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청혼한 것으로 유명한데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서툴러 빅토리아 여왕의 애정공세를 조금 떨떠름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결심하고
자신의 국가 독일에서 그녀가 지배하는 영국으로 데릴사위로써 가게 된다.
이때 영국에선 알베르트(이하 앨버트)를 보고
'여왕의 두툼한 지갑을 노리고 왔다' 며
모욕을 주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 불러댔다.
여기에는 그 당시 귀족들이 앨버트의 행실을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한 것도 한 몫하는데
당시 영국 귀족들은 문란하고 천박한 성생활에 파티생활을 미덕이랍시고 살아왔는데
앨버트는 그런 지저분한 생활을 싫어하는걸 넘어 혐오를 했다.
때문에 이런 앨버트를 위선떠는 놈으로 취급하며 되려 더러운 놈 취급을 했다.
거기에 당시 영국 귀족 남성에게 있어
두집 살림 세집 살림하는건 남자다움의 상징과도 같았는데
이역시 앨버트는 극도로 혐오하며 빅토리아 여왕 한 명만을 죽을때까지 바라봤다.
거기에 별종이라고 불리는 앨버트의 행동이 더 있는데
첫번째 파티를 싫어했다.
당시 귀족들은 밤늦게까지 파티를 하고 점심 쯔음에 일어나 식사를 먹는것이 보통이었는데
앨버트는 그런 파티문화까지 매우 경멸하였고 해가 떨어지면 아내와 잠에 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였다.
두번째 아랫것을 존중했다.
복도를 청소중인 하녀한테도 귀부인에게 인사하듯 모자를 벗고 경어로 인사를 건네곤 했다.
이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던 자신의 신념이기도 해 죽을때까지 이를 지켜 위선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했다.
빅토리아 여왕과의 관계도 매우 금슬이 좋아
둘 사이에 아이가 9명이나 되었고
빅토리아 여왕도 앨버트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었다.
거기에 빅토리아 여왕이 임신을 하면 안그래도 까칠한데(남편은 제외)
정말 히스테리의 화신같은 그 무언가가 되었다.
앨버트가 눈에 안보이면 불안해하며 앨버트를 찾았고
앨버트는 이에 화답하듯 빅토리아 여왕을 항상 번쩍들어 공주님 안기로 안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우습게도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앨버트가 화를 내는 상황이었는데
왠만하면 분노를 하지않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화를 내게되면 자신이 풀어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고
재화에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고
명예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부부싸움으로 인해 앨버트가 분노한 일이 있는데
앨버트가 자신의 방 문을 걸어잠그고 칩거하자
빅토리아 여왕이 안절부절하다 여왕의 체면이고 뭐고 내다버리고
먼저 앨버트의 방문을 두드리자
볼멘소리로 앨버트가 "누구요?" 하고 물으니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여왕이에요" 라고 하자
앨버트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빅토리아에요" 라고 하자
이번에도 앨버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빅토리아가 더 조급해하며 뭐라고 해야할지 한참 고민하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내에요"
라고 대답하자
이내 문이 열리고 앨버트가 환하게 웃으며 빅토리아 여왕을 꼭 끌어안아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잠시
앨버트 국서는 결혼 20년이 되는 해에 사망한다.
사망원인은 장티푸스로
빅토리아 여왕은 국서의 죽음에 며칠간 오열을 했으며
빅토리아 여왕은 죽을때까지
국서의 죽음으로 부터 40년이 넘는 세월을 상복차림으로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슬픔이 어느정도인지는
둘을 이어줬던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1세에게 보낸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저의 행복은 끝났습니다. 제게 이 세상은 없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뒤주는 안했는데 뒤주만 안했음
영조는 최소한 금강산 설악산 살면서 영의정한테 보고하러 찾아오라 하진 않았으니
영국에서 가장 신사다운 사람중 하나지만 정작 영국인은 아니었던...
참고로 죽기 직전에 마지막 활동이 방탕하게 노는 아들놈 꾸짖는다고 비오는 날 외출한거였는데 그것때문에 몸이 크게 상했음
그래서 빅토리아는 아들을 죽을때까지 용서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