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께서 남긴 원균에 대한 기록 특징.jpg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는
원수사, 경상 우수사라고 불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원균의 폐급력을 꿰뚫어본 충무공께서는...
1597년 5월 7일부터는 아예 '흉측한 자(兇公)'로 가감없이 적은 데 이어,
5월 8일에는
이경신(李敬信)이 한산에서 와서 원흉(元兇)의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가 데리고 온 서리(書吏)에게 육지로 가서 곡식을 사오라며 내보내 놓고는 그의 처를 겁탈하려고 하자 그 여자가 악을 쓰며 듣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고함을 질렀다고 하였다.(중략) 원이 온갖 계략을 다 써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역시 운수 탓인가. 그가 바치는 뇌물 짐이 서울로 가는 길을 연달아 잇고 있으면서도 날이 갈수록 나를 헐뜯고 있으니 그저 때를 잘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등등 사무적이고 딱딱한,
좋게 말해 무인다운 풍미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담백하기 그지없는 난중일기에서조차 충무공의 빡침이 묻어나오는 글로 욕해댈 정도로 내츄럴 본 씹트롤이었다.




원흉의 존재 의의는 이순신 거품론의 반박 증거로서일 뿐이다
스트레스의 원흏인데 저정도도 많이 참은거지
원흉있을땐 사실상 무게추달고 전쟁한거
처음에는 경상우수사가 자기 함대를 자침 시키고 우리에게 피난을 왔다고? 일단 기본 방위전략 대로 한거니까 경상우수사는 할일을 한거지. 괜히 기죽지 말라고 잘해드려야겠다 였다고 하지. 그런데 막상 지내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