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종 홍타이지의 조선 조총병 칭찬과 그 실제 이유.jpg
병자호란이 끝난 후인 1637년, 청의 황제 홍타이지는 금주(錦州)를 지키고 있던 명의 장수 조대수(祖大壽)에게 서신을 보내었다. 이 서신에서 홍타이지는 조선의 군사에 대해 '기병들의 전투 능력은 형편없었으나 법도를 어기지 않았으며 보병전과 조총에 능하였다."라고 평가하며, 자신이 싸운 조선군에 대해 서술했다.1
이러한 서신의 단락은 이전에 구범진 교수가 쓴 『병자호란 : 홍타이지의 전쟁』 이라는 학술 서적에서 다루어 지면서 대중적으로도 적지 않게 알려졌으며2 그것이 확대 재생산 되면서 인터넷 온라인 상으로도 꽤나 널리 퍼지게 되었다.
"홍타이지가 조선의 조총병들의 실력을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그것은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에 큰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많으나, 어째서 그 이야기가 홍타이지의 글에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러한 문구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구범진 교수의 저서 역시, 해당 문구가 쓰여진 전체 서신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진 않았다.
다만 저서에서 해당 문구가 다루어진 이유는 병자호란에서의 조선군 역량에 대한 청측의 평가 예시로서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저서에서 홍타이지가 어째서 그 말을 했는 지 다뤄지지는 않았고, 독자들 역시 문구의 배경에 대한 사유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홍타이지는 어째서 조선의 조총병들을 칭찬하며 조대수에게 그 사실을 전한 것일까. 본 글에서 간소히 나마 다뤄 보고자 한다.
숭덕 2년 정축년 조대수에게 보내진 홍타이지의 서신은 그 자체로서 조대수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위한 성격이 강했다. 홍타이지가 당시 조대수에게 보낸 서신은 병자호란의 사유와 전개, 결론등을 '청의 입장에서' 함축적으로 담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해당 서신을 시작하며 자신이 조선을 상대로 군사를 일으킨 이유를 조선이 사르후 전투 당시 명을 도운 것에서부터 설명해 나갔고, 그 뒤에 자신은 화평을 위해 노력했으나 조선이 이를 거부했다고 했다. 이에 자신이 하는 수 없이 군대를 일으켜 조선을 정벌하였음을 피력했다.
삽화 출처 : 칼부림, 조대수.
홍타이지의 서신은 이후 병자호란의 전개를 다루었다. 홍타이지는 서신에서 남한산성으로 인조가 숨고 강화도로 봉림대군을 비롯한 일부 왕족, 신하들이 도피한 것을 드러내었으며, 홍타이지 본인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근왕군을 물리친 것, 강화도로 군사를 보내어 강화도를 함락한 내용을 이어갔다.3 그리고 그로서 자신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조선을 굴복시켰음을 드러내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의 인질을 잡고 홍익한(洪翼漢),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등 척화로 대표되는 삼학사들을 처형한 것, 조선군이 자신의 뜻을 따라 함께 가도의 동강진(東江鎭)을 공략한 것을 명시해 조선이 더 이상 명의 번국이 아니고 자신의 의지를 따름을 알렸다.
홍타이지는 병자년 12월부터 정축년 4월까지 자신이 이룬 이 성과-조선의 항복과 대청체제 편입, 그들을 앞세운 가도 정벌을 조대수에게 전달함으로서 그에 대한 은밀한 압박과 회유를 시도했다. 1631년 대릉하 공방전 당시 조대수가 항복하면서 자신에게 권했던 말을 끄집어 내어 그에게 다시 자신의 신하가 될 수 있음을 회유했고, 동시에 자신의 명을 향한 원정에 조선군을 징병하게 되었음을 드러내며 압박을 했다.
그 '압박'의 과정에서, 홍타이지가 조선군의 역량에 대해 꺼내게 된 것이다.
홍타이지는 여기서 예의 '조선군은 기병으로서의 전투능력이 없었으나 법도를 어기진 않았고, 보병전과 조총전에 능숙했다.'는 언급을 하는 동시에,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으로서 (조선군이) '성지(城地)를 공격하는 것에 크게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성지'란 당연히 명의 영토를 지칭한다. 이는 즉, 조선의 병사들이 자신의 군대를 막는데에는 실패했더라도 명을 정벌하는데에, 특히 명의 성보들을 공략하는데에 크게 유용할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홍타이지는 조선이 비록 야전에서는 기병등의 부족함으로 청에게 패하였더라도, 보병전과 사격전에서 그 능력이 우수한 만큼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형의 전투인 공성전에 있어서는 청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성전력을 보완하는데에 그들의 병력이 크게 유용할 것임을 나타냈다.
그러는 동시에 은근하게, 조선군이 야전에서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야전에 있어서는 결국 청의 군대가 우월한 능력을 가진 만큼 두 군대가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청과 그 산하에서 운용될 조선의 군대에 명이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삽화 출처 : 칼부림, 조선 포수
또한 홍타이지는 자신이 '서정(명에 대한 원정)'에 이들 조선군을 얼마나 징병할 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면서 자신이 조선의 군대를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음을 드러내면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압박은 단순히 조선의 군대를 띄워주며 자신이 이런 군대를 통해 더욱 거세게 명을 몰아붙일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할 뿐만이 아니었다. 명의 책봉국이었던 조선이 이제 명과의 오랜 군신관계의 예를 절연하고 청을 도우며 청과 조선이 형제의 나라가 아닌 군신의 나라로서 함께 명과 대적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로서 실상 천명이 자신에게 있고, 그런 자신에게 신속할 것을 조대수에게 권하는 바도 분명 존재했다.
홍타이지는 이러한 서신을 전봉의 장수들인 시터쿠(siteku), 나하이(nahai) 등에게 맡겨 조대수에게 전함으로서, 조대수를 흔들고자 하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홍타이지가 조선의 조총전 능력을 칭찬한 이유는 실제로 자신이 목격한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군이 조총을 잘 다루었던 탓도 있었을 터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병자호란에서 자신의 충신이자 청의 개국공신인 양구리(yangguri)를 조총에 잃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4 즉, 그가 조선군의 조총전 역량을 칭찬한 것은 아주 빈 말, 조대수를 겁박하기 위한 허황되고도 가식적인 칭찬 같은 것은 아닐 공산이 크다.5
그러나 홍타이지가 조대수에게 조선의 조총 기술을 마치 '선전하듯' 칭찬한 이유는 결국 정치적인 목적이 컸다.
홍타이지는 조선군의 조총전 능력을 칭찬하면서도 결국 그들이 자신에게 패하여 굴복하였고, 그 '조총을 잘 다루는 군대'가 이제 자신의 산하에서 지금껏 명을 상대로 지켜오던 군신의리를 저버린 뒤 청을 섬기며 자신의 서정에 종군키로 하였다는 것을 선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명에 대한 공격전에서, 특히 공성에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동강진 정벌전 당시 조선군이 한 차례 청을 위해 종군하였음을 알리며 사례를 통해 자신의 말이 명확한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즉 홍타이지는 달리 조선군의 조총 기술을 칭찬한 것이 아니다. 결국 명이 유지하던 천하질서가 조선의 이탈로 무너지는 상황과 함께 명을 도왔던 군대가 이제는 자신을, 청을 돕는 상황을 조대수에게 더욱 면밀히 보이기 위해 조선의 군대를 의도적으로 '칭찬해 준' 것이다. 결국 조선군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자신의 원정에 종군시킬 수 있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몇 해 뒤, 조대수는 실제로 청과 조선의 군대가 자신을 포위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으며, 반대로 홍타이지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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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태종실록』 숭덕 2년 7월 27일.
2.구범진, 2019, 『병자호란 : 홍타이지의 전쟁』, 까치, 162쪽.
3.여기서 강화도 함락에 대해 서술하면서 흑룡강에서 비선 80여척을 건조했다고 서술된 것은 『청태종실록』의 오류이며 실제 서신 원문에서는 흑룡강의 사람들이 건조한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李光濤, 1959, 『明??案存眞選輯初集』, 中?院歷史語言?究所, p.100.
4.『청태종실록』 숭덕 2년 1월 7일.
5.구범진 역시 자신의 서적에서 이와 같이 언급하였다.
본인 작성.






왜 요약 안 해 줘요
같은 맥락으로 쿠빌라이의 고려 올려치기가 있다
왜냐면 쫄따구를 올려치는것 만큼 자신을 효과적으로 올려치는게 없으니깐
쿠빌라이입장에선 일단 아무튼 고마운 놈들이긴함 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지도 않음. 애초에 처음부터 쿠빌라이가 고려 집어간거임
그러니까 쫄따구 해준 보답으로 응 그래그래 잘한다~ 하고 기 세워주는거였네
청이 조선 조총병 잘써먹은게 나선정벌이니...
2차대전 독일군이 그렇게 띄워졌던 이유와 동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