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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테크.. | 25/04/26 02:47 | 추천 12 | 조회 83

[정보] 구소련 붕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된 사건 +83 [2]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0423953

1993년 10월 러시아, 하르키우제 T-80UD 탱크가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는 러시아 최고 라다(우리로 따지면 의회)로 진군했고, 시위대를 천안문 해버립니다.


전차들은 러시아 두마 의회 건물을 향해 125mm 고폭탄 실탄을 170회 이상 발사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러시아인들은 행정부와 입법부중 누가 모든 권력을 가져갈지 결정해버린 사건입니다.


결국 보리스 옐친 대통령측이 승리했고, 국가 행정 기관으로서의 러시아 최고 라다 의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993년 러시아 정치위기" 또는 "검은 10월"로 불리는 이 사건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단순히 "옐친이 이끄는 자유주의자 개혁파들 vs 민족주의 - 공산주의 잔당들의 소련 전체주의 체제 부활시도" 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패배한것은 "x갱이" 가 아닌 민주주의였습니다.




1.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1991년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보리스 옐친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신되었지만, 결국 그 계급 출신이었습니다. 실제로 옐친은 당시 소련 러시아 공화국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1년 전인 1990년 소련 러시아 공화국의 최고 라다 의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소련 헌법에는 대통령이 상당히 제한된 권한을 가지고 있고, 모든 전략적 결정은 오직 의회에서만 채택되는 '의회 공화국' 이라는걸 명확히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의회 대다수는 여전히 공산당에서 직접 왔거나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에 따라 변동하는 소련 기업의 이사였습니다.

여기서 중간정리하면 옐친은 대통령이고 지지율도 높았지만 권한이 약했고, 반면 친소련 성향의 러시아 의회는 강력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2. 옐친과 라다 의회의 대립



이 상황에서 옐친의 경제개혁은 처참히 실패했고, 특히 93년은 고통의 절정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의회는 옐친의 개혁을 저지했고, 헌법상 옐친은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93년 봄, 양측은 시민들에게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의회중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묻는 투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러시아 농노들은 "둘다"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93년 10월 옐친은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사태를 도입하는 명령 1400호라 불리는 사실상 계엄령을 발동합니다.

'잠깐만, 방금 러시아는 의회 중심제라고 하지 않았음? 어떻게 대통령한테 의회 해산권이 있나?'

당연히 없습니다. 오히려 헌법상 이는 탄핵 사유에 해당되는 것이였고, 의회는 옐친을 탄핵했습니다. 하지만 옐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양측은 지지자들을 모으고 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합니다.



3.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여기서 양쪽은 딜레마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파시즘 세력들이 모인 러시아 의회가 옐친을 타도하는 근거는 - 러시아의 민주주의 헌법과 법치주의였습니다.

소련 파시스트 세력으로부터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개혁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집권한 옐친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질서를 탱크로 박살낸겁니다.

이렇게 공산세력(헌법수호) vs 민주세력(천안문) 이라는 정신나간 구도가 형성 됩니다.



4. 얼마나 개판이였는지 사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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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 헌법 수호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은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다음 트럭을타고 모스크바를 장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무장 폭도들의 목표는 오스탄키노 텔레비전 방송국이였는데 당시 몇 안되는 방송국이라서 이곳을 장악하면 정보를 통제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 건물에 자리를 잡은 옐친측 병력들이 집단발포를 하면서 실패했고

다음날인 10월 4일, 옐친은 탱크를 동원해 "천안문"을 시전했고

러시아 의회는 항복하고 12월에 러시아 대통령에게 권력을 대놓고 몰빵하는 식으로 개헌하게 됩니다.


즉 푸틴의 독재는 이 때 만들어진 새 헌법 개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게 지금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진 비극의 시작입니다.



5. 결과



즉 합법적으로 선거로 선출된 의회가 옐친의 무력으로 해산되어버린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패배한 것은 파시즘적 민족주의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즉 국민의 주권이였던겁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푸틴이 집권해서 무너진게 아니라 이 때 부터 무너진 거죠

그러나 러시아 국민의 뜻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6.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 우크라 유로마이단 같은 민주주의 회복 투쟁이 러시아에서 불가능한 이유


마이단(Maidan)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현상에 대해 러시아인들은 많은 비난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당국과 의견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마이단의 본질은 러시아를 짜증나게 합니다.

러시아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고작 부정선거나 공약 불이행을 이유로 권력자들을 공개적이고 자유롭게 축출시킬수 있습니까?! 이것은 어떤 아마추어 활동입니까?"

한편, 의회 총격으로 끝난 1993년 '검은 10월'도 본질은 러시아 마이단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수당인 공산당이 주축인 시위였고 러시아 마이단의 색깔은 밝은 빨간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 의회는 헌법 기관이었고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옐친의 행동은 지금도 헌법을 부정해서 욕먹고 있는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명령이 위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폭력적인 억압 옵션에 의지했습니다.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시민 시위를 진압하는 동안 정확히 170명 이상의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즉, 당시 러시아 정부는 마이단을 피로 길들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 러시아에는 주변의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대통령 독재가 나타납니다.


주요 국가들중 여기서만 정치 체제가 없어졌고 경쟁이 없는 것은 좋은 것으로 간주되고, 한사람이 계속 재선하는건 긍정적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뿌리는 러시아인의 사고방식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손대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겁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수세기 동안 호드의 통치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엘리트가 권리를 박탈당한 동일한 호드 모델에 따라 국가를 정확하게 건설했을 때 역사적 잠재 의식의 깊이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말이죠

러시아에서는 상사가 전부이고 그의 말이 곧 법입니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 행해져 왔고 1993년 10월 구소련을 무너뜨린 옐친도 마찬가지였던겁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의 대통령은 옐친에서 푸틴으로 바뀌었고 지금에 이르게됩니다.

한편 비슷한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도 당시 크라브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야당이 다수당이였던 최고 라다와의 권력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 크라브추크 대통령은 계엄령이 아닌 조기 대선 방안을 라다에 제출했고


그 결과로 크라브추크 대통령이 이끌던 정당은 총선에서 패배하게 되어서 승복하여 러시아와 같은 유혈충돌을 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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