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정치와 경제부문에서의 개혁을 요구하던 헝가리 시민들은 경찰과의 충돌 이후 시민군으로 변했다

봉기가 확산되자 소련은 봉기에 책임이 있는 헝가리 내각 대신 너지 임레를 수반으로 하는 신정부를 구성한다. 기존 헝가리 정부에 소련또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
소련은 개혁적 성향의 너지 임레를 수반으로 올려서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맘에 안드는 기존 헝가리 내각을 없애려고 했다.
다만 소련의 생각과 너지 임레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었다. 너지 임레는 소련의 생각보다 더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너지 임레는 부임하고 나서 시위대에게 비밀경찰 폐지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를 약속해버렸다.
그 배경에는 헝가리 시위대를 지키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당시 헝가리에는 소련군이 주둔중이었고 시위대는 이미 소련군이랑 전투중이었다.
너지 임레는 시민군과 소련군 사이의 충돌을 막기위해 탄원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봉기가 지속되면 압도적 강자인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시위대를 뭉개버릴 상황이었다.
결국 너지 임레는 무혈로 봉기를 끝내기 위해 시위대의 편을 들어줬고, 시위대의 개혁 요구를 수용한게 바로 정치범 석방, 비밀경찰 폐지, 바르샤바 조약기구 및 코메콘 탈퇴였다.
그렇다면 주권국가인 헝가리를 존중하여 소련군이 철군했을까?
그럴리가 없지
소련군 15만명이 헝가리에 투입되었다.
혁명군은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너지 임레는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하얐다
여기서 주권침해가 또 벌어진다
유고슬라비아에 망명해있던 너지 임레를 소련군이 들이닥쳐서 체포한뒤 비밀 재판을 열어서 사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체포랑 재판, 처형은 정작 헝가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어 헝가리 정부가 임레의 처형을 알게된건 이미 임레가 죽은 뒤였다.
약소국 주권따위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던 시기







지금도 약소국의 내전과 전쟁은 관심도 없음
결국 너지 임레는 무혈로 봉기를 끝내기 위해 시위대의 편을 들어줬고, 시위대의 개혁 요구를 수용한게 바로 정치범 석방, 비밀경찰 폐지, 바르샤바 조약기구 및 코메콘 탈퇴였다.
이러면서 소련이 그냥 갈 거라고 생각을 했다고??
대안으로 서방과 유엔의 중재를 요청할 생각이었다고 보는게 정설이지만.... 서방이 도와줬을리가 없겠지
중재를 미리 요청해서 답을 듣고 일을 저질러야 하는거 아니냐고...
이미 소련군이 기갑사단을 움직이는 긴박한 상황이었어서 급하게 움직였다고 봐야지
뭐 어차피 나토 입장으로 봐도
바르샤바 조약기구 영토로 군대를 보내는건
전쟁하자는거라 어떻게 할수있는 일이 아니었을듯
소련 박살나고 동유럽 대다수가 서방에 넘어간 이유가 다 있음.
공산주의 탈 쓴 제국주의라 그래...
미국도 한따까리 했다지만 우방에겐 그래도 가면이라도 쓰고 친하게 지냈는데 소련과 위성국들은 그냥 상명하복 식의 관계일 뿐임.
동유럽 국가들의 공통점이 친소 매국노들 청산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음 우리나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