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화백자
원래 조선도 백자에 회회청으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를 좋아하고 많이 만듬.
그러나 중국이 명청 교체기로 요지경이 나버리면서 회회청의 수급이 끊겨버림.
조선은 자체적으로 토청이라고 부르는 청색 안료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대신 기존에 흑자, 검은 도자기를 만들던 기술을 바탕으로.
철분이 많이 함유된 안료를 써서 백자에 먹으로 그린듯한 검은 무늬를 넣는 철화백자를 자체 제작하게 됨.
이후 중국은 토청을 개발해서 자체적인 청색 안료를 확보했고, 조선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청화백자를 제작하거나 철화와 청화를 합친 고유한 스타일을 개발함.
다만 검은색을 기피하던 조선 특성상 흑자 기술은 숨만 꼴딱거리는 상황이었고, 철화 또한 검은빛이 돌아 값이 쌌기에 서민층이 애용했다고 전해짐.
여담으로 흑자 기술이 가장 발달한건 일본이었는데 거긴 검은 도자기를 사랑해서 그렇다고.
댓글(4)
일본은 길조도 까마귀였지
우리나라도 고대에는 까마귀가 길조였던 것을 보면 확실히 한반도 고대 문화가 일본 열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맞는 듯
까마귀를 길조 흉조로 동시에 보던건 동아시아 전부 그럼
쪼꼬렛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