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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크림.. | 25/01/11 23:02 | 추천 19 | 조회 17

[유머] (스압)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택견의 손질은 본래 검술에서 왔다(?!) 下편- +17 [4]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9133733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시리즈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1편 - 소개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2편 -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3편 - 두 거인의 죽음과 혼란기의 개막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4편 - 대한택견회의 부상과 이면의 문제점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5편 - 대고소시대와 돌아온 송덕기 택견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6편 - 결련택견협회의 비상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7편 - 통합 대회와 대한택견연맹의 체육회 가입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8편 - 황금기의 뒷면과 또 다른 계승자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9편 - 결련택견협회의 내전과 위대태껸의 등장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10편 -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上편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11편 -태껸춤과 정통성 논쟁 下편-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12편 - 옛법택견의 짧은 봄 -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13편 - 서울시 문화재 결련택견과 택견진흥법 -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1편. 택견 4대 협회의 간략한 특징 요약 및 기술 모음집

2편. 택견은 왜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부터 배웠을까? 

3편. 택견에도 개파조사가 있다?!

4편. 놀이인가 무술인가? 기록을 통해 알아보는 구한말 택견.

5편.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6편. 제 1회 택견 경기와 실종된 활갯짓

7편. 택견의 손질은 본래 검술에서 왔다(?!) 上편 

8편. 택견의 손질은 본래 검술에서 왔다(?!) 下편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친애하는 이웃 택견빌런입니다.


오랜만에 복귀했는데도 저를 잊지 않고 초고속으로 전편을 베스트로 올려준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꾸벅).


이번 편도 열심히 써 보았으니 다들 착석하시고 3D 안경을 낀 채 이번 편을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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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힘 내서 샥샥 진행할게요!)



1. 과연 택견과 검술의 관련성에 주목한 것은 윗대태껸협회뿐이었을까?


지난 편의 막바지에서 저는 윗대태껸협회만이 검술과 택견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세간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입니다만, 택견을 순수하게 놀이적 측면으로 해석한 대한택견회를 제외하면 다른 택견 단체 모두가 한 번쯤은 택견과 검술(무기술)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시기를 거친 것이 사실입니다.

일례로 결련택견협회의 도기현 회장 같은 경우, 할아버님과 부친께서 유명한 택견꾼이었다 하시는 은사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여

 


"정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택견이 단순히 민중의 신명나는 놀이문화이고 사대문 밖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필운동에서 태평로로 이어지는 지역은 한량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으로 그 곳의 택견이 가장 세었으며 그 외 지역으로는 현재의 을지로 6가 옛 훈련원 근처의 군인들과 남산 지역의 한량들이 더러 택견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하층민은 택견수련을 할 수 없었고 최소한 중인 이상이나 양반인 한량과 무반(武班) 출신들이 즐겨했던 비교적 고급문화가 바로 택견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택견은 아주 강하고 살벌하여 궁중의 호위무사들이나 지역의 강자들이 수련했던 아주 강력한 무예라는 것이다.

비록 신뢰가 가는 은사님이긴 하지만 필자가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송덕기스승님과 친분이 많고 우리 역사를 잘 아시는 ‘황학정(스승님께서 평생 활을 쏘셨던 사직동에 있는 활터)’에 계신 어르신들을 비롯해서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이미 이와 비슷한 얘기들을 많이 들어왔던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택견에 대한 여러 기억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분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민속놀이 형태로 이어져 내려 온 택견도 있지만 상당히 강력한 무예적 기법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한량들이나 무사들이 호신이나 수련의 한 방편으로 사용했던 택견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후자는 아마도 ‘옛법택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기현의 택견이야기] 궁중(宮中) 호위무사(護衛武士)의 '옛법택견'



택견이 민속 놀이 이외에도 조선 시대 무사들의 호신이나 수련법으로도 내려져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택견과 검술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궁중 무술의 흔적이라 할 수 있을 종묘제례악의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직접 찾아가 배우고 그에 대한 논문도 쓰시는 등, 여러 매체에서 조선의 검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시고 계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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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위의 연유로 결련택견협회에선 정대업지무를 전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6분 46초부터.)



거기에 한국택견협회(문화재 택견)의 현 무형문화재인 정경화 선생 또한 택견을 소개하는 공식 문서에 



"『해동운기(海東韻記)』에는 수벽치기·수벽타(手癖打)에 대해 “옛 풍속에 수술(手術)이 있는데 예전에 칼 쓰는 기술에서 온 것이다. 마주 앉아서 서로 치는 것인데 두 손이 왔다갔다 할 때에 만일 한 손이라도 법에 어기면 곧 타도(打倒)를 당한다. 이것을 수벽치기라고도 한다.”라는 기록과,


“검술(劍術)은 먼저 재주의 묘(妙)로부터 척장군(戚將軍)이 벌써 병사(兵士)에게 가르쳤네. 삼절구(三節?)에 만약 한 절만 어긋나도 주먹이 머리에 떨어지기는 눈깜짝이라.”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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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손질 하나만 놓쳐도 "조용히 하세욧!" 을 당해버린다는 것이다.)



수벽(手?)은 검술의 기본이기도 하다. 명나라 장군 척계광(戚繼光)이 수술(手術)을 병사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은 척계광의 저서 『기효신서(紀效新書)』와 『연병실기(練兵實記)』를 두고 한 말이다. ‘삼절구(三節?)’는 팔로써 서로 맞서서 겨루는 동작을 말한다. 굼실굼실하며 두 손이 왔다 갔다 할 때에 한 손이라도 법을 어기면 곧 날카로운 공격을 머리에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수벽치기라고도 한다.


 

현재 택견이라고 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의 발 기술이 중심인 기예를 말하는 것이며 손은 따라서 활개짓을 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쌈택견(결련)에 이르면 손 기술도 상당히 중시되고 있다. 앞으로는 손 기술과 발 기술을 종합하여 보다 발달된 종합 무술로의 개발이 필요하다. 택견의 경쟁적 요소처럼 무예적 기능과 스포츠적 기능이 양립하는 무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수벽타라는 이름으로 택견과 검술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글을 저술한 것을 보면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온 택견의 기법 자체가 검술과의 관련성이 있는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과거 어느 시점까지 택견의 손기술은 검술에서 왔거나 검술과 연계되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만큼은 대한택견회를 제외한 3개 협회(윗대태껸회/결련택견협회/문화재 택견) 모두가 동의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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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택견을 놀이로 이미지메이킹 하고 싶어서 안달난 단체 아니랄까봐 여기서도 혼자 빠지는군요...)


하지만 여기까지 글을 읽어오신 여러분이라면 한편으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으실 겁니다.




2. 그런데 왜 이제 와서야 검술과 택견의 손기술의 연관성이 주목 받는 거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에는 꽤나 복잡한 사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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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복잡해... 버터 이런 거 싫어...ㅠㅠ)



먼저 지난 편에서 언급했다시피 택견은 스포츠화 및 빠른 보급을 위해 1980년대 이후 현대 경기에서 금지한 택견의 손기술을 사실상 '업계 차원에서' 뒷방으로 보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협회를 가릴 것 없이 시간이 지날 수록 무술로서 추구해야 할 실전성에서 멀어져 가는 한편(대표적으로 중단 타격 발차기 금지), 택견의 대표적 기술이라 하면 손꼽히는 두 가지 중 하나인 활갯짓의 사용법이 잊혀져 가는 추세가 보편화 되기 시작하였으며,

 

 


(애석하게도 이건 경기에서 활갯짓을 의무화 한 문화재 택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차기를 흘려내는 식의 활갯짓은 허용할지 몰라도 타격과 연계된 기법은 엄격하게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선 윗대태껸이 등장하기 전까지, 택견의 손질은 3개 협회(대한/결련/한국)를 통틀어 연구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시연에서나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박제화. 화석화의 절차를 밟고 있던 것이 택견계의 현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윗대태껸회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인 '택견은 강력한 무술이다'와 유사하게



 

 

 

강력한 택견. 현대 격투기와 조화된 택견으로 대중의 인지도를 얻은 황인무 선생의 옛법택견 또한 첫 등장 자체는 2002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미디어 노출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윗대태껸과의 정통성 논쟁이 얼추 마무리 된 2010년대 후반이었다는 점만 봐도 윗대태껸이라는 자극제(?) 투하가 없었다면 택견의 손질(활갯짓)은 영영 재발굴 될 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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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옹께서 전수하신 택견의 택견의 전수 형태는 아래[발]에서 위[손]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던지라 길어야 4년 남짓한 경력으로는 택견 손질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활갯짓의 기법을 디테일하게 배우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였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팔을 검처럼 사용해서 상대의 가드를 찍어 내리며 들어 간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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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상대의 공격을 빗겨내고, 반대 팔로 감아 내리며 도끼질로 급소를 내리친다던가 하는.





누가 보아도 무기술과의 연결성을 점칠 수 있는 활갯짓의 디테일한 기법들이 대중은 물론이요, 같은 택견 단체들.


그리고 1990~2000년대 즈음 종래의 택견 단체들에게 접촉을 시도해 무예도보통지의 무기술과 택견 사이의 기술적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했던 복원 무술 단체들에게 흘러 들어갈 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아다리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 싶을 수준의 상황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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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윗대태껸협회 자체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수를 시작한 게 2010년대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과 같이 활갯짓의 사용법과 무기술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윗대태껸협회가 등장하기 한참 전인 2000년대 초반에도 검술과 택견 수기(?) 간의 모종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협회 한 곳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단체의 이름은 바로 수벽치기로, 택견을 문화재로 등재한 신한승 옹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집한 전국의 전통무술을 수벽(手?)이란 이름으로 전수 받은 육태안 선생이 조직한 협회였습니다.

 

 


 


3. 수벽치기 맨손검술

 

수벽치기는 기천을 비롯해 만주권법, 합기도, 검술 등 다양한 무술 경력이 있는 육태안 선생이 이끌고 있는 단체로, 초창기에는 <택견과 수벽>이라는 명칭으로 택견의 발질도 함께 전파한 단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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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soobyok.tistory.com/entry/%EC%88%98%EB%B2%BD%EC%B9%98%EA%B8%B0%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



현 전승자인 육태안 선생은 "손은 수벽치기이고 발은 택견이라고 신한승 선생으로 부터 배웠다"고 제자들에게 알렸을 뿐더러, 도기현 회장님과 함께 송덕기 옹께 택견을 배웠고, 결련택견협회 소속이신 최유근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도기현 회장님이 택견을 '뽀대나게' 만드는(?) 과정에서 육태안 선생의 수벽치기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하니 여러 모로 택견과 인연이 깊으신 분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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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cafe.daum.net/muye/B03/6731



하지만 위와 같은 증언이 어쨌던, 택견인들의 입장에서 수벽치기는 살짝 미묘한 협회였던 걸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일단 수벽치기의 기술 출처 자체가 택견이 아니라 신한승 옹께서 전국에서 수집한 전통 무술의 기술을 전수한 것이라 선을 그은 것이 첫째였고,


둘째는 육태안 선생이 본래 수련하던 무술인 기천의 풍격을 수벽치기에 녹아내었기 때문이었으며,

 


 

 (윗대태껸 vs 결련택견의 정통성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 택견꾼들의 기술적 순혈주의는 매우 강했습니다.)

 


 마지막으론 맨손 기술이 검술과 연관이 된다는 개념 자체가 2000년대 초중반의 택견꾼들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에 굉장히 어색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택견꾼들은 '아예 택견과 다른 것'으로 수벽치기를 취급하고 의도적으로 신경을 껐던 걸로 보입니다.




(사실 아예 틀렸다 보기도 뭐한 게 여러분은 이걸 보고 택견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위의 판단 자체가 굉장히 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니 이걸 놓쳤네?!" 하고 기함을 할 만한 사실들까지 함께 무시해 버렸다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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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나오는 고대세의 향연....)


그렇습니다. 


위의 윗대태껸의 네 겨누기 가운데 검술로부터 왔다는 고대세의 동작이 수벽치기에서 끊임없이 나오며, 대놓고 택견의 활갯짓과 용어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날갯짓이란 단어로 손기술을 호칭합니다.


더욱이 이 영상에 나오는 기술 명칭들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건






코침주기, 면치기, 가슴치기, 오광잽이, 턱 빼기(낙함).... 영상에서의 사용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부 택견의 손질 기술 명칭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인지 이러한 수벽치기의 손기술들이 실은 신한승 옹께서 송덕기 옹께 배웠지만 문화재 택견에 등록하지 못한 손기술들의 모음을 수벽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였고, 그것을 육태안 선생이 전수 받은 것이라는 음모론이 일각에서 진지하게 제시되곤 할 정도이며,


이 음모론은 윗대태껸협회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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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실이 뭐냐고요? 나도 몰라요! 아니 나도 알고 싶어요 정말로!)



물론 냉정하게 한 발짝 물러서서 "윗대태껸협회의 고대세는 본래 검술에서 왔다 하니, 검을 쓰는 형태야 그게 그것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벽치기와 우연하게 유사한 형태를 띄는 건 아니냐?" 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수벽치기에서 윗대태껸협회가 보여준 바와 같이 택견과의 직접적으로 기술적 연관성을 보여줄 수 있는 활갯짓의 사용법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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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멈춰!!!!!)


 

하지만 앞서 언급된 도기현 회장님의 인터뷰에 나오는 것과 같이 택견이 한량들의 호신술이자 조선의 검술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신한승 선생이 송덕기 옹의 택견을 제대로 못 배웠니 뭐니 하는 말들을 듣곤 하지만 좌우지간 문화재 택견을 등재하기 위해 어쩌면 도기현 회장 이상으로 송덕기 옹의 기술들의 상당수를 보고 들었을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한승 옹으로부터 전수된 수벽치기의 기법들이 택견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상당히 찝찝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윗대태껸협회가 검증중인 활갯짓과 무기술의 상관관계가 아직 100% 밝혀지지 않은 현재 시점에선, 신한승 옹과 연관성이 있으며 윗대태껸협회가 한국에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택견의 근연종으로서 검술과 손기술의 연관성을 주장한 비교군 A 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수벽치기에 대한 이야기도 끝났겠다, 슬슬 이번 글의 마지막 주제로 넘어갈 수 있겠군요.





4. 그런데 검술은 조선에서 전혀 메이저하지 않은 무기였지 않아?

?

그렇습니다. 이번 글의 마무리이자, 다음 글의 핵심을 구성할 주제가 마침내 나왔습니다.


택견이 무기술과 연관이 있었을 수 있었다는 건 얼추 이해하겠지만, 애초에 검술 자체가 일본과는 달리 중앙집권 국가였던 조선에서 딱히 메이저하지 않은 위치였지 않느냐는 의문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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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조선 하면 활 아이가!)


사실 이러한 시각은 택견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택견이 민속 놀이로서 퍼진 이유가 조선이 민간의 무술 수련을 탄압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인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여러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완전히 틀렸었습니다.


자료를 통해 추적한 조선. 특히 택견이 활성화 된 시점이라 할 수 있는 18세기 이후의 조선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국가였고, 택견이 발생한 지역인 한양은 특히 더욱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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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조선 후기 한양의 사회 시스템은 군사적이었으며, 이전까지 조선을 지탱하던 수많은 계층이 무너지고, 재조합되며, 새로운 시대로의 변혁을 향해 달려나가는 과도기의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저장소에 올라온 자료들을 재검증을 하며 느낀 것은 우리가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조선의 스테레오 타입이 일종의 만들어진 신화에 가까웠다는 사실이었으며, 우리가 상상 이상으로 후기 조선의 사회에 대해 무지했기에 택견 또한 잘못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잘못된 정보를 재생산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지요.


따라서 다음 편부터 우리는 택견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18~19세기의 한양의 사회상과 택견을 향유한 계층에 대한 분석. 그리고 택견과 무기술, 그리고 조선군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들과 후기의 조선군 그 자체에 대해 다루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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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자료가 방대하다 보니 정리 자체조차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노력하겠으니 부디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택견빌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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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과 좋아요(?)는 다음 편을 더 빠르게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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