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각과 장로.
이게 뭔 멍멍이 소리냐? 유비와 조조는 어따가 팔아먹었냐?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들의 주인공적인 면은 열광할만 하지만, 이 둘이 만들어낸 업적에는 비빌 수 없다는 말임.
장각과 장로는 태평도와 오두미교의 창시자임(엄밀히 따지면 장각은 퍼트린 사람이고 장로는 시스템을 정립한 사람임).
태평도로 부터 촉발되는 황건적의 난은 중국 역사 최초의 대규모 종교 반란임.
그 시대 뿐만 아니라 후대, 현대에도 끼친 파급력도 어마어마함.
중국에서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전복 시도의 대부분은 황건적의 난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님.
지금 중국 공산당이 종교에 대해 과민반응 하는 것도 환건적의 난이 중국의 지배세력에 그만한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할 수 있음.
장로의 경우 오두미교를 정립함.
오두미교 이전까지만 해도 도가는 사상이었음.
태평도역시 도교라는 종교적 색체를 가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었음.
그리고 장로는 태평도의 잔당 교도들을 흡수하고 이를 제대로된 종교단체로 정립했음.
교주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장로가 장각보다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또한 일시적이지만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체계를 실현한 적도 있고.
이후에도 도교는 중국에서 발호하는 몇몇 제국에 큰 영향을 끼쳤고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내렸으며 현대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음.
이처럼 인류 문명에 변혁을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장각과 장로의 업적은 삼국지 군웅들에 비교해 정말 큰 거임.
이런 둘을 그저 초반 보스, 삼류 군웅으로 취급하는 세태에 긁혀 한번 써봄.
댓글(10)
교과서에 한두 페이지로 심지어 묶여서 퉁치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고고하게 자기 이름을 박아넣은 진군 어디감
저승으로 진군함.
구품중정법은 수의 과거제가 나온 이후로는 명맥이 끊겼지만
도교는 현재까지 지속되거든.
중국 역사적인 가치로서는 저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라고하지
실질적으로 민중의 힘 만으로 한나라의 숨통을 끊을뻔 했으니까 대단하지
베트남의 사섭과 불교 도입한 착융도 중요하지. 오나라 강남 개발도.
사실 삼국지 주인공으로 불리는 2명 중 조조의 역사적 가치는 시 좀 쓴 게 전부고
유비의 역사적 가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깐
중국사에 중요한 인물인건 맞는데 삼국지 네임드 아니였으면 안 유명 했을거 같음
삼국지 책들이 엄청 길어서 그렇지 역사로 놓고보면 50년~100년 정도. 여기에 전쟁만 하루 죙일 했으니 역사적 의미가 있던 시기가...
역사에서 민중봉기는 비중을 높게 치고 중간의 세력간 다툼은 중요도가 낮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