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발해가 양립하던 시대
고려 때 빈번히 침입하던 거란 , 여진은 이때 발해의 통제아래 있었고
발해는 기묘할 정도로 대동강 이남의 땅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신라도 마찬가지라 초기에 당나라 요청때문에 잠깐 건드린거 말고 발해땅은 쳐다도 보지 않아서 북부 국경의 전쟁이 없었다
그럼 남방의 위협뿐인데..
이 시대 한반도 주변 해역을 장악한 것은 신라였다
오히려 왜국은 혹시 백제를 멸하고 매소성에서 당나라를 후려갈긴 신라가 침공해올까 전전긍긍했었지만 신라는 역시 이쪽에도 관심이 없어서 전쟁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신라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해지자 해적이 설쳤는데
역시 왜구가 이제 나올때인가!!? 싶지만
튀어나온 것은 신라구였다
이 신라 해적들은 역시 같이 설치던 여진 해적과 얼라이를 맺고 큐슈 해안을 초토화시키고 약탈을 일삼고 상륙까지 해서 왜국 중앙으로 올라가던 세금도 털어가는 수준에 큐슈 해안가엔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
왜국에서 신라에 제발 해적좀 어떻게 해달라고 사정할 정도였으나
신라도 이때는 상황이 썩 좋진 않아서 조치해볼께 하고 말았는데
결국 이 해적들은 청해진 장보고가 평정해버리고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
(하는김에 당나라 해적들도 같이 쓸어버림)
당에 유학을 갔던 일본의 승려 엔닌이 직접 장보고에게 감사편지를 남길정도..
일본에서 당에 가려면 청해진 소속 선단에 타는게 가장 안전한 루트여서 청해진 선단 입항때까지 항구에서 몇달을 기다리는게 기본이었기 때문
이들 해적 잔당과 장보고가 제거된 이후의 청해진 잔존세력은 다시 신라구로 변신했다가 이후 후백제와 고려 휘하에 들어가 수군의 역할을 맡게되었다
견훤이 수달이가 죽었어!! 외치던 수달은 네임드 해적 두목이었는데 견훤 밑에 들어가 장군이 된 사람이다
결국 신라는 위 아래 외침이 없자 안심하고 왕권을 두고 진골끼리 로마 스타일 민속놀이로 서로 고로시하다가 나라가 폭파되고 말았다
댓글(15)
한줄요약: 룡인들끼리 민속놀이 고로시가 제일 무섭다
근데 막상 실제로 신라 - 발해가 저렇게 딱 붙어있는 형태도 아니었을거라고는 하던.
평양같이 국경에 있는 도시는 아예 제대로 영유권있는 나라도 없던건지 왠 호족이라 쓰고 마적떼라 읽는 놈들이 해먹고 있고 그렇던데.
ㅇㅇ평양은 반쯤 버린땅
이것도 기묘한거지
대동강 유역과 평양은 개꿀땅인데 발해나 신라는 거길 서로 노맨즈랜드 취급함
편의상 저렇게 그어 놓은거지 저 시절의 국경은 양쪽의 완충지대 비슷한게 있다고 보면 됨둥.
듣기론 저땐 요동반도나 평양주변,원산쪽은 명확하게 세력이 없었단 얘길 들은거같음
신라 입장에서 평양 부근은 수도에서 가장 멀리있는 최전방 격오지나 다름없었으니까.
중앙집권화도 제대로 안 된 시대인데 저길 적극적으로 중앙주도로 관리할 이유도 없으니 사실상 방치되고
개발이라고 해봐야 지역 호족이 알아서 굴리는 정도에 그친거일듯.
역사에 만약은 없다만 저 시절에 신라랑 발해랑 동맹맺고 천년만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북방말박이들 데리고 ufc 찍느라 남쪽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동북아 해적하면 왜구밖에 몰랐던 시절 신라구는 문화컬쳐 그 잡채였지.
근데 그 다음에 여진해적 얘길 들으니까 완전 컬쳐랜드였음.
않이 말박이가 해적질을 한다고?!
발해가 좀 흥했더라면
수달이 아니고 해달이였어?
그리고 엔닌이 쓴 책이 당갔다온썰푼다
여진해적=여진구 엌ㅋㅋ
외침이 없는 시대.
그것은 나 자신이 외침이 되는것!
중국이 공동의 적이라 서로 안건들인건가? 그래도 서로 국경 맞닿으면 필연적으로 분쟁 일어나는데 윗댓 말대로 완충지대가 있었다는것도 말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