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그는 일찍이 영어를 배워서 순종에게 개인교사까지 할 정도였고
과거 급제 2년 뒤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누가봐도 헐레벌떡 뛰어와 한자리 차지할 것 같았지만
사실 얼마 안된 초참신인이라 참가할 수 없었다
그 후 청나라의 극심한 반대에도 고종의 후원을 얻어
주미 외교관으로 파견되면서
미국을 배운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에도 고종을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 시키려던
주동자가 다름아닌 이완용이다
이러던 그가 1898년 외무대신+농공부대신에서 전라북도 감찰사도 강등이 된다
그 후 1900년에 감찰사직도 포기하고 고향에서 은둔하는데
1904년 궁내부 특직관으로 중앙에 복직하게 된다
이후부터 이완용은 브레이크 없는 트럭처럼
인생에서 한번도 엮여본적 없던 일본에게 매국을 열심히 하는데
아쉽게도 이 4년의 기록이 없다보니
누구도 이완용이 왜 매국을 했는지 모른다
댓글(7)
그냥 자기는 나라살리려고 존나열심히하는데 니들은 니네 이득만 존나빠네?
이득의 극한 보여줘 이런거라 생각함
얘는 동기가 꽤 보이지 않음?
조선은 답없다 > 서양만이 답이다 > 그런 서양을 받아들인 일본이 답이다 > 에라 모르겠다
약물 세뇌 조교?
강등이 된것에 대한 원한?
자기 눈에 차는대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강한 놈들을 잘 잡았을거임
기회주의자 라는게 달리 붙는 명칭이 아니지
어쨌듣 개색히죠
인도나 동남아 식민지를착취해서 청나라 따잇하고 아편 팔아먹는 귀축영프에 대항해 동양인끼리 뭉쳐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 자체는 저당시 동양 지식인이라면 한번쯤 그럴싸한데? 라고 납득할만한 소리였었음.
근데 일제 이 십새키들이 더 잔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