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15살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평양 기성 의학연구소에서 잡일을 했다.
서적 사본을 집으로 가져와 옥편을 뒤져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이는 소년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소년은 2년간 열심히 공부해 19살이라는 나이로 의사고시에 2등으로 합격한다.
그러다가 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어머니는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기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는데, 뭘 먹어도 토해냈고 설사를 했다.
결국 아기는 1주일을 못 버티고 하늘로 떠난다.
의사는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했는데,
문제는 그런 아기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의술로는 이런 아기들을 살릴 수 없었다.
22살이 된 의사는 인천에 소아과를 개원하고,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의사는 여전히 그 사건을 잊지 못하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외국으로 유학길을 떠난다.
당시 그는 슬하에 6남매가 있었으며 집도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 병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국으로 갔지만 영국에서도 이 병에 대한 단서는 알아낼 수 없었고,
196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드디어 알아낸다.
원인은 바로 젖당을 분해할 수 없는 증상인 유당불내증.
당시엔 수많은 아기들이 유당불내증으로 인해 모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죽어나간 것이었다.
의사는 이 때 어릴 적 어머니가 해준 콩국을 떠올린다.
콩은 3대 영양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유당은 없었다.
의사는 즉시 유아에게 먹일 두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당불내증으로 입원한 한 연약한 아기에게 두유를 먹이고,
아기는 살아나 모유 대신 두유를 먹고 자란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의사를 찾아온다.
의사는 신중하게 2년동안 동물실험을 거쳐가며 약으로 검증된 두유를 개발하고,
대량생산 설비까지 갖추어 본격적으로 두유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두유 자체는 과거부터 존재했으나, 아기들의 식사용으로 쓸 수 있는 제품화된 두유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베지밀이다.
의사는 정식품의 정재원 회장.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살린 그는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
그리고 그가 두유로 살린
이 아기는
마치 정 회장의 의지를 이은 듯 본인 역시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었으며
댓글(17)
헐
저 사람이 바로 정보경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