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이 새끼는 조선인의 정신을 일본인으로 바꾸어
다루기 쉬운 병사로 써 먹을걸 생각했다
이 계획의
대표적으로 창씨개명이 있다.
1900년대부터 이미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 진행한
창씨개명을 조선에도 적용시킬 계획을 새웠는데
안중근 의사님이 저새끼를 사살했기에
다음 후임으로 온 데라우치는
라는 생각으로
조선의 창씨개명을 없던 일로 했다.
(창씨개명은 일본에서 먼저 진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7대 총독으로 조선에 온 미나미 지로가
중국에서 전쟁이 길어지고
슬슬 미국과의 전쟁이 코앞에 다가오자
더 많은 병력이 필요로하는 상황이 되었고
1940년 부터
다시 조선에 창씨개명을 진행하게된다.
(창씨 제출 마감이 1940년 8월 10일)
응 늦었어
그렇게 우리는 광복을 하게되고
사실 창씨개명은 진짜 딱 5년만 실행된 정책이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악명에 비해 한국인의 뿌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이토 히로부미 이새끼가 진짜 빠르게 도입해서
50년 정도 써 왔다면
광복때쯤이면
이미 일본식 이름을 할아버지 때 부터 써온 상황이라
진짜 위험 할 수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진짜 위험했던건 융화책을 쓰려고 했다는거...그냥 천천히 친화적으로 합칠려는 계획이여서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었다면 진짜 한국 없었을수도.
원종단 : 와타시노 나마에가 일본어로 될 수 있었는데!!!!
역시 질병은 걸릴 기미가 보이면 약을 써서 최소화 해야한다
저 경우는 탄약이었고
원래 암 같은 심한 병은 약으로 폭격을 하잖아 그거랑 같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