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이앙법)
지금이야 벼농사할 때 당연히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꽤 오랫동안 금지했던 방법임.
이유는 여러가지 있는데
1.모내기를 하던 중 강수량이 부족해질 경우 벼가 싹다 죽어버려서 그 해 농사를 아예 망치게 됨.
2.제방이나 댐을 이용하면 위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 가능하지만 당시 인프라에서는 쉽지 않음.
3.모내기를 할 땐 벼들 간의 거리를 균일하게 벌려주는게 중요한데 이 것을 잘 지키지 못하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함.
등등.
조건이 까다롭기도 하고, 그 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커서 쉽게 사용되지 않던 농사 방법임.
물론 노동력 손실도 줄이고 이모작도 가능하고 재배량을 크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 법적으로 금지했어도 벼농사 떡상 가즈아란 느낌으로 알음알음 시도했었다고 전해진다.
댓글(15)
제방 인프라 어느 정도 갖춰질 떄 까지 법적으로 금지했다고 한 것 같았는데..
지금도 가뭄때 해결법이 물차 동원해서 물을 조달하는 방법임.
물차? 아니 애초에 지상 운상수단이 부족해서 수운에 의존하던 나라에서.....
백업시스템이 있고 기계가 있으면 떡상하는 일종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방식이라 그랬군
아니다 당시엔 울트라리스크 하이리턴인가?
오 여기서 울트라가?
그래서 제방 만드는거 거의 뭐 국책 사업이나 마찬가지였지
현대에선 모를 심기 전에 다른 작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큼
보통 모 심기 전에 봄배추 같은거 한 번 내고 모 심거든
ㅋㅋㅋㅋㅋㅋ 정신을 못차리네
이놈들 사냥이나 할줄 알지 농사는 영 아니구만 ㅋㅋㅋㅋㅋ
작년처럼 올해도 이맘때쯤이면 다시 비 올겁니다. 저희 다시 영차 해보죠. 영
'차고 나발이고 가뭄인데 졷됬음'
그래도 어느정도 수리정비된 조선후기에선 걍 씹고 함
그 덕에 잉여 노동력이 다른 산업이나 다른 상품작물 재배에 사용되면서 어케 좀 나아지는거 같았는데.....
조선 중기부터 이 농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신흥 부농 집단이 탄생하는 거였지 아마
이앙법도 조선 초기까지 금지된 거지
17세기 중반부터 대세가 되었음
당연히 조상님들은 금지 씹고
가즈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