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신생국 대한민국은 2차대전 종전 후 12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에 선수단 파견을 결정한다.
자금이 없다시피했으나 국민들은 되찾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당시로선 큰 금액을 전국에서 모금,
태극기를 흔들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손기정을 기수로 한 67명의 선수단을 환송했다.
그러나 여전히 열약한 환경에 있던 선수단은 부산-후쿠오카-요코하마-상하이-홍콩-방콕-콜카타-뭄바이-바그다드-카이로-로마-암스테라담을 경유하며 20일에 걸쳐 개막 직전 간신히 런던에 도착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이 첫 올림픽에서 메달까지 따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948 런던올림픽 김성집 역도 동메달
1936년, 선발전에서 일본 선수보다 40KG 가까이 더 무거운 무게를 들었음에도 조선인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가 저지당했던 김성집이
12년이 지나 31살의 나이로 동메달을 따냈다.
런던에 특파원을 보낼 처지가 안되어 BBC라디오를 듣고 이를 중계하던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아나운서가 흐느끼며 이 소식을 알렸고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는 등 해방 다음 날에 가까운 국민적 환호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김성집 또한 "12년 전 올림픽에 못나가게 막았던 일본과 출국 때 태극기를 흔들던 사람들이 생각나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4년 뒤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노장의 나이로 다시 동메달을 따냈고 태릉선수촌 관장을 역임하다 2016년 작고했다.
댓글(5)
꺼흐흑 ㅠㅠ
우리 선배님들이 이리도 노력했다오!
와...그 시대때 역도 메달이라니. 진짜 대단하신 분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일본인들이 “한국인은 유리보다 체격이 크고 힘이 세다”란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저런 경우가 있어서였죠
김성집 선생의 사진을 보면 알 수가 있듯이 당시 역도에는 인상과 용상이랑 함께 지금은 사라진 ‘츄상(클린 앤 프레스)’이란 종목이 있었음
지면에서 뽑아올린 다음 하빈신의 반동 없이 순수 힘으로만 들어올리는 종목이었음
현재는 경기중에 선수들이 무리하다가 허리를 다쳐 심한 부상이나 불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뵤어졌으나, 훈련의 일한으로 연습하기도 함
훈련의 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