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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짜이 | 24/12/29 06:33 | 추천 0 | 조회 351

대구가 극보수로 치닿은 이유 +250 [2]

SLR클럽 원문링크 https://m.slrclub.com/v/hot_article/1311338

대구가 극보수로 치닿은 이유

국채보상운동이라는 거룩한 독립투쟁정신과 2.28 학생운동의 본거지 인 대구가 현시점 전국에서 최고의 꼴통 도시로 변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1972 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영남대학교가 대명동 캠퍼스 시절
전국 최초지 싶은데 영남대 다닌던 형들(지금 75~79세)이 매일 스크럼을 짜고 2.28 기념탑이 있던 명덕로타리까지 진출하려고 했고 당시 외치던 구호는 박정희 유신독재타도였다

경찰들은 최루탄을 마구 난사하며 저지해 내가 살던 대명동 일대는 언제나 최루탄 개스로 인해 피해가 막심했지만
주민들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경찰들을 피해 달아 나는 대학생들을 숨겨 주고 그랬던 지성이 왕성했던 도시였건만

유신 독재를 완성 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사법살인을 자행한 인혁당 사건을 비롯하여 박정희의 독재가 가속화 되면서 서슬 퍼렇게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전국에서 대구가 유독 심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직장 다니던 시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인데
당시 현대자동차가 미국 포드에서 수입한 6기통 그라나다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자동차가 있었는데

대구의 어느 부자가 겁도 없이 그 차를 사서 집에 온 담날 밤에 지금은 수녀원으로 바뀐 앞산에 있던 당시 중앙정보부 대구 분실로 끌려가서 이유도 없이 모진 물고문을 당하고 반성문을 쓰고 거액의 방위산업 헌금을 하고 풀려 났다
-당시 "앞산" 단어만 들어도 전부들 치를 떨었고 친구,동료들끼리 제일 심한 욕이 앞산에 보내 줄까? 였다

이때 쯤 박정희는 별다른 이유 없이 간첩이나 사상범의 굴레를 씌워 대구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시민들이 동성로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잔 먹고 박정희 욕을 하면 바로 고발되어 경찰에게 끌려 가서 반병신이 되도록 죽도록 얻어 터지고서야 풀어 주었고

전두환이 독재하던 80 년대는 대구 동성로 동아백화점 정문 앞에 지금 정보사인
"태백공사"라고 보안사 대구 분실이 있었는데 멀쩡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보안사 중사들은 관공서와 기업체를 다니며 협박하며 대 놓고 돈을 뜯고 다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조선의 모스크바라 불릴 만큼 공산주의, 사회주의 관련 인물들 및 좌익 지식인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이었다

박정희 형인 박상희가 연루된 10.1 사건(http://naver.me/5Qxy8IhW)등 대구는 해방후 전국에서 가장 앞선 진보 인사들이 많았던
그야 말로 야도(野都)였었는데

유신으로 장기 집권을 노리던 박정희가 인혁당 사건을 급조후 사형을 집행 하는 바람에 대구 전체를 공포의 도시로 몰아 갔다

부모세대들은 자녀들에게 철저히 사상교육?을 통해 절대로 집밖에 나가서 박정희욕을 못하게 하고
노무현 대통령 모친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난돌이 정 맞는다 너는 앞에 나서지 마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하셨다

이런 저런 영향으로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어린 학생들까지 공포스러운 독재 시대를 거쳐 왔기에
대구시민들 본성은 일제 독립운동을 했던 저항 정신을 품고는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 불의라고 하더라도 매우 순종스럽게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구시민들중 30% 는 여전히 민주주의 시민 정신을 추구하고 있고
박정희-전두환-윤석렬등 계엄령을 공포한 세명의 수괴들을 겪어 봤기에 대구 시민들이 다시금 예전의 야도(野都)의 본질을 회복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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