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한 보빙사가 묵었던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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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는 원래 외국 사신의 방문에 대한 답방의 형태로 파견한 사절(사절단)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된다. 1882년 5월 22일 조선과 미국은 청(淸)의 주선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조선이 처음으로 서양의 국가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이었다. 1883년 5월 19일 조선 주재 초대 미국 공사 푸트(L. H. Foote)가 부임하여 조미 간의 조약을 비준하였다. 공사의 부임은 외교대표를 상대국의 수도에 주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조선은 곧바로 미국에 공사관을 개설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푸트는 사절단의 파견을 제의하였고, 조선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보빙사의 파견을 결정하였다.




진짜 쇼킹했겠네
진짜 이세계인가 싶었겠다
근데 사실 1800년대면 서양인들 입장에서도 뉴욕이나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들 아니면 외지인들은 그냥 자동적으로 시골 무지렁이가 될 수 밖에 없긴 했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전기라는 개념 자체도 이해하기 힘들었을텐데
분명 보빔이었는데
보빔사요?
사실 보빙사도 나라에서 최고의 젊은 엘리트층이라 출국 전에 그리고 선박 안에서도 인사법이나 식사법 등 각종 서양식 예법과 각종 문물 등의 사전교육을 반복해서 했음
하지만 이론으로 아는 것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은 비교가 안되는 것이겠지
신문 삽화로 유명한 아서 대통령에게 절하는 장면도, 사실 핸드 셰이크를 준비했는데 갑작스레 대통령이 나타나서 반사적으로 절을 해버린 것에 가까웠다고 함
ㄴㄴ, 먼저 절하고 후에 악수함.
2층 건물도 거의 없고 마차도 특권층만 겨우 탔을 떼인데,
지금 사진봐도 충격인데, 그 시절 사람이면 충격일 듯
ㅇㅇ
당시 조선의 여러층이 있는 건물은 불교식 목탑 등을 제외하면 사람이 기거하는 시설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음
왜냐면 소빙하기가 오면서 난방의 문제로 2층이나 3층 건물은 사람이 겨울을 나기 힘들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지방의 인프라가 박살이 나면서 한양으로 사람들이 몰리니까 다시 2층 한옥이 부활을 했고 당연히 지상층보다 2층이 더 저렴했음
당대 서양 기준으로도 미국은 번화한 곳이었으니
동양 입장에선 커다란 대국이라면 중국밖에 없고 거기 가서도
와~ 우리것보다 크다 이랬을텐데
저기로 간건 완전 다른 세상이고 중국과 완전 다른 휘양찬란 웅장한것들이라
기와집 초가집 있는 조선이 근대화 해서 이런걸 만들어야한다고? 싶었을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