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은 일본제국에 총 한발 쏘지 않고 항복했다!!

제목과 같이 당시 조선(대한제국)군을 지나치게 까내리는
원종이들이 많아 간단히 써봄.
대한제국군이 보유한 최대 규모의 전투함 양무호, 민간 상선에 70mm 포 3개 단 게 끝이라,
일본의 소형 구축함 저항도 못하고 침몰하게 됨.
(이 양무호마저 1904년 일본에게 징발 되어 쓰지도 못함.)
[맥심 기관총과, 독일 크루프 75mm 속사포]
육군 몇몇 무기들은 일본보다 좋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의 외교력 자금 문제로 대량 도입할 수 없었음.
(괜히 당시 대한제국군에 영국, 소련, 독일, 미국, 일본제 무기들이 혼재 된 게 아님.)
대한제국군 군기창, 걀 밀링 머신 도입한 게 끝이라,
당시 고성능 총기 자체 제작은 꿈도 꾸지 못했음.
(그나마 라이센스 받아 생산 시도하려고 했던 게 일본 아리사카 30년식.)
이런 전력임에도 대한제국군은 1907년 대한제국군 해산에 반발해
전력 격차가 극심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음.
[미스터 션샤인에서 재현한 정미의병을 대표하는 사진.]
남대문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의병에 합류해 게릴라 활동을 시도함.
중앙에 정복 입은 사람이 대한제국군 출신.
(당시 대한제국군은 일본 군복 제작 업체꺼 수입해 사용하다 보니
단추 문양이 다른 소소한 거 말고는 일본 제국과 거의 같은 군복을 입었음.)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의병이 3만명 넘게 사상자 발생함 엄청난 사건임.
(기록이 다 다르긴 한데, 사망자는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됨.)
이 사건으로 대한제국군 출신들 대부분 사망하고
의병의 연장선인 독립군 세력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음.
[낙동강 방어선, 엄청 절박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공세종말점이 온 북한이었던 만큼 엄청 잘 막고 있었다.]
6.25때는 UN(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대한제국군, 의병, 독립군에서는 그런 거 없었음.
[3.1 운동 당시 체포된 시민들, 명단에 이름도 없고 사진이 없는 분들도 많다.]
한국 현대사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기록도 되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을 기리기는커녕, 조롱하는 건 사람 답게 살지 못하는 거다.











독립운동의 가장 큰 의의가 3.1운동 - 임시정부를 거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랑 정부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건데
그걸 폄하하는 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거임 원종단을 넘어서 그냥 반국가세력이란 거지
그놈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애국한다고 말하고 다니겠지? 에휴
그게 남한이 한반도 정통성을 가지는 이유가 그 임시정부에서 나오거든.
북한은 정부수립이 9월이고 남한은 8월이라, 임시정부만 부정되면 남한이 먼저 '건국'해서 한반도 분단을 유발한 책임이 생김.
우익이라면서 빨갱이의 주장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임 ㅋㅋㅋ
3.1 운동 이후에 만든거야??
만주에서 독립군이 진짜 군사훈련 받고, 만주군이랑 전투도 했다는거 모르는 사람 생각보다 많더라.
우리땐 다들 야인시대 보고 자라서 상식이였는뎃.
신흥무관학교만 알아도 바로 납득할 사실을 모른다고?;
한국사 수업 들으면,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데;;
걍 믿고 싶은걸 믿은 다음 짜맞추기를 하지
난 제발 원종이 까는글에 반박하는 글은 그 댓글이든 글이든 긁어왔으면 좋겠음
유게 계속 보는데도 안보이는 무언가에/어그로에 반박하면서 글 올리는건
관심주기 / 본인이 허공에 쉐복 하는걸로 밖에 안보임
그리고 늘 말하는거지만 그 게시글 내에서 해결 안보고
저격 글 올리는건 이미 진거임
근데 그런데서만 싸우면 걔는 뭐가 틀린지도 모르고 쪽팔린지도 모르더라
그리고 일제강점 전후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일어나고 전투 계속 벌어지고 희생도 수만단위엿지
고종과 을사오적 파트의 충격이 너무 강해서....
사실 정미칠적도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1894년에도 동학농민운동 진압한다고 중앙군 빠진 상태에서 경복궁에서 저항했음. 고종이 런을 못 해서 붙잡히고 근현대사 시간에도 배우는 교정청 폐지 및 군국기무처 설립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