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오해들) 정말 조선시대는 5퍼만 양반이고 전부 노비였나?
이전에 쓴 거 재업
물론 잔반들도 꽤 수가 많았고
법적으론 양반이 아닌데 양반가들은 인정해주는 케이스도 많긴 했고
(양반은 법적/양반사회적/주변사회적 가치를 다 봐야하는 집단임.
과거보는 양반들 무료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인근사회에 기근 대처하고 수난도 자비로 대처하지 않으면 저게 뭔 양반임? 소리가 18세기까진 주류였음. 양반전 참고)
전문중인계층의 일부 일기에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도 있고
이거저거 논란거리도 많지만
막 노비가 95퍼에 족보 판매가 대부분 어쩌고 같은 꽤 이전에 박살난 이론들이 또 오늘 돌아다니기에 재업함
노비 비율이 제일 높을 때(70퍼)는 일반 양인들이 세제혜택 받겠다고 양반에게 저 사노비 해주십쇼 하다가 양반이 거부한 거도 나오고 그랬음




+ 머슴은 양인 신분으로 대감집에서 일해주는 노동자 신분이다
집사잖아...
사택에서 사는 직장인은 현대판 머슴이 맞습니다
회사 숙소 살고 주말에도 출근하면 머슴인가요? 아 대학원도 다님
집사라기 보다는 근대 이전 노동자 맞음. 농사가 주력이긴 하지만 일손 많이 필요한 지주, 양반 집에서 각종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머슴이라고 불렀고 이중에는 몰락한 양반도 있엇음. 즉 머슴이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하대도 그 시대의 법도에 따라 더 나이 많은 남자만이 가능했음.
아이고 공노비에 사노비까지 두배로
정보추
상식적으로 노비는 조세와 군복무의 의무가 없는데 그럼 국가 재정에 엄청난 악영향인데 그럼 상당 비율을 노비로 하게 둘리가 없고 그래서 국가가 굴러나 가겠어?
그래서 사노비 세제혜택 없애기 직전의 사건이 저 다물사리 사건임ㅋㅋㅋ
현대시대로 따지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다 노예라는 소리임 ㅋㅋ 말도 안되는 비약임
조선은 성리학에 기반한 공동체사회였음 양반으로 대표되는 사회지도층도 역할과 책임이 막중했음
참고: 머슴일로 학비벌어서 과거 합격 후 관료로 산 사람도 있었고, 본인 스스로 이를 자랑스레 여기며 자주 말하고 다녔다고..
조선이 신분제가 사라지는 과도기적인 왕조여서 조선 시작부터 양반은 어떻게 판정하며 노비는 어떻고가 항상 논란이었음
그러다 후기가 되자 조선 정부에서 그냥 다 풀어! 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후기 신분제 붕괴가 일어난거고
그것도 있고
진짜 양란양기근 이후엔 저 양반사회의 기본 틀이 반쯤 붕괴한 것도 컸지
나머지로 불태운 개 바로 항일독립운동이었고
그 외국애들쪽은 농노 하인 노예 따박따박 구분하면서 누구들은 조선시대는 왜 다 싸잡아서 노예라 그러냐고
애초에 세수 문제 때문에라도 면천이였나 제도는 조선이 오히려 장려했다고 들음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