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송논쟁은 예법에 관한 논쟁을 뜻하는건데
알못들이 옷 입는거로 쓸때없는거로 싸운다고 내려치기를 엄청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1차는 효종이 승하를 하고 현종이 즉위했으니
아직 살아있는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효종을 위해서 상복을 얼마나 입는가가 논쟁이 되었다
남인 : 고민할게 있나? 효종이 적정자이니까 3년입으면 되는거지
서인 : 喝!!!! 효종은 소현세자가 죽고 둘째인 상태에서 세자가 되어서 왕위를 이었으니까
장자가 아니니까 1년이 맞지! 이 예법알못들아!!
ㅇㅇ 그렇다.
지금 서인들은 효종 너는 이상하게 왕되었잖아 ㅋㅋㅋㅋ 라고 말하는거랑 똑같은 행동이다
유럽에서 이랬다면 바로 칼침 날라올 행동을 당당하게 한것이다
물론 남인들은 왕이랑 양반이랑 같은 선상에 놓는게 맞냐 XX들아 했지만,
현종이 즉위초기였고, 서인들의 힘이 막강했기때문에
서인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당시에도 이게 맞음? 하고 상소가 계속 올라와서
현종이 아! 뇌절금지! 하고 예송에 대한 상소를 금해서 예송논쟁이 끝난것 같았다.
그런데.....
현종 15년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나 아직도 살아있지롱
....어쨌든, 또다시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어야 할 시기를 정해야 했다.
송시열(은퇴하고 후진양성중) : 이번에도 똑같이 1년이 아니라 9개월로 하시죠?
현종 : .....새끼, 시열!
송시열 : 엩?
현종 : ㅁㅁ? 지금 왕권이 ㅈ으로 보이니?
이게 가만히 있으니까 가만히로 보이나?
왕 자리 15년차 어느정도 짬밥도 생겼고 서인들의 독주를 막으려던 현종은
이기회에 서인들을 대거 파직시키고 남인들을 대거 고용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고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이 컸던 탓일까?
지병이 있었던 현종은 2차 예송논쟁 이후 2달만에 사망해버리고 만다
이 예송논쟁이 조선시대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데
첫번째는 이짓거리를 했는데도 한명도 안죽었다는거다
물론 이 이후 정권이 바뀌는걸 환국이라고 하는데
2번째 예송논쟁으로 갑인환국이 발생했는데
그 이후로 영조가 탕평책 펼치기 전까지 환국만 일어났다하면 피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서인과 남인의 정치스타일이 이때 결정되었고
성리학이 정치를 넘어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 중 하나인데
현대적 관점으로 봐서 그런거로 왜싸움? 라고 폄하해서 안타깝긴 함
댓글(37)
이걸 탕수육 부먹 찍먹으로 비유하면 뭐가 될려나
저게 왜 심각하냐면 왕이란건 시스템밖에 있는데 이걸 시스템이 왕보다 더 중요하지 이러는거임
사실 유럽이라고 해도 저런 이니시에 무조건 피로 난리친것도 아니고
서로 응 니 자격없잖아 하고 욕만 하던 경우도 있고....
이렇게 설명하니까 이해가 쇽숔 되네
생각해보니 100년전쟁이 저거랑 약간 비슷한 뉘앙스네
근데 저건 현대적 관점으로 봐도 나름 납득된다고 봄? 결국 왕(국가 지도자)의 정통성(혹은 정당성)인거니깐
뭐 당장......북으로 하신 분들.....탄핵시키겠단 소리가 왜 나오는데.....
유럽은 훨씬 덜한걸로도 칼날아다녔다 ㅋㅋ
학생때 이파트가 좀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재 이해가 숔숔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