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황허강 대홍수
일본군이 허난성으로 진격하고 역사적 도시인 카이펑까지 함락당하자
허난성의 성도인 정저우는 풍전등화 상태에 놓이게 되었음
당시 수도였던 난징이 함락되면서 주요 정부기능을 우한으로 이전한 상태였는데
정저우가 함락되면 우한으로 향하는 육로와 철도가 열리게 되므로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던것
진격하는 일본군을 막을 역량이 없었던 장개석은 제방을 터뜨려 수?공으로 공세를 저지하게 되는데..
무려 한반도 면적에 맞먹는 땅이 잠기고
황허강의 흐름 자체가 바뀌게 됨(전후에 복구함)
그런데 문제는 피해 반경을 단단히 잘못 책정해 피해 반경 내 주민 소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것임
이 대홍수로 89만명의 중국인이 사망하고 12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음
1300만명이 넘는 중국인을 제물로 바친 수공이었던 것임
그렇게해서 막은건 일본군 2개 사단
중일전쟁 발발 후 나치와 국민당과의 협력은 끊겼지만 이 사건 당시엔 아직 협력관계였는데
오죽했으면 천하의 괴벨스가 장개석 정부를 비난하고
보다못한 일본군이 이재민을 구하는 ㄹㅇ웃기지도 않는 광경이 펼쳐졌음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한을 지켰냐고?
아뇨
4년뒤, 이때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허난성은 역대급 대기근을 맞았고 대략 300만명이 아사하게 됨
아래 짤은 나무껍질을 벗겨먹는 사진인데 당연히 인육까지도 먹음
식량값은 밀 기준으로 약 500배가 치솟았으며
아사자가 속출하고 난 뒤에야 구휼사업이 시작됐지만
그 구휼기금마저도 17%씩 수수료로 뜯어갔음
훗날 허난성을 취재한 유명 저널리스트 시어도어 H. 화이트(1915~1986)가
이러한 참상을 취재해 타임지에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가 장개석을 만나 허난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장개석은 '그럴 리가 없다'며 불같이 화를 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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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3백만아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