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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이 자는 1960년 강원도 강릉 출신이다.
박근혜 탄핵당시 무려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아
헌법재판소에서 제발 탄핵시켜달라고 눈물을 흘린 걸로 유명하다.
태극기부대로부터 탄핵5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이번에는 막을 수 있었던 윤석열 탄핵소추에 대해 원내대표로서 적극 차단 노력을 하지 않고
절체절명의 시기에 탄핵을 전제로 한 내각제 개헌 운운하며 기회주의자적 면모를 보였다.
표결을 자유투표로 방치함으로써 4표차라는 참으로 아까운 차이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말았다.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압박했더라면 4명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강릉 촌뜨기인 권성동은 1980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재명이 중앙대 법학과 82학번으로 이들은 함께 학교를 다니며 매우 친한 사이다.
1985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약 15년간 검사생활을 하였다. 이때 윤석열과도 친분이 생겼다.
검사생활을 발판으로 이명박에게 픽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권성동이 나중에 친박 학살자가 된 계기이다.
전당대회에 모바일 투표를 도입해 훗날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는 비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6년 김무성, 유승민과 함께 자기당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을 깨고 뛰쳐나가
바른 정당을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탄핵5적)
이후 다시 자유한국당에 복귀하여 당대표 홍준표에 빌붙어 승승장구하는 듯 하였으나
황교안이 당대표가 되면서 권성동을 공천 탈락시키자 당을 박차고 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그 후 윤석열에 빌붙어 정권을 창출하며 국힘당에서 승승장구하였으나
이준석이 대표가 되면서 당은 풍비박산 나게 되었다.
이어 한동훈 체제에서 윤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제기되자 원내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탄핵소추를 제대로 막지 못했고 당론을 강하게 밀어붙여도 모자랄 판에
자유표결을 강조하는 등 당내 반란표로 자기당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두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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