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중국 갱단에 비해 한인 갱단이 손쉽게 없어진 것은 또 따른 이유가 있다.
갱단 조직원이 ‘풀타임’ 직업인 중국 갱단원들과 달리 한인 갱단원들 상당수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파트 타임’ 조직원이었다. 또한 자녀들에 대한 극성스런 교육열과 유교사상을 주입시킨 한인부모들의 역할도 중요했다”고 말했다.
전직 KP 조직원 E 씨(50대)는 “당시 한인 갱단들이 중국갱단들처럼 큰 규모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인 특유의 '똑똑함' 때문 이었다”며 “각자가 잘난 맛에 살다보니 뭉치지 못했으며, 부모들의 영향으로 탈퇴하는 조직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E 씨는 본지에 이렇게 덧붙였다. “심지어 한인 언론사 기자로 취직한 조직원도 있었고, 지금 뉴욕한인회에서 주요 직책을 갖고 있는 선배 조직원도 있다. 어떤 조직원은 정치인 보좌관이 된 사람도 있었다. 상당수 조직원이 ‘전문적인’ 중국 갱들과는 달리 젊은 시절의 일탈로 자신의 갱단 생활을 치부(恥部)하는 것 같았다.
감옥을 들락거릴 정도의 ‘프로페셔널’한 조직원들은 전체의 20%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계 갱단 처럼 조직을 탈퇴하면 뉴욕을 떠나야만 하고, 안 떠나면 무자비하게 복수를 하는 규율을 만들었다면 아마 아무도 갱단원을 안 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아마추어’도 ‘프로’도 아닌 ‘세미프로’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제는 1.5세 한인 갱단원들 상당수가 가정을 꾸리고 중년의 나이가 됐으니 아마 철이 들었을 것이다”
맨해튼 한인타운과 플러싱에서 20년 넘게 업소를 운영한 적이 있다는 70대의 F씨는 “당시의 한인 갱단원들은 한마디로 나쁜 범죄자들이었다”며 “세월이 흘렀다고 절대로 이들을 미화하거나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F 씨는 “보호비를 받는 업소에서 문제가 생기면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중국 갱단들과 달리 한인 갱단들은 항상 ‘나몰라라’ 했다”면서 “한마디로 한인 갱단들은 비겁하고, 돈만 밝히는 조직이었다”고 비난했다.
F 씨와 비슷한 증언은 LA의 한 전직 언론인으로 부터도 들었다. LA 한인 일간지 기자출신인 60대의 김모 씨는 본지에 이런 말을 들려줬다.
“1992년 LA 폭동당시 코리아타운에서 보호비를 뜯어가던 한인 갱단들은 폭동이 터지자 모두들 업소를 외면했다. 이로 인해 한인 갱단들은 중국 갱단들의 비웃음을 샀다. 오히려 중국갱단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보호비를 주면 우리가 폭도들로부터 업소를 보호해 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이 있을 정도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인 갱단들은 중국 갱단들에 비해 의리도 없고 신용도 없다. 미국내 중국 갱단들이 나름대로 규율을 지키며 명맥을 유지하는 반면 한인 갱단들은 오로지 이권에만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거짓말, 거짓행실
우리가정에선 자녀가 어릴때부터 거짓말을 가르치고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똑똑하고 잘난사람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사회에선 거짓말이 유행하여 서로서로 말을 믿지 않고 남의말을 믿지않는것을 영리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서로 의심,억측하여 단결이 되지 못한다.
중국인도 타락하여 허위가 많지만 그들은 적어도 상업에만은 신용을 지킨다.
그래서 동남아와 북미에서도 상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계의 신용조차 잃고 말았다.
신용없이 민족의 자존을 보전할수 없다.
- 도산 안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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