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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해삼.. | 23/02/19 00:48 | 추천 26

대구리배의 추억(기선저인망 쌍끌이어선) +5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65821016

오래전 나는 백수생활을 하다가 연근해어선을 잠시 타본적이있다.


 

어찌나 힘들던지 다치지않고 무사히 돌아온것 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한다

 

힘들다고 악명높은 대구리배의 정식명칭은 대형 기선저인망이며 배 두 대가 한 조로 작업을 하기때문에 쌍끌이어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의 크기는 한대당 200톤의 무게에 버스4대를 붙여놓은 크기와 같다.

이 배의 조업방식은 배 두대가 서로 연결된 그물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힌채 끌고가면서 고기를 쓸어담는데 그물코가 작아

대부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게 된다


 

그래서 바다의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는 조업방식이라 악명높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쌍끌이 조업을 금지시켰고 

그 어선들이 한국으로 팔려와 한국에서 쌍끌이 조업이 행해지고 있으며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중국의 쌍끌이가 

큰 골치덩이로 다가오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운반선을 타고 제주도 남쪽 해상에 떠있는 본선에 투입되고 첫날부터 약800개의 고기상자를 운반선으로 옮기고 가만히 서있으면 허리가 뒤로 꺾이는 야멸찬 신고식

을 한채 그 배의 11명의 선원들과의 본격적인 선상생활이 시작되었다.

배가 전진을 하며 그물을 끄는 동안에는 비교적 수월하다. 떨어진 그물을 손본다든지 윈찌에 기를칠을 한다든지 개인의 빨래도 하곤 한다. 

첫날부터 진 풍경이 벌어졌다 선미의 갑판위에서 선원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조기장이 화장(배에서 밥하는 사람)과 말다툼끝에 눈 밑을 칼로

그어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화장의 몸에 문신이있었고 이 문신때문에 둘이서 다투다가 벌이진 사단이었다. 이 화장이 문신만있는 찐따라서 그 다툼은 

다행히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선원들이 거칠다고 일이 힘들다고 들었지만 

오자마자 겼었던 여러 일들에 의해 나는 두려움과 긴장감에 지옥으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망망대해... 도망갈수도 없는...실로 암울한 처지였다.

배에서는 잠자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않다 어획물의 형편에따라 새벽이고 낮이고 자야하며 일어나야 한다. 잠은 길어야 4시간 정도이고  


 

침실은 그야말로 관짝과 거의 흡사한 천장이 낮아 앉지도 못하는 작은 공간안에서 자는데 1,2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물을 끌다가 배가 힘겹다고 느껴지면 선장이 양망 신호를 내리는데 육감으로 판단하며 

온 선실이 떠나갈듯 종소리가 요란하다. 각자의 맡은바 위치에 따라서 양망작업이

나뉘는데 나는 초짜라 비교적 쉬운 작업, 윈찌에 감겨지는 와이어를 손에 쥔 쇠파이프로 밀었다가 놨다가 하며 와이어를 고르게 분산시키는 일을 했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위에서 굵은 와이어를 윈찌로 감아올리는 위험한 작업이라 서툰 작업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고함과 욕설이 난무한다

그렇게 마치 바다속으로 연을 날리듯 길게 늘어져 끌려오던 그물의 끝단 잠자리채같은 부분이 드러나면 마지막으로 배위에 장착되어있는 크레인이 그 뭉치를  

들어올려 갑판위에다가 어획물을 쏟아놓는데 바다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는 생명체는 거의 다 잡혀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기,고등어,전갱이,아귀,병어,갈치,서대,농어,한치,문어,갯장어,붕장어등 심지어 랍스터로 잘못 불려지는 닭새우까지 올라온다.


 

우리배는 조기잡이가 주종목이기에 우선순위로 조기를 세척하여 크기별로 상자에 담는데 신선도 유지를 위해 작업은 빠르게 진행이되었다.

고기를 얼마나빨리 얼려서 보관하느냐에따라 등급이 나뉜다. 잘 익었다고 표현을 하며 황금빛으로 노르스름한 것이 상급이었고 신선도가 떨어지면 색이 바랜다.

돈에 직결된 문제라 늘 긴장속에서 서툰 행동을 용납치 않았다. 나는 광주리에 조기 일정량을 담아 바닷물로 세척을 하고 광주리를 

숙련공에게 가져다 주는 일을 했다. 그러면 숙련공들은 몆석,몆석, 크기별로 선별하여 나무상자에 담는다.  

고기가 담긴 광주리의 무게가 실로 상당했기에 이 작업은 대단히 힘이들었다. 조기를 우선으로 그다음 값나가는 생선을 순서로 작업하다가 나머지는

갑판위에 쪽문을 열고 다시 바다속으로 버리는데 영문도 모른채 잡혀화 죽은채 버려지는 물고기의 양과 종류가 매번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이 쌍끌이 조업을 금지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낮에 양망을 하게되면 뙤약볕이 건조를 촉진하는 변수로 작용을 하기에 순서에밀리면 문어도 그냥 버린다.

끌어올린 고기의 양이 많으면 그 고기를 전부 처리할때까지 잠을 못잔다. 어선의 특성이 잡은 고기의 양에따라 수입이 나뉘는 보합제이기에 모두가 

군 말없이 맡은 일을 해낸다. 돈 앞에 사람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순간이다.

내가 배를 탄 시기가 8월이었고 승선한지 일주일쯤 지나자 태풍이 불어왔다. 태풍이 불면 조업이 불가능 하다 그래서 어선들은 전부 피항을 가는데 대부분 

흑산도로 피항을 간다. 얼핏들은 예기로는 피항을가서 섬에다가 배를 대면 하급선원들이 도망을가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배는 

섬에 정박시키지 않고 육지와 어느정도 거리를 둔채 태풍을 지나보낸다고 한다. 나도 한편으론 가능만 하다면 도망을 가고싶었는데 그런 희망조차

사라진것 같아 낙심이 되었다. 이윽고 배는 태풍을피해 섬에 다다랐는데 선장은 마음을 바꿔 먹었는지 방파제안으로 배를 바짝 접안시켰다.

배는 흑산도 방파제안에 계류삭으로 묶여지고 많은 배들은 서로를 묶여진 홋줄에 의지한채 한 덩어리가되었는데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접안을 마치고 배 밑의 침실에서 쉬고있었는데 갑자기 위에서 여자소리가 들려왔다.깜짝놀란 나는 무슨 이런일이 다있나

싶어 올라갔더니

화장을 짙게 한 젏은 여자가

밥을 해준다고 쌀을씻고있었다. 그러면서 보이는 선원마다 " 오빠~ 오빠~" 그러면서 자기가게에 놀러오라고 귀여운 말투로 아양을떤다

알고봤더니 흑산도는 큰 섬이고 여기에는 단란주점도 여러개가 있는 제법 상권이 형성이된 섬이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육지에서 팔려왔는지 납치되어왔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도시와 다름없는 세련된 용모로 제법 화류계의 자태를 뽐내고있었다.

배들 사이엔 조그만 통선이 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섬에 볼일보러 나가는사람, 볼일보고 배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택시처럼 실어날랐다.

태풍이 지나갈려면 며칠은 정박한채 대기하여야 하는데 이 시기에 전국의 많은 어선들이 흑산도로 피항을와서 흑산도에서 돈을 쓴다

그래서 흑산도는 태풍때 피항을 오는 어선들이 먹여살린다는 말도 있었다.

배에 사단이 일어났다. 일할때 꿋꿋하게 잘 버티던 두명의 선원이 안보였는데 한명은 여객선타고 도망갈려고 하다가 여객선 선창장에서 잡혀서

전투경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차별로 맞고는 배로 잡혀왔고 또 한명은 아예 종적을 감췄다. 그렇게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4일째 간부들을 중심으로 또다시 추노꾼들이

꾸려지고 종적을 감췄던 갑판원이 결국 그들에게 잡혀왔다. 잡혀온 갑판원도 배안에서 맞았다.  

이 갑판원은 어디 숨어서 배가 출항하기만 기다리는데 배가 떠나지않자 배가고파서 나왔다가 잡혀왔다고 했다.

일할때 내색도없이 기간을 채울것 같았던 두 사람이 이런일을 벌이고 폭력사태까지 발생하게되니 나의마음도 실로 착잡해졌다.

조기장에게 칼로 베임을 당했던 화장은 선장과 이야기가되어 흑산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집으로 간다고 배에서 내렸다.

태풍은 지나가고 우리배는 다시 조업을위해 제주도 남단으로 내려갔다.

배에 화장이 없어지고 주방일을 하연 혜택이 많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내가 얼떨결에 화장직을 넘겨받았다. 

주방에서 밥을 하는건 더 힘이 들었다.


 

양망작업과 고기 선별 적재 투망 모두 그들과 똑같이 하면서 밥은 밥대로 해야했다.

반찬은 양망때마다 갑판에 널부러져있는 생선을 선택하여 조리한다. 생선으로 회를 치는건 숙련된 갑판원이 해주는데 나머지 국이나 찌게 설거지는

직접 해야 했다. 밥이 완성되면 제일먼저 선장에게 갖다주는데 할수있는 한 정성스럽게 차려서 전해줬다. 어느날 철가방에 담아서 선장실로 이동하다가

파도에 균형을 잃고 튀어나온 와이어 가닥을 밟고 말았다. 매일 소금물에 상처는 낫지를 않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주방에서 조리를 할때면 바로 옆 엔진룸에서의 소음과 열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데 주방의 열과 합하여져서 언제나 땀이 범벅이된채 조리를 해야했다.

파도가 심한날은 도마에 칼질을 하다가 앞으로 부딪혔다 뒤로 부딪혔다가를 반복하며 일을 한다. 때로는 밥물이 넘어와 살에 데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극한의 환경이었다. 칼질을 하면서 나태하고 안일했던 나를 돌이키며 많이 반성했다. 땀이 너무 많이 흘러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간다. 한번은 양망중에 큰껀을 터뜨렸다. 그물에 얼마나 많은 조기가 들었는지 크레인으로 들때 배가 거의 뒤집힐 뻔 했다. 

선장은 좋아서 마이크를 쥔채로 비명섞인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이제 곧 해야할 힘든 작업때문에 무거운 마음이 되었다.

배에서의 작업은 내게 너무 힘이 들었다.찔린 발도 낫지가 않아 절며 다녔다. 어느날 선장에게 말을하여 다음 운반선으로 집에 가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마지막날 모두가 잠든 시각 그물에 잡혀온 닭새우를 솥에 삶아 먹으며 혼자 많은 생각과 각오를 다졌다 두 달간의 승선생활은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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