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도 같았던 대만 총통 사건... +14

2004년 대만 총통(대만에서는 대통령을 총통이라고 부름) 선거.

대만은 미국과 동일하게 4년 임기에 재선까지 가능했기에, 

현직 총통인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사진 왼쪽)과

부총통인 뤼슈롄(오른쪽)이 재선에 나섰음.

(2000년 총통선거 결과)

반면 야권에서는 2000년 총통 선거 당시 쑹추위와 롄잔으로 표가

완벽하게 갈려 대만 민주화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허용했던 것을

교훈삼아 이번 선거에서는 롄잔(사진 왼쪽)이 총통,

쑹추위(오른쪽)가 부총통으로 나서는 야권연대가 전격 성사됨.

선거전은 여느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전과 다를바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는듯 했음.

하지만 선거일인 3월 20일을 하루 앞둔 3월 19일, 사건이 벌어짐.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차에 탄 채 선거운동을 하던

천수이볜이 총격을 당하고 말았던 것임.

천수이볜은 급히 인근 치메이병원으로 이송되어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다행히 총알이 주요 장기에서 떨어진 하복부에 박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음.

천수이볜은 수술을 끝내고 바로 타이베이로 돌아갔고,

그날 늦은 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잘 회복중이다'라는

대국민 담화를 내보냄.

총격 사건이 벌어지며 선거운동은 양측 후보 전부 전면 중단했지만,

천수이볜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기에(대만의 선거법상 후보가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거 일정을 연기할 수 없게 되어있었음)

다음날인 3월 20일, 예정대로 선거는 진행되었음.

그런데, 선거 결과는 천수이볜 50.11% vs 쑹추위 49.89%.

불과 29,000여표차의 초접전 끝에 천수이볜의 승리였음.

해당 선거 결과는 대만 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대만 특유의 선거방식 때문임.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차후 중국 대륙 통일시 시차로 인해 동부의 선거결과가

서부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대륙국가인 미국, 캐나다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문제임. 물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전국을 베이징 시간대로 통일했지만...)는 이유로 

선관위가 투표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고,

무조건 선거가 끝난 이후 최종 투표결과만 공개하고 있음. 

같은 이유로 대만은 출구조사 역시 전면 금지임.

(사진은 2018년 대만 지방선거 선거방송.)
 

하지만, 이처럼 대만의 선거방송을 보면

여느 국가의 선거방송과 다르지 않게 

투표수가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각 개표소에 언론들이 인력을 파견하기 때문임.

각 개표소에 파견된 인력들이 개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언론사에 보내고, 언론사는 정보를 취합하여 개표 상황을

실시간으로 소개받는 것임.

문제는 언론들이 독자적으로 개표현황을 집계하다보니

언론사별로 득표수가 조금씩 달라지고,

오류 정정이라며 득표수가 내려가는 일도 가끔 생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언론사들이 빠른 정보를 위해 경쟁하다보니

오류가 제대로 수정되는 일이 없었고,

개표가 끝나자 친국민당 언론들은 롄잔이 앞섰다,

친민진당 언론들은 천수이볜이 앞섰다라고 서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임.

일단 공식적인 선거 결과는 앞서서도

말했듯이 0.22% 차이, 29,518표 차이 천수이볜 승리.

당연히 이렇게 선거가 끝나자 롄잔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대신 천수이볜 총격 사건이 천수이볜과

민진당의 불리한 판세 반전용 자작극이 아니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함.

1. 총통 저격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저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대만 경찰은 탄피를 회수하고 이것이 수제라는 결론까지는 내렸지만, 용의자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사망한 채로 발견되면서 저격범의 정체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음.(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증거의 대부분이 사망한 용의자를 가리키고 있는 상태였음)

2. 천수이볜과 뤼수롄은 경호상 같은 차량에 타면 안되지만 같은 차량에 탑승했다.

→ 행정부는 경호 실수였다고 해명함.

3. 정부는 가장 가까운 병원이라는 이유로 사건 현장에서 6.5km 떨어진 치메이병원으로 이송했으나 3.5km 떨어진 곳에 청궁대학병원이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3km나 가까운 병원이 있음에도 치메이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정보조작의 정황증거다.

→ 행정부는 이에 대해 촌각을 다투던 상황이라 청궁대학병원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함.

4. 현직 총통이 선거유세 중에 왜 방탄복을 입지 않았는가

→ 행정부는 2번과 마찬가지로 경호 실수였다고 해명함

5. 두 후보간의 격차인 2만 9천여표보다 훨씬 많은 33만여표의 무효표가 나왔다

→ 선관위는 이들 중 대부분은 도장을 정확한 위치에 찍지 않은 표에 해당된다라고 해명함

이에 대해 천수이볜과 민진당은 

'총알이 몇cm만 더 안쪽에 들어갔다면 천수이볜은 사망했었을텐데

이런 목숨을 건 자작극을 하는 미친 사람이 어딨겠냐'라며 일축했고

대신 '앞으로 1% 이내의 격차로 결정된 선거에서는

자동 재검표를 의무화하도록 하겠으며,

이를 이번 대선에 소급적용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국민당은 '그딴거 필요없고 지금 당장 재검표해라'라면서 맞섰음.

결국 이 선거결과는 대만 내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함. 

롄잔은 총통 관저인 총통부 앞에서 지지자들을 이끌고

농성을 하기 시작했고, 국민당 지지자들은 선관위 건물에 들어가

난동을 피우기도 하였으며,

반대로 민진당 지지 대학생들이 롄잔은 결과에 승복하라며

단식투쟁에 들어가기도 했음.

롄잔과 쑹추위는 단식투쟁을 하는 민진당 지지 대학생들 앞에서 

'4월 10일까지 천수이볜이 재검표를 수용하지 않으면

시위대를 몰고 총통부에 쳐들어가겠다'라는

수위 강한 발언을 했다가 

개소리 말고 빨리 선거 결과나 수용하시죠?'라는 핀잔을 듣기도 함.

결국 4월 10일, 롄잔과 쑹추위 지지자들이

천수이볜 규탄 시위를 열었고,

이 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며 14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천수이볜은 전수 재검표를 수용했음.

하지만 전수 재검표는 수개월 이상의 과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5월 20일로 예정되어있던 취임식을 그대로 열고

천수이볜은 재선 임기를 시작했음.

(패배 승복 선언을 하는 롄잔)
 

그리고 11월 4일 마침내 나온 전수 재검표의 결과는

표차가 25,000여표로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천수이볜이 앞섰고,

결국 전수 재검표 결과가 나온 직후 롄잔은

패배 승복 선언을 하게 됨으로써

수개월간의 혼란은 최종적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음.

이후 2005년 1월에는 국민당 지지자들로

구성된 '3.19 총격 특별조사위원회'가 자작극이 맞다는

보고를 내놓았지만, 국민당 지도부에서는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야당 국회의원이

'CIA 보고서를 입수한 결과 CIA에서는 자작극이 맞다고 판명했다'라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천수이볜 측에서

'그거 CIA가 만든거 맞긴 한거냐'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없어 흐지부지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