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정보사 장교 출신이자 안기부에서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했던 "박채서"씨는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충격적인 증언을 하였다. 과거 영관급 장교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적이 있다는 것.
비교적 최근 국군의 북파 공작이 실제로 진행됐었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장교가 납북됐다는 증언은 곧 언론을 통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부와 국방부를 대상으로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이에 정부에서는 해당 사안과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는다. 실제로 1999년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의 "정 모 중령"이 북한 정보기관에 의해 납북됐다는 것이다.
전말은 이러했다.
"정 중령"은 당시 정보사 소속의 장교로서 북중 국경지대에서 비밀공작 임무를 수행하던 요원이었다.
1998년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한국 정부는 관련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요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부터 국정원과 정보사는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과의 치열한 첩보전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정 중령" 등 영관급 장교와 부사관들로 구성된 정보사 침투팀이 북한 영변 핵 시설 근처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물을 입수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 정부는 이를 IAEA에 분석 의뢰하였고 실제로 북한이 핵개발을 위한 플루토늄을 확보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정 중령"은 이 임무 성공을 공로로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정 중령"이 이끌던 정보사 침투팀은 이후 평안북도에 다시 침투하여 고성능 폭약 훈련장의 흙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후에 생기게 된다. 임무 수행 후에도 블랙 요원으로 북중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던 "정 중령"이 한 조선족 여성을 알게 된다. "정 중령"을 수상히 여긴 이 여자는 자신의 오빠에게 "특무(특수임무를 하는 정보요원 지칭)를 하는 사람인 듯 하다"라고 알렸다.
그런데 하필 이 오빠라는 사람은 북한과 국경무역을 하는 사람이었고, 북한에 중국산 물품을 반입하던 도중 북한 세관에 밀수 혐의로 붙잡히게 된다. 이 때 이 사람이 북한 측에 혐의 무마를 대가로 여동생에게 들은 "정 중령"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고, 북한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정 중령"의 숙소를 급습해 그를 납치한 것이다.
1999년 3월 말, 한국의 D모 일간지 사회면에 자그마한 단신 기사가 실렸다. 중국 단둥에서 사업을 해온 한국의 기업가가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기사는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서초동 정보사 본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그 기사의 "한국인 기업가"가 바로 "정 중령"이었기 때문이다.
단둥에 한국고려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 파견돼있던 "정 중령"의 숙소엔 침입 흔적이 있었고, 납치 과정에서 저항을 한 듯한 혈흔도 발견되었다.
사건 발생 후 정보사에서는 비밀리에 조사팀을 파견했으나 큰 수확을 얻지 못했고 임무 수행 중 납치되어 사망했다고 1차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약 6개월 후, "정 중령"은 제 발로 중국에 나타났다. 머리엔 상처가 여전했고, 심신이 많이 피폐해진 상황이었으나 거동에는 불편함이 없는 상태였다
서울로 귀환하여 치료를 받은 "정 중령"은 정보당국에 의해 본격적인 신문을 받게 됐다. 그가 북한에 의해 이중 간첩으로 포섭됐을 가능성을 염두해서였다.
처음엔 정예요원인 "정 중령"이 북한과 잘 교섭하여 풀려난 것이 아닐까 판단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많다고 판단한 당국이 심층적인 신문을 더 진행했고, "정 중령"은 충격적인 사실을 실토했다.
북한의 심문관들은 남한에 있는 "정 중령"의 가족들까지 파악해서 죽여버리겠다고 강압과 고문을 가했고, 결국 견디지 못한 "정 중령"은 대북 공작망과 관련된 일부 정보를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측으로부터 이중 간첩 지시를 받고 풀려났다고 밝혔다.
정보당국은 "정 중령"에게 별다른 처벌을 가하지 않았다. 그가 납북되면서 모진 고문과 극한의 상황으로 심신미약이였다는 점, 정보요원으로서 대한민국에 기여한 공로가 큰 점을 고려할 때 정보활동 과정에서 규정을 어긴 것은 맞으나, 중벌에 처할 사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 중령"은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장교로서는 전역하였으며, 이후 군무원으로 일했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 중령은 대북 정보활동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정보활동을 벌였지만 신분 노출로 북한에 불의의 습격을 받아 삶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것이다.
십 년이 넘게 철처히 군사기밀에 부쳐지다 2011년 갑작스럽게 노출되어 큰 파문을 일으킨 대한민국 장교 납북 사건 논란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요약:
1. 북한의 핵개발로 남북간 첩보전이 한창이던 90년대 말, 정보사 소속 "정 중령"은 북한 영변 핵시설에 침투하여 토양 샘플을 입수해온 바 있는 정예 요원이었음.
2. 이후 북중 국경지대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던 중, 조선족 여성과 친분을 쌓는데 여자가 "정 중령"을 남한의 정보요원으로 의심
3. 북한에 중국 물건을 팔던 조선족 여자의 오빠가 이 사실을 북측에 얘기해버렸고,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정 중령"의 숙소를 급습해서 납치함.
4. 비상이 걸린 정보사는 급히 조사팀을 파견했으나 흔적을 찾지 못해 1차적으로 납치 후 사망으로 결론 지음. 그런데 6개월 뒤 "정 중령"이 돌연 중국에 나타남.
5. 서울로 귀환해 치료를 받은 "정 중령"은 신문 과정에서 전말을 밝힘. 남한에 있는 "정 중령"의 가족까지 다 죽이겠다는 북측의 협박과 고문을 견디다 못해 결국 일부 정보를 털어놓았으며, 이중 간첩 지시를 받고 풀려났다는 것.
6. 한국 정보당국은 납치 당시의 상황과 "정 중령"이 세운 공로를 고려해서 따로 처벌을 가하지 않았음.
자료 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5670952#home)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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