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51386083
1. 사막이 많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달리 카타르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외세가 많이 침략한 땅임
2. 석유가 발견되기 전의 카타르가 유명해진 이유는 이곳의 특산품인 진주 때문임. 지금도 진주는 카타르를 상징함.
3. 진주를 비롯한 무역의 이권을 놓고 유럽 상인들과 걸프만을 지배하는 세력은 자주 충돌을 했음. 그러다가 포르투갈 상인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본격적으로 항구를 건설했고 해양강국 포르투갈 전성기 때에는 국제 무역의 중요 거점이 됨.
4. 조개의 또 하나의 상업적 가치는 바로 천연염료의 재료라는 점임. 카타르 지역은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자주색 천연염료를 생산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음. 그래서 이슬람 국가는 붉은색 아니면 녹색을 주로 사용하는 것에 달리 카타르는 특이하게도 국기에 자주색을 사용함.
5. 유럽과 경쟁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내고 카타르 지역을 지배하게 됨. 하지만 그 결과로 걸프만 지역의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유럽인들과 교역하던 카타르 지역의 토후(호족)들은 불만을 품음.
6. 영국이 걸프만 지역에 진출하면서 영국군과 손을 잡은 가문이 나타났으니 바로 칼리파 가문임. 칼리파 가문의 족장(셰이크) 술만 빈 하마드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지역의 독립을 손에 넣는데 성공함.
7. 하지만 술만 빈 하마드의 아들들끼리 내분을 벌이면서 세력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서 다른 호족들이 칼리파 가문을 몰아냄. 쿠웨이트에서는 사바(Sabah) 가문이 칼리파 세력을 몰아냈고 카타르에서는 타니(Thani) 가문이 칼리파 세력을 몰아냄. 칼리파 가문은 바레인에서 영국과 국제 무역을 통해 다시 힘을 축적함.
8. 카타르를 지배했던 타니 가문은 영국을 싫어했기 때문에 바레인 & 영국 연합군과 싸우게 되었고 그 결과 처참하게 발림. 타니 가문은 카타르의 주요 항구들을 내주고 내륙 지방으로 후퇴함.
9. 그런데 뜻밖의 세력이 걸프만의 토후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음. 아라비아 반도를 석권한 사우드 가문임.
10. 카타르 남부에 있는 7명의 토후들, 즉 지금의 UAE는 사우드 가문과 화친을 맺고 타니 가문을 공격했음. 이 일 때문에 카타르와 UAE는 오랫동안 앙숙 관계였음
11. 사우드 세력도 싫고 영국도 싫었던 타니 가문은 결국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음. 아랍인들 관점에서 보면 타니 가문은 터키인들에게 똥꼬쇼를 한 반역자인 셈임
12.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투르크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자 카타르는 결국 바레인 & 영국군에게 무력으로 점령당함.
13. 영국은 타니 가문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는데 바레인의 칼리파 가문의 지배를 받는 대신 자치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었음. 타니 가문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카타르는 바레인의 지배령이 됨.
14. 1935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영국 자본이 카타르에 진출했고 막대한 석유의 이익을 목격한 타니 가문은 영국 응디의 힘을 깨닫게 됨. 그리고 바레인보다 더 강력한 친영 세력이 되었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타니 가문과 원수지간이었던 UAE도 영국의 보호령이 되면서 그들은 서로 마주할 일이 많아졌음
15. 1971년 영국은 식민지 운영을 포기하고 바레인, 카타르, UAE의 독립을 제안하게 됨. 이란은 바레인이 자기네 영토라 주장했기 때문에 바레인은 영국의 보호령으로 남기를 원했고, 카타르는 영국이 UAE의 여덟번째 국가로 가입하라는 제안을 거부하면서 상당히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
16. 바레인은 영국이 이란을 견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대신, 전제왕권을 인정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음. 영국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바레인은 왕국으로 남게 됨. 바레인은 나중에 독립하면 왕의 칭호를 토후(emir)에서 왕(king)으로 격상시켜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바레인 왕이 영국 여왕과 동일한 격에 서겠다는 것을 의미함. 영국은 이 조건도 받아들이고 바레인은 토후국이 아닌 왕국으로 독립하게 됨.
17. 카타르의 타니 가문도 바레인을 따라해서 친영국가로 남는 조건으로 UAE에 가입하기를 거부함. 영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카타르는 독립된 왕국이 되었음. 타니 가문은 칼리파 가문보다 자기들이 더 친영파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king의 호칭을 채택하지 않고 emir로 남았음.
18. 독립하면서 카타르는 항상 주변국들과의 외교로 내부적인 혼란을 겪어왔음. 영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세력이 늘 카타르에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압박을 가했기 때문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카타르 국왕 아마드 빈 알리 알 타니는 바레인을 압박하기 위해 이란과 손을 잡으려고 했음. 그러자 아마드 빈 알리의 사촌이자 총리였던 할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가 왕족 내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아마드 빈 알리를 쫓아냈음. 할리파 빈 하마드 왕은 이란과의 관계를 끊어버림.
할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 (타니 가문의 하마드 아들 할리파라는 의미임)의 초상화
19. 하도 외세가 많이 개입하는 나라라서 카타르는 외국 세력을 등에 업은 왕자들의 반란이 자주 일어났음. 제일 유명한 것이 1995년 아들이 아버지를 몰아낸 사건임.
20. 할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은 1995년까지 카타르를 통치했는데 그는 왕세자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가 국왕의 권한을 넘보는다는 이유로 그를 에너지부 장관에서 해임시키려고 했음. 부왕 주변에 자기 사람들을 심고 정보를 입수했다고 함.
21. 이 사실을 미리 알아챈 왕세자 하마드는 할리파 국왕이 스위스를 방문하고 있을 때, 부왕의 측근들을 숙청하고 자기가 왕이 됨. 할리파 국왕은 결국 왕위를 하마드에게 넘긴다고 발표하고 카타르에 귀국하여 조용히 살게 됨. 쿠데타로 사촌을 몰아내고 집권한 왕이 아들의 쿠데타로 왕위를 잃은 셈임.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타니 가문의 할리파 아들 하마드라는 의미)
22. 아버지의 친서방 노선에 변화를 줄 필요를 느낀 하마드 국왕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후원하게 됨.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외교 역량으로 삼아 미국과 탈레반, 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등, 외교적 수완도 있는 인물이었음.
23. 쿠데타를 두려워했던 하마드 국왕은 왕위를 2013년에 아들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에게 물려줌. 국제 유가 하락과 글로벌 경제난의 여파로 타니 왕가 내부에서 불만이 생겼기 때문임. 타니 왕가의 내부 갈등은 상당히 심각해서 처음 왕세자였던 야심 빈 하마드가 왕위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었음. 결국 야심의 동생인 타밈이 왕위를 이어받게 됨.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
24. 타밈 국왕은 석유에만 의존하는 카타르 경제를 바꾸기 위해 카타르를 중동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해외의 각종 브랜드에 투자하기 시작함. 가장 유명한 일은 타밈 국왕이 파리생제르망을 인수한 일임.
25. 하지만 타밈 국왕의 정치적으로는 무슬림 근본주의를 키우고 경제적으로는 글로벌화를 노리는 정책은 사우디와 UAE의 반감을 부르게 됨. 사우디에서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 사우디 왕세자 빈살만과 타밈 국왕의 경쟁 의식은 정치 위기로까지 발전하게 됨
26.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재를 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 관계는 좋아지게 됨. 카타르는 다시 친서방 정책으로 돌아가고 무슬림형제단이나 하마스에 하던 지원을 중단하게 됨. 이 결과,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관계도 좋아지게 됨.
27. 현재 바이든 행정부와 사우디의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카타르와 미국의 관계도 미묘하게 되어가고 있음. 현재로서는 카타르가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친서방 노선을 계속 걸을 것으로 보여짐. 다만 카타르는 러시아와는 별다른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카타르의 국가 브랜드 키우기'에만 몰두하고 있음. 오일머니는 있지만 결코 강대국이 아닌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외교라고 할 수 있음.
28. 카타르는 중동에서도 보기 드물게 왕가 내부의 반란이 많은 편이라서 외교적으로 갑자기 큰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임. 이슬람국가로서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도 현재 국왕이 함부로 동성애 인권 같은 문제에 타협하면 왕실 내부의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임.
29. 참고로 2005년 영화 시리아나는 카타르 왕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임. 조지 클루니 영화 치고 존니 잘 만든 영화로 카타르 왕실 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임.
세줄요약
1. 카타르는 오일머니는 있으나 국력으로는 약소국에 해당함. 그래서 주변국가들로부터 독립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으로보다는 외교적으로 대응해왔음.
2. 동시에 카타르를 지배하는 알 타니 왕실은 쿠데타의 위험이 남달리 큰 왕실임
3. 카타르는 현재 경제적인 글로벌화를 통해 왕실을 안정시키려 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나 외교적으로는 큰 변화를 꾀하지 않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