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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최태민은
서울특별시 등
경기도 일대나
대전광역시 등
충청남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15]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다. 그는 이를 '영혼합일법'
[16]이라 칭하며, 영세계
[17]의 교리라고 주장했다.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고 스스로를 '
단군', '
미륵'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어? 누구 닮았는데?? 영세교
[18] 제1대 교주라는
카더라도 있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큰무당
원자경으로
무당들 사이에 유명했었다고 한다.
기사 그 당시 최태민은 1973년 7월에서
대전시 선화 1동 동사무소 앞으로 숙소를 옮기고 ‘영세교 칙사관’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에게 색색의 둥근 원을 벽에 붙여 놓고 "나무자비조화불"이란 주문을 외우며 그 원을 집중적으로 응시하도록 했다. 일종의 최면술에 가까웠다고 한다.
얼핏 보면 대단한
사이비 종교 교주쯤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막상 후세에 그에 대해 조사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1975년 이전까지 큰 사이비 종교 조직이었던 적은 전혀 없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구성원 10명에서 30명 사이로 유지되는 소형 집단이었다고 알려진다.
박근혜를 만나기 몇 개월 전까지도
동대문구 제기동이나
서대문구 북아현동[19] 등 당시 별로 서울 중심지가 아닌 곳을 이리저리 떠돌아 전세를 살며 계속 저런 걸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신자들 뜯어먹고 한탕한 부자 교주이기는커녕 잘 사는 편이 아니었다.
[20] 당시에도 저거보다 훨씬 큰 집단의 사이비 교주들이 꽤 있었고
[21] 현대에는 그것보다 더 큰 집단들이 있을 정도라
[22] 그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 걔네들이 같은 류로도 안 쳐줬을 법 하다.
불교에서의 깨우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둘 다 해줬음 ㄷㄷ
총통각하.. 대구를 구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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