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을 보내어 중국 남경[京師]에 가서 사은(謝恩)하고 말 60필을 바치게 하였다. 그 표문(表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반(趙?)이 남경에서 돌아와 예부(禮部)의 차자(箚子)를 가지고 와서 삼가 황제의 칙지(勅旨)를 받았는데, 고유(誥諭)하심이 간절하고 지극하셨습니다. 신(이성개)은 온 나라 신민과 더불어 감격함을 이길 수 없는 것은 황제의 훈계가 친절하고 황제의 은혜가 넓고 깊으시기 때문입니다. 몸을 어루만지면서 감격함을 느끼고 온 나라가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0월 25일 계유 2번째기사》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천지의 사이에는 본래부터 패망하고 흥하는 이치가 있는데, 소방(오랑캐 땅=고려)은 공민왕(恭愍王)이 후사(後嗣)가 없으면서부터 왕씨가 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고(사실 후사는 이성개새끼 자신이 없애버림=우왕), 백성의 재화(災禍)는 날로 증가해 갔습니다. 우(우왕)가 이미 요동(遼東)을 공격하는 일에 불화(不和)의 씨를 만들었으며, 요(공양왕)도 또한 중국을 침범하는 일에 모의(謀議)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다만 간사한 무리들이 내쫓김을 당한 것(우왕, 최영, 공양왕, 정몽주 등 구세력을 도륙낸 것)은 실로 황제의 덕택이 가해지고, 또한 여러 사람들이 기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때문이오니, 이것이 어찌 신의 힘이 미친 것이겠습니까? 어찌 성감(聖鑑)께서 사정을 환하게 알아서 천한 사신의 말씀을 듣고 즉시 덕음(德音)이 갑자기 이르게 될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마음속에 새겨서 은혜를 잊지 않겠으며, 쇄골분신(碎骨粉身)이 되어도 보답하기가 어렵겠습니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0월 25일 계유 2번째기사》
"이것은 삼가 황제 폐하께서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천하를 다스리고 있으시면서도 만리 밖을 밝게 보시고, 《주역(周易)》의 먼 지방을 포용하는 도리를 본받고, 《예경(禮經)》의 먼 나라 사람을 회유(懷柔)하는 인덕(仁德)을 미루어, 마침내 자질구레한 자질로 하여금 봉강(封疆)을 지키는 데 조심하게 하시니, 신(이성개)은 삼가 시종을 한결같이 하여, 더욱 성상(중국 황제님)을 섬기는 성심을 다하여 억만년(億萬年)이 되어도 항상 조공(朝貢)하고 축복하는 정성을 바치겠습니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0월 25일 계유 2번째기사》
"삼가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소방(오랑캐 땅)은 왕씨(王氏)의 후손인 요(공양왕)가 혼미(昏迷)하여 도리에 어긋나서 스스로 멸망하는 데 이르게 되니, 온 나라의 신민들이 신(이성개)을 추대하여 임시로 국사를 보게 하였으므로(팩트=창칼로 위협하여 나라를 도적질 했으므로) 놀라고 두려워서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요사이 황제께서 신(이성개)에게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허가하시고 이내 국호(나라의 이름)를 묻게 되시니, 신은 나라 사람과 함께 감격하여 기쁨이 더욱 간절합니다. 신(이성개)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나라를 차지하고 국호를 세우는 것은 진실로 소신(小臣)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등의 칭호로써 천총(天聰)에 주달(奏達)하오니, 삼가 황제께서 재가(裁可)해 주심을 바라옵니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29일 병오 1번째기사》
"주문사(奏聞使) 한상질(韓尙質)이 와서 예부(의례를 맡아보던 중국의 관청)의 자문(咨文)을 전하니, 임금이 황제의 궁궐을 향하여 은혜를 사례하는 예(禮)를 행하였다. 그 자문(咨文)은 이러하였다. “본부(本部)의 우시랑(右侍郞) 장지(張智) 등이 홍무(洪武) 25년 윤12월 초9일에 삼가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그 조칙에, ‘동이(동쪽 오랑캐)의 국호에 다만 조선(朝鮮)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이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중국)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 하였소. 삼가 본부(本部)에서 지금 성지(聖旨)의 사의(事意)를 갖추어 앞서 가게 하오."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2월 15일 경인 1번째기사》
"임금(이성개)이 감격해 기뻐하여 한상질에게 전지(田地) 50결(結)을 내려 주고, 경내(境內)에 교지를 내렸다. "왕은 이르노라. 내가 덕이 적은 사람으로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령을 받아 나라를 처음 차지하게 되었다. 지난번에 중추원 사(中樞院使) 조임(趙琳)을 보내어 황제에게 주문(奏聞)하였더니, 회보(回報)하기를, ‘나라는 무슨 칭호로 고쳤는지 빨리 와서 보고하라.’ 하기에, 즉시 첨서중추원사 한상질(韓尙質)로 하여금 국호(國號)를 고칠 것을 청하였다."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2월 15일 경인 1번째기사》
"홍무(洪武) 26년 2월 15일에 한상질이 예부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자문에, ‘본부(本部)의 우시랑(右侍郞) 장지(張智) 등이 홍무(洪武) 25년 윤12월 초9일에 삼가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그 조칙에, 「동이(東夷)의 국호(國號)에 다만 조선(朝鮮)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고 하였소.’ 하였다. 지금 내가 불선(不善)하니 어찌 감히 스스로 경하(慶賀)하겠는가? 실로 이것(중국이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정해준 것)은 종사(宗社)와 백성의 한이 없는 복(福)이다. 진실로 중앙과 지방에 널리 알려서 그들과 함께 혁신(革新)하게 할 것이니, 지금부터는 고려(高麗)란 나라 이름은 없애고 조선(朝鮮)의 국호를 좇아 쓰게 할 것이다."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2월 15일 경인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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