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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본인앞.. | 22/10/04 11:10 | 추천 25

츠키지 수산시장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게이다.(2탄) +30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42699429




https://www.ilbe.com/view/11442631237

처음에 쓴 글이 일베에 가서 많은 게이들이 댓글로 궁금한걸 물어오기도 했고
또 일본 생활에 관심있는 게이들도 있는것 같아서 두번째 글을 작성하게 됐어.

1. 스시집에서 왜 1년이나 있었냐?

일단 성격 자체가 목표의식이 강한편이라 뒤따르는 고통은 미래를 바라보고 인내하는게 난 가능했음
훗날의 내 가게에서 일하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현재를 묵묵히 참고 견디면 반드시 장밋빛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근데 인생 정말 마음먹은대로 흘러가는게 아니듯, 현재는 시장에서 일하고 있음.
그럼에도 난 일본에서 초밥요리 기술을 배우는건 정말 가치있는 투자라고 생각함
스시의 기원인 일본의 긴자에서 자기 이름 내걸고 가게하는 쉐프들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임.
조리기술뿐만 아니라 경영노하우까지 있으니 긴자에서 가게를 유지하는 것이거든.
배운다는건 직접적으로 가르쳐줘서 배우는것도 있지만, 무언의 배움도 정말 무시못해.
오히려 진짜배기 중요한 기술들은 무언의 배움을 통해 스스로 캐치해 흡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음.
묵묵히 보고 듣다보면 나도 느끼지 못하는 새 서서히 몸에 스며들어 체화되기도하고. 또 이런건 말로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있는게 아니거든.
스시 기술이 별거 아니라는 게이들도 있던데, 절대 아니야.
스시는 단순반복하는 작업을 십수년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깨닫게 되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버티지 못했지만, 도전하고 싶은 게이들은 포기하지 마.

2. 수산시장의 생리

일단 굉장히 배타적임. 변화를 싫어하고 옛것을 추구함.
한국의 수산시장은 전자단말기를 사용해서 전자경매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일본은 아직도 손가락을 이용해서 수지경매를 해.
이것만 봐도 얼마나 아날로그를 추구하고 변화를 싫어하는지 알겠지?
시장은 신뢰가 정말 중요한 곳인데,  시장은 사가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가격흥정을 하지 않아.
소매쪽이야 흥정이 이루어지는 모양이지만, 도매시장은 워낙 인맥에 신뢰로 이루어진 관계다보니 사는사람도 파는사람을 믿고 사는거라
'오늘 시세가 비싸서 그런가보다.' 하고 구입해.
상인이 제시한 값을 가지고 비싸네 뭐네 한다는건 굉장히 무례한 손님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도매시장은 상인이 제시한 값이 맘에 안들면 거래를 하지 않을지언정 흥정은 하지않아.
상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하거든.
소매쪽은 모르겠어..ㅎ 아무래도 소매니까 덤도 얹어주고 단골이면 깎아서 팔아주기도 하지않을까? ㅎㅎ

시장에는 좋은물건이 항상 적어. 그래서 자연산 새우같은건 정말 헉소리나게 비싸.
자연산이 더 비싼이유는 양식새우에 비해 천천히 자라기때문에 조직이 치밀하고 살이 단단해서 익혀도 쪼그라들지 않는데다
크기가 큰 자연산은 품위까지 좋다보니 하이엔드 스시야에서는 반드시 찾고 없어서는 안되는 식재료야.

양식새우는 출하시기를 맞춰야하니까 사료를 먹여서 빨리 키우기 때문에 자연산에비해 살이 물렁하고 익히면 쪼그라드는 경우도 있어.
이런건 하이엔드 스시야에서는 쓸 수가 없지. 맛도 중요하지만 품위가 떨어지면 안되거든.
하지만 양식중에서도 잘 기르는 출하자는 분명 있고, 계절에 따라 새우도 맛이 떨어질때가 있는데
그럴때도 맛 좋은 새우를 골라내는게 정말 실력인거지.ㅎㅎ

3. 텃세

수산시장은 나이가 많으신분들이 많아. 아무래도 근로시간이 밤시간인데다가 너무 일이 힘들고, 장화신고 앞치마두르고 장갑끼고....
그렇게 편하고 멋진일은 아니다보니 일을 하러 들어오는 젊은층이 아예없어. 잠깐 어찌들어왔다고 해도 서너달하고 그만둬 버리거나 
말도 없이 어느날 안나오거나 하거든.
그러다보니 대부분 시장사람들 나이가 사십대~오십대야. 내가 처음 시장들어왔을때가 24살이었으니까 정말 눈에 띄지.
시장사람들 입장에선 20대지, 한국인이지, 거기다 허우대는 크지. 내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을거야.
그러다보니 텃세가 정말 심했어. 내가 처음 가게에서 일할때는 처음들어온 놈이라고 핸드카(배달에 사용하는 전동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러다보니 일일히 박스를 등에 메고, 손에 들고 뛰어다니면서 배달을 했어.
그러다가 앞도 안보고 운전하는 핸드카랑 부딫혀서 물건박스 엎어지고 넘어져서 다쳤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한테 화를 내더라.
그래도 거기서 성질 낼수도 없고.. 나는 외국인이고 싸우면 내편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아무말도 못했어.

한국의 속담중,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은 일본에서도 통용되는것 같아.
웃는 얼굴로 밝게 응대하려고 노력했고, 늘 시장에서 밝게 인사했어.
시장분들이 나이 많으신 분들이다 보니까 공손하게 인사하면 싫어하는 분은 없었어.

가게 사람들도 매일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게 불을 밝혀놓고, 가게를 청소하고하니 태도가 조금씩 바뀌더라고.
옛날같으면 분명 뭐라고 할 것같은 상황인데도 타이르기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가게사람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처음에는 인사해도 안 받아주던 가게사람들도 나중에는 내 인사도 받아주고, 실수하면 욕하던 가게사람들이
나한테 차근차근 일을 가르쳐 주더라.
혼자 먹던 밥도 다같이 먹게 되고 그러면서 나도 이곳에 녹아들었지.

시장에 있으면서 느껴본건 외부인이 처음 시장에 왔을때의 텃세는 내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시장생리더라고.
일본인들중에서도 가끔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 텃세를 못 견디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해.

4. 꿈이 뭐냐?

솔직히 나는 스시집에서 못 버티고 나온뒤로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어. 목표가 있었는데 끈기있게 버티지 못했고 중간에
그만두었으니까. 나는 패배자구나. 이제 끝났구나. 싶어서 당장 먹고살려고 시작한게 수산시장에서의 배달일이었어.

먹고살겠다고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일은 힘든데 텃세까지 있다보니 당시엔 어린맘에 집에와서 펑펑 운날도 많았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여기서 이번에도 못 버티고 한국에 돌아간다면 나는 평생 패배자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어.
스시집에서도 못 버텼고, 여기서도 못 버텼는데 한국간다고 버틸까?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버텨서 텃세를 이겨내고 돌아가자고 다짐했어.
그런데 막상 가게사람들이 나한테 덮밥을 사주기도 하고 잘해줄때 되니깐ㅋㅋㅋ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고.

시장에 8년넘게 있으면서 내 가게를 열어야겠다는걸 진지한 목표로 삼은적은 한번도 없어.
개점비용만 최소 2억엔은 있어야 하는데 월급모아서 될리가 없는데다, 가게를 열려면 직접 경매를 해서 물건을 사보는 경험이 필요한데
외국인인 나에게 누가 경매를 맡기겠으며, 경매를 맡긴다고 해도 거래처에게 신용을 얻어야 하는데 보수적인 일본인들의 신용을 얻기는 정말
어렵거든.

결국, 도매상인이 되려면 자본과 경험과 인맥의 3박자가 맞아야하는데 외국인인 내가 달성하기는 정말 어렵지.
그러다보니까 이곳도 자기가게를 여는건 아들이 아니면 어렵다고들 해. 일본인도 아들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게 도매상인인데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 

도매상인으로 창업하려면 시장은 다른사회랑 달라서 자기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곳이라, 성실하고 정직한게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기도 해.
밖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좀 잘나가면 거들먹 거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개소릴 해도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는 모양이지만.
시장은 좀 달라서, 자기 자신이 곧 브랜드가 되는 곳이다보니 장사가 잘되는 큰 가게 사장이라고 해도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는것 같아.

이렇듯, 시장은 밖과 돌아가는 생리가 좀 다른 곳이야.

그런데 뜻하지않게 내 생일날.
사장님이 나에게 경매장을 나가서 물건을 보라고 하시고.
오늘 경매는 경매시작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쭉 보게 하셨어.
나는 사장님 옆을 따라다니며 낙찰된 물건의 가격을 노트에 적었어.
왜 물건의 가격을 굳이 노트에 적으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어.
감정표현이 거의 없고 말수도 적다보니까 속을 알기가 어려운분이야.
가격을 노트에 적는게 무엇을 배우는 건지 아직 감이 안와.
스스로 깨우치라는 뜻이겠지?

차가운 사장님과는 반대로 사모님은 무척 상냥하셔. 혼자서 살고있다고 직접 만드신 반찬들을 챙겨주시곤 하시거든.
내가 채소반찬을 좋아하는걸 아셔서 우엉조림이나 감자샐러드 같은걸 가끔 챙겨서 주시곤 해.


5. 사장 딸이랑 얼른 사귀어라

게이들이 제일많이 댓글로 써준 얘기들인것 같아.
그런데 이성교제가 어느 한쪽의 마음만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매일 얼굴 보는데 인연이면 이루어 지겠는거고 아니면 뭐...
솔직한 말로 처갓집 덕 보고서 날로 먹고싶은 마음은 없어.
시장에서 창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것은 사실이지만, 그조차 내 힘으로 할수 없다면 꾸려간다는것은 더더욱 말이 안되겠지.
그리고 평생의 배우자를 고르는 일인데, 나는 아직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어.
키는 어느 일본인이 그렇듯, 한국인에 비해서는 작다보니 나와는 27cm가 차이나는데 나한텐 그냥 동생같고 소녀같고 그래.

6. 시장생활에서 어려운점

솔직히 아직도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시장에 꽤 있어.
대놓고 그들도 말은 안하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다 느껴지지. 
그리고 아직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선뜻 믿기 어려워 하는 기조도 있고.
밤낮 바뀌어서 일하는건 적응되어서 괜찮아 ㅎㅎ

7. 츠키지 수산시장 없어진지가 언젠데 ?

그래 맞아. 토요스로 이전한지 몇년됐는데 일베는 한국인들이 있다보니까 츠키지 수산시장이라고 쓴게 오해를 받은것 같아 ㅎㅎ
아무래도 츠키지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이 워낙 커서 한국인들도 잘 아니까 제목에 츠키지 수산시장이라고 쓴거야.
제목에 "토요스 수산시장에서 8년간 일했다" 하고 적는것 보다는 "츠키지 수산시장에서 8년간 일했다" 하고 적는게 
읽는사람 입장에서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야.

시장이 이전한 이유에 대해서는 오래되고 낙후된 시설을 부수고 새로운 시설로 현대화 하자는 취지에서야.
츠키지 수산시장은 처음 지어질때 당초 계획보다 점포수가 더 늘어났거든.
그러다보니 가게는 좁아지고 경매로 들어오는 물건들도 사서 보관하고 진열해서 적재해둘 공간이 부족해졌어.
경제는 발전하니까 해산물 소비는 늘어나고 그에따라 점점 반입물량도 늘어나는데 적재공간이 부족하니까
어민들이 물건을 출하해도 상인들이 입찰에 소극적이게 되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어민들이 츠키지로 출하하지 않게 되는 현상까지 생겼어.
적재공간이 부족하다보니 최상급이 아니면 츠키지에서는 제값을 받기가 어려워 지게 되었지.
그러다 보니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부지를 사서 (!) 넓힌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무산되고
결국 시장을 이전하겠다고 했지.
그런데 상인들이 반발했어. 몫이 좋은가게는 권리금도 비쌌는데 이전하게 되면 점포위치도 다시 랜덤하게 추첨한다고 하니까.
상인들마다 시장이 이전하게 되면 서로 몫좋은 위치를 받아내려고 해서 굉장히 반발도 심했고 의견도 제각각이라 시행되기까지 오래걸렸어.
내가 처음 시장에 온 2013년에도 시장 옮기네 마네 했었으니까 ㅋㅋ

 
여튼 일게이들이 내 일본 생활에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줘서 고마워.
다들 건강하고 각자의 목표 꼭 이루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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