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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구를 양분하던 제국 로마와 한나라
서양의 패권국가와 동양의 패권국이었던지라 많은 사이트에서 둘의 전성기 시절을 비교하는데
이 글에서 둘을 직접 들여다보도록 하자
인구.언제나 그랬듯, 인구는 국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나라의 전성기 시절 인구는 6000만에 근접했던걸로 알려져있다.
저 시대엔 6000만도 엄청난 수치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의 인구는 어떨까?
로마의 인구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있다. 에드워드 기번은 1억이 넘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좀 구라같지 않은가?
구글에서 로마 제국 인구라 검색하면 기원전 25년 기준으로 5680만이라 나오는데
논문과 위키백과 문서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오늘날 면적으로 환산하면 현재 미국 면적의 2/3에 달하고 인구도 현 미국의 절반에 약간 안되는 정도로 추산된다."
오늘날 미국의 인구가 3억인걸 생각하면 그래도 로마의 인구는 1억이 넘었다는 말이 된다. 솔직히 1억은 좀 무리 아닐까?
논문 자료에서는 117년 트라야누스 황제시절
117년 어림 88,000,000명
8800만명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워낙 수치가 다양하니
대강 한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경제력제정 로마 vs 한의 철, 구리, 납, 은, 금의 생산량이다.
로마는 금 칸이 비어져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숫자는 9다.
한나라는 그 밑에 로마의 가장 부유했던 행정구역 보다도 생산량이 적었다고 적혀져 있다.
신이 한나라는 기독교 안 믿어서 자원을 서양에 몰빵해줬나보다.
금속 자원 생산량에서 한나라가 처발리고 있다. 특히 매우 중요한 자원인 철과 은의 생산량의 차이가 눈에 띈다.
중국은 송나라 때가 되어서야 로마의 철 생산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특히 은과 철은 경제와 군사면에서 중요한데, 은은 화폐생산량을 의미하고 철은 무기생산량을 의미하기 때문.
한 예로 로마의 전성기때 로마가 보유한 은 총량은 무려 1만톤. 이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 왕조가 보유했던 전체 은 총량보다 5~10배 많은 수치.
사실 로마와 한나라는 주력 생산 품목이 달랐으니 이런 비교는 좀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 도로로마는 포장도로를 국토 전역에 깔아서 병력과 유통물자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는데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로마는 도로길이가 40만km, 포장도로 길이는 8만 500km 달했고
한나라는 도로길이 3만5천km이었다.
건축한 다리 수도 로마 931개, 한나라 2개
그외 gdp 비교에서도 로마가 한나라의 수치를 1.5~2배 가량 앞서는데, 이 자료는 논란이 꽤 있어보여 스킵하도록 하겠다.
군사력한나라에서 우세를 내세우는 것은 등자를 쓴 기병 전력과 노병을 앞세운 궁병 전력이다.
거기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한 전술까지.
로마군은 투창에 의존했고, 기병은 빈약했기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는게 한나라 지지파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로마파의 반박은 어떨까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등자는 322년의 것이다. 어? 그런데 한나라는 220년에 망했다.
한나라도 등자는 없었다. 중국에서 등자를 널리 쓰기 시적한건
유목민족이 4세기경 등자를 개발하고나서 시간이 흐른 400년대 부터다.
궁병이 빈약했다? 활은 인류 공통의 무기다. 로마군은 포이데라티(보조병)으로써 궁병을 동원했다.
투창은 군단병들이 돌격하면서 던질때 사용했다.
한나라의 노병이 유명하다 해도, 한의 궁병 전력 대다수는 노병이 아니었다.
로마군이 기병에 약하다?
당장 로마가 어떤 나라랑 싸웠는지 생각해보자.
(파르티아의 카타프락토이를 묘사한 그림)
그렇다 바로 막강한 기병을 보유한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다
파르티아는 카르헤 전투에서 보병 대신 궁기병과 카타프락토 2만을 동원했고, 사산조 페르시아도 기병이 강점인 나라였다.
로마는 카르헤 전투에서 크라수스의 삽질로 인해 대패하지만, 이후 파르티아를 계속 밀어붙여 수도인 크테시폰을 여러번 약탈하기도 했고,
결국 파르티아는 힘이 떨어져 사산가문의 이란이 발흥하자 이란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파르티아를 밀어내고 등장한 페르시아 이란도 양면전선에 시달린 로마와 호각으로 싸운 수준이었지, 로마의 국력을 뛰어넘은 적은 없었다.
결국 헤라클리오스 황제때 로마를 밀어붙이지만, 역관광 당하면서 이슬람에게 나라를 내주게 된다.
보다시피 로마는 기병상대로도 잘 싸웠다
그래도 로마 기병들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서 로마는 기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싸웠다.
하지만 로마는 훈족에게 털렸는걸?
무슨 소리 훈족은 로마와 절대로 전면전에서 이길 수 없다.
쇠락해가는 서로마와의 카탈라우눔 전투에 대패해 아틸라 본인의 모가지가 날라갈 뻔 했다.
동로마는 훈족에게 꾸준히 공물을 바쳤는데, 왜냐하면 이게 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왜 군대를 동원해 아틸라를 조지지 못했나? 바로 페르시아 때문에 군대의 주력의 절반이 동방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튼튼한 동로마를 공격하기 보다는 이미 반병신에 죽어가고 있는 서로마를 두들겨 팼다.
한나라도 백등산 전투를 비롯해, 진나라(서진)시대 영가의 난에서 흉노에게 신나게 털려 멸망하지 않았는가?
훈족은 아틸라라는 유능한 지도자가 방비가 부족한곳을 골라 공격하면서 전과를 잘 뽑은 것이지, 전면전은 절대 무리다.
실제로 훈족은 아틸라가 세상을 떠나자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궁병 전력?
로마는 다양한 원거리 공성무기를 사용했다.
연발 발리스타인 폴리보로스다. 뒤에 녹로를 돌리기만 하면 장전과 발사를 스스로 한다.
그리고 이건 조그만 발리스타인 스콜피온
거기다 활의 살상력은 과대평가 되어있다.
활은 쇠뇌에 비해 관통력이 많이 떨어진다. 갑옷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보여주는 화살이 갑옷을 관통하는 모습을 보여줄때, 활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사됨을 알 수 있다.
그정도 거리면 보병이 몇초 내로 접근해올수 있는 거리다. 이때 궁병이 해야 할 일은 쏘는게 아니라 아군 보병 뒤로 도망치는 거다.
그러니 사실상 저정도로 가까운 거리 내에선 쏠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명궁수였던 태조 이성계도
"...아기발도는 갑옷과 투구를 목과 얼굴을 감싼 것을 입었으므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기록에서 보듯 활로 갑옷을 관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기병과 비교해서 잉여롭다는게 들통난 이후 사장된 전차는 언급도 하지 말도록 하자.
이번엔 군대 규모를 보자.
한나라는 거의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굴릴수 있었지만, 후한시기에는 규모를 줄이고 직업군인제를 채택하여 30만명 정도로 줄인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 말기에 이미 23개 군단 12개군에 달하는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30만명에 이르렀고,
해마다 10만명의 병력을 편성해냈다. 괜히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시절에는 60개 군단 50만명의 대군을 보유하였으나, 역시 규모를 30만명으로 줄인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1892692유명한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시절 상비군이 300만명이었다고 했는데, 수치가 수치인 만큼 솔직히 받아들이기는 좀 힘들다.
거기다 안토니오 산투수오소는 제정 말기 시절 로마는 포에데라티를 동원할시 병력 규모가 70만명에 가깝다고 계산했었다.
(교수 본인은 이조차도 상비군 총 병력 규모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돈 타먹으려고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군대 때문에 꽤나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고는 한다.)
보다시피 동원력에서 로마는 밀리지 않는다.
전술 비교는 너무 애매한 것 같아서 패스.
춘추전국시대 삼국지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디아도코이 전쟁, 펠레폰네소스 전쟁시기나 전술이 발달한건 동일
가끔 손자병법 들고와서 이걸로 동양의 전술이 서양에 비해 우수하다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술이 중요한게 아니라 전술을 쓰는 장군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 제철기술유럽의 제철기술은 현재의 터키지방(아나톨리아) 히타이트 제국에서 세계 최초로 유래되었다.
유럽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때부터 강철을 만들고 생산량이나 제련술에서 한나라를 압도했다
유럽의 강철제련 기술은 고대 그리스 시절로 까지 거슬러 이미 BC 650년경 스파르타인들이 강철을 대량생산하여 무기제조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국시대(BC 403년~BC 221년)에 들어서야 초기 형태의 강철을 생산하기 시작한 중국보다 약 2~300년 빠른 것
그에 따라 로마제국의 노릭 강철은 로마의 속주였던 현대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를 아울르는 노리쿰 지역에서 생산된 강철로 뛰어난 품질과 강도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검과 방패, 갑옷과 같은 군사무기 등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로마 보병들의 주 무기였던 글라디우스가 이 강철을 사용해서 만든 검이다. 이전까지는 그저 철을 두들기고 갈아 날카로운 형태로 만드는데 그쳤지만, 글라디우스에는 넓게 펴낸 철을 여러번 접어 ‘접쇠 공정’을 통해 강도를 높이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이른바 ‘접쇠 공정’이 일본도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
이 제강기법은 나중에 북쪽으로 퍼져 나가 여러 변형이 이루어졌고
로마군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검들의 철 성분. 고탄소에서 저탄소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다 ‘강철’ 로 불러도 아무 손색이 없을 정도의 탄소함량이 존재했다.
그외.사실 더 비교할게 있나 싶다.
로마는 2000년을 갔지만, 한나라는 400년을 갔다.
한나라는 중국의 기초가 되었지만, 로마는 현대 세계의 기초가 되었다.
정리연구자료에 의하면
금, 은, 철 생산량 등 모두 로마가 압도.
중국 쪽은 송나라대 와서야 겨우 천년전 로마시대 생산량과 비등해짐.
금,은 생산량은 명나라 때까지도 따라잡지 못함.
자료에선 지디피도 로마가 한나라의 2배에 가까움.
관료체계도 로마가 중국의 10분의 1 일정도로 효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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