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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위서만은 아니라는 30가지 증거들
* 환단고기는 몇 남지않은 우리의 상고사 기록이기에 우리에게 매무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정책 조선편수회의 하수인이었던 이병도 박사에 의해 우리 역사는 일본 역사보다 짧아젔고 그 이상의 역사는 신화로 둔갑하게 되었다.
이병도 박사에게 그 학문을 그대로 전수받은 강단사학에서는 그간 자신의 저서나 학생득에게 가리켰던 것이 있으므로 환단고기의 시대사항의 사건이나 용어등을 들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서로 몰고 있었다.
그러나 이병도 박사도 말년에는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내용의 글을 조선일보 일면에 투고한 일이 있으며 그 제자중 가장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던 ㄱ 대의 ㅈ 교수도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서 " 환단고기는 의심스러은 부분이 있다" 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를 읽어 보지도 안은 일부 독자들은 아직도 그 식민 사학자들의 말만 신봉하여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떠드는 사람이 많으므로 여기에 환단고기가 좀 가필된 흔적은 있지만 위서만은 아니라는 증거 30가지를 밝힌다. 이는 아직까지 필자가 아는 숫자이며 더 연구하면 더 많아질것이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는 과연 어떤 책인가?
여기서 환단고기의 三聖紀全 上은 신라의 승녀인 安含老가 撰 했고 三聖紀全 下는 시대와 행적이 불분명한 元董仲이 지었으며 檀君世紀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이 지었고 北夫餘紀는 고려말 학자 범장이 전했으며 태백일사는 이조 연산군과 중종때 학자 이맥이 전한책을 이조말 일제 점령기에 계연수가 한데묶어 만든 책인데 당시 인쇄나 영인술이 없어 모두 필사본 들 이다.
필사본이란 먼저번책을 베껴쓰는 것인데 여러사람의 손을 걸치면서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 본래의 뜻이 왜곡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책을 읽어보면 진실된 귀중한 자료도 많지만 자기 의견으로 가필된 흔적이 너무많아 진본까지도 도매금으로 훼손 시키는 僞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맥의 태빅일사등)
그러므로 이책은 진본과 가필된 부분을 분리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먼저 가필됬다는 대표적인것 한두가지 예를 든다.
* 三神五帝本紀 - 王儉氏承徑一周三徑一(두르잡)四之機
(삼신오제본기 - 왕검씨는 지름에 3.14를 곱하여 둘레를 만드는 기계로...)
단군왕검때 그런 수학 공식이 있었다? 이는 이조중기 연순군때 태백일사를 쓴 이맥도 몰랐던 수학공식 이라고 생각되므로 일제초 계연수 나 이유립 선생의 가필로 추정된다.
* 三韓管境本記(馬韓世家上) - 昔者桓雄....曆以三百六十五日五時四十八分四十六秒爲一年也
(삼한관경본기(마한세가상) - 예날에 환웅께서는...달력을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 일년을 만드시고....)
이역시 이조중기 이맥의 가필이 아니라 계연수나 이유립의 가필로 보인다. 아니 환웅시대 그러니까 5-6천년전에 일년이 365일 5시간 48분 46초 라니....초등학생도 믿지않을 소리로 본다. 이역시 계연수나 이유립 선생의 가필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 역사에서 귀중한것은 이 책속에는 너무나 귀중한 우리의 상고사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환단고기가 더러 가필된 부분은 있을망정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를 댄다.
이 증거들은 환단고기 외에에는 어디에도 없는 기록이기 때문에 환단고기 위서가가 다른책을 베껴 썻을 수는 없다는 내용들이다.
이 증거들은 '하나 되는 한국사' 등 많은 책을 저술하신 고준환 박사와 서울대 천문학 박참범 교수, 그리고 KBS 역사 스페셜 내용과 필자가 찾아낸 증거들이다.
1.환단고기에 단군조선 13세 흘달간군 50년 (서기 1733) 다섯개의 별이 일렬로 서는 五星聚婁현상이 써 있는데 이것을 천문학자인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사실임을 입증 하였다.
이 사실은 너무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상술하지 않고 다음 동영상을 올린다
한단고기 동영상 역사스페셜 일부...
위 내용중 '오성취루'현상에 1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3천년전인 그때와 지금의 시간 계산법의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할 수 있는 차이라 합니다. 조작 확률 = 0.007
2. 환단고기 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왕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 에서는 大興이라고 기록 되어 있는바 이는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이라 한것을 보면 환단고기의 실증적 가치를 알수 있다.
3. 고구려 유장 이정기가 중국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 (大齊, 평로치청) 라는 큰 나라를 세운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고구려를 위하여' 라는 책에 (김병호저) 처음 역사적으로 증명 되었다.
4. 강화도 제천단에 참성단이 있어 지금도 매해 천제를 지내는데 그 기록이 환단고기중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51년에 싸았다는 기록이 있다.
5. 환단고기의 단군조선 실재를 보여주는 평앙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능릉이 1993년 북한 당국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까지 발견 되었고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모금 운동까지 하여 북한 당국자와 함께 성역화 하였다.
6.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장수왕이 즉위하자 建興이라는 년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이 년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光背銘 에 建興五年歲在丙辰으로 나타난다.
광대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대왕은 壬子년인 412년에 붕어 하는데 卽位年 稱元法에 따라 이 해를 장수왕 즉위 원년으로 보면 장수왕 즉위 5년은 바로 병진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병진년 불상광배명과 태백일사를 통해 建興이 장수대왕의 년호라는 것까지 알수 있다.
7. 환단고기에는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太祚이고 조부는 子遊이며 증조부는 廣 이라 서술했다.
이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은 환단고기 기록 이외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이 子遊로 나타나고 있다.
8.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 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가 현재 캄보디아인 扶南國과 교역 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까지 뒷바침 해 준다.
9. 사대 식민사학 의 거두 이병도 조차도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환단고기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조선일보 일면등에 투고한 사실이 있다.
10.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위서라는 사실을 육하원칙에 의하여 밝혀야 하는 데 아직까지는 이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학자가 없다.
11. 갑골문의 귀방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이 입증되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즉 환단고기에는 BC1291 년 단군조선 21대 소태단군이 은나라 왕무정이 귀방을 첫다는 기록이 있는데 얼마전 출토된 유물 갑골문의 기록에 은나라 귀방정복 사실이 그대로 밝혀저 세상을 놀라게 한 사실이 있다.
12. 비파형 동검
환단고기에 고조선의 영토는 지금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는 드넓은 중국 대륙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 사실상 고조선만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은 환단고기의 기록과 그대로 일치 한다.
13. 고인돌
환단고기에 장묘문화에 자세히 써 있는데 그 모양과 지역이 그대로 일치 한다.
14 청동기 도끼
중국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 세기 경으로 보이는 청동도끼가 발견 되었는데 거기에는 "천자 건방중산후" 라는 명문이 새겨저 있다. 이는 BC 22 세기부터 10세기 까지 북경과 하북성 일대를 단군이 다스렸다는 환단고기 내용과 그대로 일치 한다.
15 은 도장
중국 요녕성 대집둔 지역에서 은 도장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단군 조선때 삼한중 하나인 번한(番汗)이라는 글자가 새겨저 있다.
즉 환단고기에는 단군조선때 번한( 황하/ 하북성)과 마한 (만주/ 한반도)등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유물이 나온것이다.
6 사내와 곰 석상
서 요하지역의 적봉시 나사대 지역에서는 환웅과 웅녀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사내와 곰의 조각상이 발견 되었다.
즉 이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홍산유적지에서 갑골문의 초기 형태가 발견되어 은나라의 갑골문이 홍산문화 담당자들에 의해 전해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이것은 대체적으로 환단고기 황웅시대 와 일치하고 있다.
17. 요하는 앞록 난하는 요하
환다고기 태백일사에는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며 지금의 난하가 요수 (요하)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임은 얼마전 발견된 서토의 고지도 지리도, 연산도이고 그래서 중국삼대 간룡총람 지도에 올려진 내용으로 볼때 환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 역사서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18. 낙랑군과 낙랑국
낙랑이란 지명이 처음 나타난것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에 BC 1767년 13세 흘달단군, BC 1237 년 23세 아흘단군 이고 특히 BC 195년 낙락왕 최승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다. 이로부터 하북성의 날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이 구분되게 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환단고기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기록이고 고대사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안을수 없다.
19. 조선왕조의 수서령
조선 왕조실록에 조카 단종으로 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중국으로 부터 왕위를 인정 받아야 하는 세조로부터 그 뒤 대비들이 치마폭에 싸였던 허수아비 왕 예종때 중국의 비위를 마추기 위하여 우리의 중국보다 우월한 역사를 말살하는 수서령이 내려졌다.
즉 전국에 퍼져있는 우리 상고사를 가진자가 있다면 이는 국법으로 처리한다 하였으므로 수십만권의 우리 역사 서적이 거둬져 소각 되는데 그 소각된 목록중에는 삼성기 조대기등 환단고기가 인용한 책들이 대부분 이다.
*** 다음은 필자의 전공이 우리 ㄱ ㄴ ㄷ ...ㅎ 들이 가지고 있는 뜻을 찾아 우리 뿌리말과 상고사를 밝히는 일이므로 필자가 그간 찾아낸 근거들인데 이는 사실 가림토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 이므로 이는 역시 환단고기에만 써 있기 때문에 환단고기도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홈피 http://cafe.daum.net/chunbuinnet )
20. 신지녹도문과 창성 조적서 비
환단고기에는 BC 3898년 초 환웅께서는 신지에게 글자 만들것을 명하고 신지는 이에 신지녹도문을 만든다.
그런데 그 녹도문은 태백산(백두산 ? 완달산? ) 에 있다는 신지녹도 천부경 으로도 나타나지만 평양 법수교 아래 고천문( 필자해독, 이는 천부경이 아님)으로도 나타나지만 중국 산동성의 창성 조석서 비 (창힐은 환웅이 개국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견문록)에도 나타난다.
21. 가림토와 신대문자
환단고기에는 삼세 가륵 아한께서 삼시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전에 내려오던 유치한 원시한글을 수정하여 가림토를 만들게 하는데 이 가림토는 한자에 눌리어 잡초처럼 버려젔던것을 세종께서 지금의 한글로 재 창제 하셨는가 하면 일본에도 전해저 훈민정음보가 700 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가림토가 구주 신사등에 나나난다.
즉 신대문자(神代文字)란 신들이 쓰시던 문자라는 말로 우리 조상들을 신으로 보았고 그래서 그들이 쓰던 문자를 신대문자라 한다.
22. 청동거울
사실상 우리 조상을 신으로 바뜰고 제사 지내던 이세 신궁에 소장되 있는 청동거울 둘레에 이 가림토 38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 추후 제공)
23. 히코산의 환웅개산기록
환단고기에 - 진(秦)때 한민족인 서불(徐?)은 동야현의 해상으로부터 곧바로 나패에 이르러 다네시마(種島)를 거쳐 세도나이까이를 따라 처음으로 기이(紀伊)에 이르렀다. 는 말이있는에 지금 일본 신사에는 우리말로 태백산과 같이 히고 크다는 히코산(英彦山)의 환웅 개산기록이 있다.
24. 구자라트 문자
환단고기에 우리 문화를 수메르 등 중동에 전해주었다고 한는데 구자라트 문자는 우리 한글과 거의 비슷하다.
25. 스메르 의 말 과 우리말의 유사성
환단고기에 12 환국의 하나인 수메르의 말은 우리말과 비슷한것이 많다.
수메르어와 한국어 비교.
슈메르어(발음)[ 뜻]
한국어 발음[단어 뜻]
슈메르발음[단어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아누(Annu)[최고 신]
하느님 [하느님,上帝]
Bad 바드 [ 밭 ]
밭 (Bat) [밭, 田 ]
안 (An) [天]
하늘 (ha)?[ 하늘, 天 ]
Na 나 [나 1인칭]
나 Na [ 나,我 ]
기르(Gir)
길 (Gil) [路]
Ge 그[3인칭 ]
그 Ge [ 3인칭 ]
라 (Ra) [~ 에서 ]
로 (Ro) [ 조사 ]
이 [1 인칭 ]
이 [지시대명사]
아비 Abi [ 아버지 ]
아비 (Bo) [ 夫 ]
Uhma 움마[엄마母]
엄마 Uhma [엄마 母]
니므 Nim [ 님 任 ]
님 (Nim) [ 사람 任]
26. 스리랑카의 패엽경사
스리랑카의 패엽경사에 새겨저 있는 글자는 신대문자 구자라트 문자등 가람토와 아주 흡사하다.
27.단기고사와 단군세기 기록으로본 증거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12세 단군 아한때 가림토로 추정되는 우리 원시 한글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겼다는 내용과 단기고사에 역시 이같은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만약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단기고사 역시 환단고기를 위작한 사람이 역시 위작한 위서라도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위작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시차를 오가며 무슨 이유로 위서를 썻겠는가?
28. 림토와 가림다로본 증거
환단고기가 나온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읽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 한글이라는 가림토(加臨土)가 왜 가림다(加臨多)라는 다른 표현도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세종이전 원시한글 존재 유무와 환단고기 진위문제... 더 나가서 일본 신사에 있는 신대문자(神代文字)가 원시한글인 가림토 라는 증거까지 나오고 따라서 일본 신사는 우리 조상을 제사지내기위한 사당이라는 근거까지 나온다.
환단고기에서 가림토가 있었다고 말한사람은 고려 말엽 충정왕때 사람이고 가림다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연산군 때 사람이다.그들은 각자 전해오는 옛 서적을 보고 적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다른것이나 그 것을 순 우리말로 풀어보면 가림은 어린 아이가 낮가림을 한다는 분별 한다는 뜻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의 말을 적어 분별 한다는 뜻과 같은 말이며 또 원시 한글에서는 검둥이 감둥이 같이 모음이 혼동되거나 말은 세월이 변하면 조금씩 달라 지니 가림이 '가름' 이 되어 " 이것으로 인사말을 '가름' 하겠습니다" 와 같이 대신 한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말을 글자로 대신 한다는 말이 된다.
土는 땅이며 '다'도 땅이다(다地- 훈몽자회) 즉 가림토, 가림다는 文字, 글字라는 한자가 들어오기전 순순한 우리 말이다.
또 이 가림토가 써 있는 기록은 환단고가 뿐인데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위서가들은 가림토건 가림다건 한 목소리를 냈을것인데 위서가 들도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소리를 다르게 썼겠는가?
29. 蘇塗와 山像雄常 으로 본 증거
대저 위서가들이 어떤 목적으로 위서를 쓰려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알수있게 글을 쓸 것이다. 만약 어떤 독자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을 쓴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만두고 글 쓴 사람도 무슨 소린지 모르고 글을 썻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蘇塗와 山像雄常의 정체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환단고기를 필사한 사람들이 전해지는 말이나 책의 내용을 자신도 이해할수 없어 자신이 번역이나 해설해서 쓸수가 없으니까 그저 원전 그대로 썻다는 증거이다.
환(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박사는 물론 안호상 박사까지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우선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님의 말을 들어보자 (한단고기 201쪽 참조)
....전략 "안호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산해경의 기록을 잘라 말하였으니 참고할만 하다. 즉 '北有樹 名曰雄 常先八代帝 於此取之' 라고 雄과 常을 갈라놓고 '북에 나무가 있는데 이를 雄 이라 한다. 늘 앞서는 8대의 임금들이 여기서 이를 취해갔다'로 한 것이다... 중략 .... '산 형상의 웅상을 보게 되었다'(可見山像雄常)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언젠가는 雄常의 참뜻이 한국학에서 밝혀질 날이 있을것으로 기대 한다" 라고 했다.
임승국님의 참으로 솔직한 표현에 존경이 간다.
이 蘇塗와 山像雄常의 비밀은 우리 뿌리말로 풀어보면 쉽게 풀린다. 이 山像雄常의 정체에 대하여 자세한 말을 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고조선 유적지에서 나온 청동기 유물 금문 내용 하나만 제시하고 생략한다 (이것도 자세히 알려면 필자 홈피에..)
청동기 유물 을미고(乙未?) 에 새겨진 명문
30. 신라 벼슬 각간(角干)의 뜻
환단고기에 가림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을 근거로 우리 한글자음 ㄱ ㄴ ㄷ ...ㅎ 속에 뜻이 있다는 것을 찾아 밝혀 필자는 절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을 썼다.
이는 우리 뿌리말 뿐 아니라 극히 부족한 우리 우리의 상고사도 어느 유물보다 더 확연히 밝혀지고 잘못 변질되고 있는 우리말이나 잘못된 맞춤법등도 바로 잡을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신라 벼슬인 각간의 뜻 하나만을 예로 쓴다.
角은 뿔이고 干 은 큰 , 칸 이다. (징기스칸)
신라때 각간이란 벼슬은 이조때 영의정 처럼 임금 다음으로 높은 벼슬이다.
그러다면 왜 각간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각간은 우리말로 " 뿔큰" 이 된다.
즉 임금은 뿔이 여러개인 出 자 모양의 왕관을 썼으나 각간을 큰 뿔 하나짜리 관모를 썼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말에 " 뿔큰 " 이라는 말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가?
" 주먹을 뿔큰 쥔다" , " 화를 벌컥 낸다" 의 뿔큰과 벌컥의 뿌리말이 바로 뿔큰이다.
*** 이상은 그간 정리된 환단고기가 위서만은 아니라는 증거들인데 필자도 시간만 있으면 더이상의 증거도 얼마던지 찾아 낼수 있으므로 얼마 있지 않으면 아마 100 개의 증거도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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