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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불명예 기록이 있죠?
네, 바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입니다.
이런 높은 자살률로 더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리투아니아입니다.
인구 320만 정도, 경상남도 보다 적은데 한 달 평균 90명 넘게 자살해 세계 1위의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절망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말까지 나오는 리투아니아가 자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도영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깊은 밤, 경찰차가 급히 어딘가로 향합니다.
<녹취> 경찰 : "남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합니다."
다리 위 난간에 선 남성이 손을 놓는 순간, 경찰이 달려들어 남자를 가까스로 잡아챕니다.
이런 아슬아슬한 장면이 밤마다 펼쳐지는 곳, 자살률 세계 1위의 리투아니아입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옛 소련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 봉쇄를 이겨내고 독립을 쟁취한 강인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독립한 뒤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가 가라앉고 세대 갈등과 함께 가치관의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경제가 발전한 만큼 빈부 격차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비운에 처했습니다.
수도 빌뉴스에서는 이런 광고가 쉽게 눈에 띕니다.
고귀한 생명인 만큼 한 번만 더 전화해 달라는 자살 방지 캠페인입니다.
올해 55살인 알렉세예프씨는 수십 차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20살 때 아버지가 형을 총으로 쏘고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35년 동안 자살 충동에 시달려왔습니다.
<인터뷰> 알렉세예프(자살 중독 환자) : "집에 있으면 나가기 무서워요.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도 두려워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자살 충동은 더 심각합니다.
자살 시도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은 10대이고 30살 이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입니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400년 역사의 빌뉴스 대학굡니다.
수백 명의 학생이 묵는 이곳 기숙사에는 자살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인터뷰> 빌뉴스(대학교 학생) : "올 봄에도 20살 남학생이 이유를 말하거나 유서도 남기지 않고 저기 6층에서 몸을 던졌어요"
인구 십만 명당 자살률은 평균 34.1명, 한 달 평균 90.9명, 한해 109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유명인 이나 가족의 죽음은 또 다른 자살 충동을 낳습니다.
지난 4월 한 유명 배우가 '삶이 절망스럽다'며 자살했습니다.
이 절망 바이러스는 리투아니아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배우의 무덤에는 아직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한 달 정도 되는 추모 기간 동안 모방 자살이 급증했습니다.
정부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살을 미화하지 못하도록 규제했을 정도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본인의 삶까지 포기하는 '자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 시민사회가 먼저 나섰습니다.
우선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상담 센터들을 설립했습니다.
요비타씨는 자살로 4년 전 오빠와 아버지를 모두 잃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본인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인터뷰> 요비타(자살 유가족) : "그냥 제 자신이 의미 없이 숨만 쉬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행히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요비타 : "아버지 자살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했었어요.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상담 전화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22년째 활동 중인 한 시민단체를 찾아갔습니다.
역할극을 통해 자살 징조를 미리 알아보는 훈련이 한창입니다.
<녹취> 자살 상담자 상황극 여성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든지 말해보세요) 모든 게 다 엉망이에요 엉망!"
6개월 동안 이 같은 훈련을 받은 뒤 상담 전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달 평균 15,000통의 전화가 오고 수많은 이메일 상담이 이뤄집니다.
<인터뷰> 유라테(상담 자원봉사자) :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해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해를 한 경우 의사에게 가도록 재빨리 유도 합니다"
150명 넘는 자원봉사자가 전국 10개 상담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지만 수많은 자살 시도자들을 보듬기엔 너무나 부족한 상황입니다.
<인터뷰> 파울류스 스크루이비스('젊은이의 전화' 대표) :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자살 위험 증상이 있거나 자살하려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할 지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빌뉴스를 따라 흐르는 강 주변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510km 길이의 이 아름다운 강은 그러나 주요 자살 장소입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네리스 강에는 한해 수십 명이 뛰어들어 목숨을 잃습니다.
다리 곳곳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10월 중순부터 긴 겨울이 오면 오후 4시부터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가로등이 늘어났고 더 환해졌습니다.
단지 도로를 밝히기 위한 목적만이 아닙니다.
EU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빌뉴스 시민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정부는 역시 의료 기관과 함께 자살 방지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리투아니아 최대 규모의 정신병원을 찾았습니다.
놀랍게도 '정신 응급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 등 극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 당장 자살을 시도할 사람 등이 열흘 동안 집중 치료 받는 곳입니다.
응급 치료가 끝나면 정신보건센터로 환자의 자료가 보내져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집니다.
<인터뷰> 알비다스 나바츠카스(정신병원장) : "우리는 상담 전화를 늘리고 병원마다 자살 방지 센터를 설립하고 의사와 환자들에게 자살 방지 교육을 합니다."
또 자살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을 설득하고 가르쳐 '스스로 돕기' 프로그램에 참여시킵니다.
<인터뷰> 루타 바르카스카이테(상담센터 직원) : "상황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자살 방지를 위한 심리적 조언이 중점적이고 유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살 방지 메시지를 전합니다.
리투아니아 최고 인기 가수인 안드류스 씨는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세요' 라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살률이 높은 지역을 돌며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들려줍니다.
<인터뷰> 안드류스 마몬토바스(가수) : "(단체 상담 중) 한 시골 학교 학생이 '손목을 그었어요 어떻게 하죠' 라는 쪽지를 써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학생이 맞냐며 겉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놀라워했죠"
살기 좋은 나라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자살 공화국'으로만 알려진 리투아니아의 불명예.
불빛을 밝히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살을 막기 위한 응급실 운영까지, 정부와 시민단체, 의료계와 문화계 등 각 분야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나섰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목숨을 지켜가는 것은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너무나 소중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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