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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차별이면 여남은 평등인가?
여성억압과 차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유럽과 기타 문화권 국가들에 해당하는 사례들은 한국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한국 역사는 여성 우월적인 경향이 다분했다.‘고려高麗’의 역사를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보편적으로 여성의 성적 자유가 보장되고 여성성에 대한 금기가 허술한 시대일수록 공적영역, 사적영역 양쪽 다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고려가 그랬다. 고려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관념자체가 허술했다. 따라서 여성의 순결이나 정조를 강요하는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렇다고 해도 왕들은 순결한 처녀에 의한 정통성을 고수할 만도 한데 왕들부터 과부, 이혼녀등과 결혼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 의 세 번째 왕비 ‘숙창원비淑昌院妃’는 과부로 재혼한다. 3남4녀를 낳고 과부가 된 ‘순비허씨順妃許氏’는 26대 ‘충선왕忠宣王’과 재혼한다. ‘수비권씨壽妃權氏’는 이혼후 27대 ‘충숙왕忠肅王’과 재혼한다.
정통성을 고수하며 여성 순결에 대한 집착을 했을 법도 한 왕들이 이랬으니 일반 백성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에는 보통 시집에서 살지 않고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식을 처갓집에서 낳는 것이 보통이었고 손자를 볼 때 까지 처갓집에서 지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다.그 정도가 어느 만큼 심했던지 중국인들이 비웃을 정도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고려 견문기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하니 가소로울 뿐이다.”(이윤섭) 처가살이를 한다는 것은 공사 양쪽 영역에 모두 다 여성의 권한이 더 높은 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딸이 결혼하고도 부모와 같이 사는 처가살이를 했으므로 아들보다는 딸이 남편과 더불어 부모를 봉양해야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자녀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행봉사輪行奉祀‘의 형태가 되기도 했다.이렇듯 남성보다 여성들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무는 고스란히 남성들의 몫이었다. 병역의무를 의미하는 ’군역軍役‘, 납세의 의무를 의미하는 ’조세租稅‘ 강제로 동원되어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요역?役‘ 등 이 모든 사회적 의무는 오직 남성들에게만 부과되었다.
성은 문란하고 의무와 책임은 남성들에게만 부과되었던 패망 직전의 고려의 모습은 현대의 한국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그렇다면 고려를 이은 조선은 어떠했는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체제를 가지고 있었는가? 전혀 아니다.조선의 지배이념인 ’유교儒敎‘에는 생물학적 본질에 의한 남녀의 차별이 없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남녀의 역할에 대한 구분이지 그에 따른 신분적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공적영역으로 진출할 수 없었다는 측면에서 차별을 말한다면 더욱 터무니 없다.
조선은 분명한 계급 사회였다. 공적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의 양반들이었다. 즉,’양천제良賤制‘에 의한 신분차별로 양반이 아닌 대다수의 남성들 역시 공적영역으로 진출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따라서 페미니즘이 말하는 차별의 기준으로는 소수의 양반 계급 남성들만이 공적영역에 진출할 수 있었을 뿐 그 외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여성보다 더욱 착취당하는 계급이었다. 양반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 신분에서도 남녀의 차별이라는 자체가 존재 하지 않았다.’남녀칠세부동석‘ 엄격한 ’내외법內外法‘에 의해 남녀가 각각의 역할에 있어서 명백한 구분이 있었을 뿐이며 오히려 성별의 엄격한 구분은 상대 성性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어려워하며 존중하는 바탕이 되었다.
선비가문의 부부에게 있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하대下待'를 한다거나 폭행을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현대의 부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호존중과 예의를 갖춘 남녀관계였다. 다만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상속을 하고 시집을 간 딸에게도 공평한 상속과 제사 참여 의무를 부여하는 등 남녀의 성별에 의한 차별이 없이 평등함을 유지했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발생했다.
조선을 움직인 지배체제인 유교의 ‘성리학性理學’은 형이상학적인 이념으로서 훌륭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관념적 가치를 숭상하는 이데올로기였고 이로 인한 인간, 남녀의 역할과 가치는 당연히 상호 존중되고 배려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그런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공리주의功利主義’현상이 대두되고 서로 간에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조선사회도 점차 상공업사회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19세기 공리주의적 정치가 대두되면서 전통사회 내에도 강자의 논리가 작동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일제시대를 통과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정옥자) 결국 위대한 정신문명을 가졌던 조선을 타락시킨 것은 물질에 대한 개인의 탐욕이 본격화되면서 부터였다.
그로 인해 19세기부터 장남만을 대우하는 ‘장자우대’의 전통이 강화되고 상속권에 차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의 그 정도 차별은 미국, 유럽등(이슬람권국가나 아프리카 등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차별과 억압에 비한다면 비교조차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남녀가 평등했고 많은 경우 여성이 더 대우받았던 한국의 역사에서 볼 때 19세기부터 일제치하를 관통하는 기간 동안이 여성에게 차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국 이외의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차별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일본 식민지 35년 동안도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남성이든 여성이든)총대를 매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었고 1948년 해방을 맞아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법적권리를 획득했고 1950년대 전쟁직후 전 국토를 구석기시대로 만든 폐허에서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맞기까지 남성들은 이국의 수백 미터 지하 탄광에서, 전쟁터에서, 목숨과 맞바꾼 외화를 벌어들이고 열악한 건설, 산업현장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기까지 숱한 피와 땀을 흘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의 여성들이 억압과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대체 무슨 억압이고 차별인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구체적으로 여성들이 억압과 차별을 받았다는 사례를 제시할 것도 없지만 기껏 그녀들이 말하는 차별은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순서’가 뒤에 있다고 해서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물이 위에서 흐르듯 순서를 정할 필요성에 의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차별인 것이다.
‘영어권국가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단어가 많다.한국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남녀, 부부, 부모, 자녀처럼 양성을 조합한 단어에는 으레 남성이 앞에 배치되고 가장, 주부, 집사람,내조,친가,외가,미망인,윤락녀등 성차별적 단어들이 적지 않다’(김신명숙)그러니까 주민번호 1번이 남성을 지칭하는 것이 불쾌하듯이 ‘순서’에 대한 불만을 차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페미니스트이지만 다른 의견을 내는 이도 있다. ‘우리말에는 안팎,내외, 음양, 밤낮 등 어찌 보면 여성을 더 우대하는 듯한 표현이 아주 많다.’(최재천) 과연 어느 쪽이 신빙성 있게 들리는가? 영어표현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단어가 무수하다.왜? 여성을 차별했으니까! ‘영어표현은 여성을 지칭하는 언어자체가 부정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가 무수하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을 표현하는 단어는 220개인 반면 성적으로 문란한 남성을 표현하는 단어는 단 22개뿐이다.’(스탠리Stanley1977)한국어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표현이 없다. 한국의 역사에서 여성은 여성성을 존중받고 배려 받았던 것이 사실이니 특별히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있지 않다.
오히려 욕설은 남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한 사내답지 못한 남성이라는 의미의 욕설이 많다. ‘새끼’ ‘놈’ 등과 관련된 욕설은 전부 남성답지 못한, 사내구실 못하는,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에 대한 욕설이다.이런 형태의 욕설은 현대에도 대부분 이어져서 남성의 남근을 뜻하는 ‘좆’이 욕설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마 여성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욕설일 것이다.
‘좋은 년, 나쁜 년, 이상한 년.’이라는 영화가 나왔다면 어떠했을까?심의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당연히 영화제목으로 쓰일 수 있는데 말이다. 한국사회가 역사적으로 남성에게는 엄격한 조건(남자답기 위해서)을 요구했지만 여성은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여성으로 인정받고 배려 받았기 때문에 남성의 남성성을 비하하거나 빗댄 욕설이 많은 것이다.
한국역사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남성에 비해 차별한 사례를 찾을 수는 없다.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할에 의한 구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권리와 지위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차별들은 남성의 노고와 희생을 열거한다면 부끄러워질 만한 그런 사례들밖에 없다.여남이 아니라 남녀이고 주민번호 1번을 남성이 사용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리를 여성들이 더 누리는 현대의 한국처럼, 한국의 역사가 그랬다.
남성연대 상임대표 성 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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