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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마소.. | 22/09/01 11:27 | 추천 24

한국군의 뿌리는 일본군일까 광복군일까? +10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36709934

 

 

군대를 비롯해서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누가 그 조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당시 국군에서는 광복군출신들은 친일 의식해서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출신들이 섞여 있어도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그룹이 있으면 그 조직은 거기에 영향을 받는 조직이다.

 

이런 핵심적인 부분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다른 그룹도 섞여 있으니 거기는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건 진짜 개소리다.

 

 

어느한 조직이 있는 경우 그 조직 내부문화가 어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나? 그리고 그 내부문화를 주도하는 그룹은 누구이고, 어느 출신인가?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그 문화에 대해서 역사적평가를 하는거다. 물론 다른 요소들에 원인도 섞여 있겠지만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뭔지를 구조적으로 밝혀내는게 중요하다.

 

아무튼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1. 대한민국 국군 창군기 누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는가?

 

이것을 알려면 우선 군사영어학교라는걸 알아야 한다. 군사영어학교가 뭐냐면 해방이후 미군정이 남한에 군대를 만들기 위한 지휘관을 양성하는 시설로 육군사관학교의 모체였다.

 

여기는 미군정이 최초로 만든 군사교육기관이었고, 미군과 연줄이 닿기 때문에 여기에 입학하여서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후 창설된 남한의 군대를 이끌 지휘관이 되는거다. 즉 엄청 중요한 기관이다.

 

그럼 여기에 누가 들어갔을까?

 

<표 1> 군사영어학교 출신 임관자 현황

 

구분

일본군

만주국군

광복군

합계

일본육사

학도병

지원병

임관자

13(12%)

68(62%)

6(5%)

21(19%)

2(2%)

110

 

 

 

 

출전 한용원?남북한의 창군?오름, 2008, 199.

 

 

우선 <표1>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군사 영어학교 대부분은 일본군 출신과 만군출신으로 이뤄졌다. 즉 초창기 남한군 지휘관들은 대부분 일본군과 만군출신들로 채워질수밖에 없었다.

 

군사영어학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저거 110명 중 78명(71%)이 이후 군장성까지 올라갔고, 그중 13명이 참모총장, 9명이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즉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한국군의 충주였다는 소리다.

 

그 다음 중요한거는 일선 부대 지휘관을 누가 맡았냐는거다. 알다시피 실제 휘하에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일선 부대 지휘관이 가진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초창기 한국군의 경우 중앙에서 거의 통제가 불가능했고, 군 중앙에서 군사교리나 훈련메뉴얼 이런것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여서 일선지휘관의 재량으로 모든게 처리되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일선 지휘관의 가진 힘이 강력했다.

 

<표 2> 1-9연대 창설연대장과 후임연대장

 

연대

창설

후임

연대장

경력

연대장

경력

1연대

채병덕

일본육사

이성가

중국왕정위군

2연대

이형근

일본육사

이형근

일본육사

3연대

김백일

만주국군

김백일

만주국군

4연대

김홍준

만주국군

정일권

만주국군

5연대

박병권

학병

백선엽

만주국군

6연대

김영환

학병

최남근

만주국군

7연대

민기식

학병

이병주

만주국군

8연대

김종갑

학병

원용덕

만주국군

9연대

장순국

일본육사

장순국

일본육사 

 

 

 

 

출전 : 노영기?1945-50년 한국군의 형성과 성격?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 64-66.

 

 

 

한국군의 모체가 되는 남조선국방경비대(이하 경비대)가 1946년 창설됐는데, 이때 경비대 9개연대로 이뤄졌다. 

 

<표 2>는 그 9개 경비 창설 연대장과 후임 연대장을 나타낸다.

 

초창기에는 지휘관 부족으로 학병출신들이 많이 중용되었는데, 학병출신들은 실제 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조만간 죄다 만군출신으로 교체당했다.

 

당시 만군출신 지휘관들은 만주군관학교에서 군사교육도 받았고, 실제 만주와 화북에서 조선인 항일게릴라랑 팔로군 토벌작전을 하면서 군 지휘경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경비대의 실질적 무력인 창설연대 지휘관들은 대부분 만군출신 애들한테 돌아갔다.

 

그럼 지금까지 정리해보자.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이자 이후 한국군 지휘관부의 중추를 이루는 군사영어학교는 대부분 일본군과 만군 출신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이후 한국군의 모체가 되는 경비대의 창설연대는 대부분 일본군과 만군출신, 특히 만군출신들이 연대장을 맡았다.

 

이것만 봐도 당신 군 내부의 실질적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광복군 출신들은 얼굴 마담으로 몇몇 고위직을 맡았지만, 하나의 세력을 이루지 못했고, 실질적인 요직은 대부분 일본군 출신, 그중에서도 만군출신들이 많이 장악했다.

 

 

2. 초창기 한국군의 군사문화는 어떠했는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초창기 남한군은 중앙통제력이 약했다. 그래서 사실상 각부대 일선 연대장이 알아서 하는 수준으로 군대가 운영되었다.

 

근데 그것도 그럴것이 중앙차원에서 군사교범 및 교리, 훈련메뉴얼 이런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깐 그냥 일선 연대장들이 알아서 훈련시킬 수 밖에 없었다.

 

또 얼마나 당나라 군대였냐면 그냥 아는 사람들 막 자기 연대에 집어 넣고 그랬다. 그래서 초창기 남한군에 공산주의가 많이 들어왔던 것도 그냥 동네 친구들 막 제대로 신원조회 안하고 받다보니 그렇게 된거다.

 

어쨋든 중앙차원의 교범이나 교리가 없다보니깐 일선 연대장이 알아서 훈련시키는데, <표2>에서 봤다시피 일선 연대장은 대부분 만군 및 일본군출신들이다.

 

그러니깐 그냥 만군과 일본군에서 배운 교리랑 훈련 메뉴얼대로 하고, 군사문화도 만군과 일본군에서 하던거 가져와 했다. 그렇다보니깐 경비대 군사문화는 그냥 일본 군사문화의 연속이었다.

 

훈련방식도 일본군이랑 만군 그대로였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기니깐 <표2>에 언급한 노영기의 박사논문을 직접 찾아봐라. 거기 설명 다되어 있다.

 

이 일본군과 만군, 특히 만군출신들은 자기 프라이다 졸라 강해서 미국 군사고문단이랑 교리, 훈련메뉴얼, 군사문화 가지고 겁나 충돌했다.

 

미군군사고문단이 보기에는 만군출신 애들이 하는게 존나 이상하게 보여서 뭐라고 참견하면 만군들은 미군 고문 무시하면서 "나는 이렇게 배웠는데?" 하면서 졸라 쌩깠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만군 출신 중 박창암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얘는 미국 군사유학까지 갔는데, 갔다와서 하는 말이 미군은 대유격전을 모른다고 이렇게 말할정도였다. 대유격전만큼은 일본군이 더 낫다고 생각함.

 

뭐 실제로 2차대전 미군은 제3세계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하는 대유격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졌고, 만군이 이부분에서 만큼은 거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미군 쌩깔 정도로 자기 프라이드 쎄고 정신이 약간 나간 놈들이 만군출신들임. 

 

아무튼 정리하자면 한국군의  뿌리는 일본군과 만군, 즉 일제의 잔재, 일제의 유산이 그대로 답습되었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같은 말이지.

 

 

 

1.한국군의 뿌리는 빼박 일본군

 

2.황군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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