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하면 사람들은 흔히 시마즈의 일본군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시마즈 요시히로만 겨우 겨우 살아서 도망간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음. 물론 이순신 장군은 훌륭한 장군이지만 역사는 제대로 봐야하지 않겠노?
그래서 노량해전에 대해서 자세히 파보려고 함.
노량해전 이후 형개의 첩문
300급을 베었고 시마즈 요시히로 사살, 마사나리(데라자와) 생포 라고 보고함. (명신종실록)
그러나 데라자와는 노량해전 참전하지도 않았고
시마즈는 멀쩡히 살아서 세키가1하라 참전했고
85살에 천수를 누리고 죽음
진린은 그냥 생포한 일본군들에게 이거 데라자와 맞냐 물어봤는데
정작 졸병들은 데라자와 생긴것도 모름.
즉 엄한놈 하나 잡아놓고 데라자와 잡았다고 신났던거.
당장 노량해전에서 주력으로 참가한 명군 보고가 이따구인데
조선 명측의 전과기록이 정확할거라고 믿는거 자체가 어불성설
조선에선 이덕형이 200척 격침 수천명 사상이라고 보고했는데
이마저도 참전 하지도 않은 문관인 이덕형이 명나라 보고를 기반으로 대충 짐작해서 떠들어댔을 가능성이 높음.
현실적으로 봐서 명나라가 베었다는 수급 300개-500개 정도가 일본군의 피해 전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한다.
임진왜란 직전 시마즈 가문이 히데요시와 가문의 운명을 걸고 싸울때 영끌한게 3만 5000명 정도 된다. 시마즈 가문의 당주인 요시히사는 조선 근처도 간적 없고 동생인 시마즈 요시히로가 1만명 정도 이끌고 참전함.
노량해전에서 주로 싸운건 시마즈의 군대이기에 궤멸적인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 시마즈 가문의 군대는 3만 근처도 나올수가 없어진다.
그런데 노량해전 몇 달 뒤에
조선에서 귀국한 시마즈 요시히로와 시마즈군은 1599년 바로 시마즈씨의 가신인 이주인씨와 내전을 벌임.
요시히로 아들인 타다츠네가 이주인씨가 조선 출병때 시마즈군에게 제대로 병량을 보급하지 않고 같이 출병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이주인 타다무네를 죽였는데, 그 때문에 이주인 타다무네의 아들이 시마즈 가문에 반기를 일으킨 거임.
여기서 시마즈 가문이 동원한 병력이 3만~4만 정도.
즉 석고 기준 추정계산에서 시마즈 가문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인 3만~3만 5천과 정확히 일치함.
임진왜란때 조선출병한 시마즈군이 1만 정도인데
수천명이 죽었으면 저정도 병력이 나올 수 가 없음.
따라서 노량해전때 시마즈군의 병력피해는 수백단위 정도로 미미했다고 추정 할 수 있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고작 1600명 밖에 안 끌고 갔다면서 시마즈의 피해가 궤멸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위에 전투는 어떻게 설명이 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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