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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22.. | 22/06/22 15:52 | 추천 25

장문) 현대인들이 영혼을 스스로 버리는 이유 분석 +15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2258907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colonialism&no=206339



저분 글을 보면서 비유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의문점이 드는게.. 왜 현대인들은 '자발적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는걸까? 였다

고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국가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레반트 지역과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점령해 대제국을 세운다음,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 각 지역 민족들을 그들의 땅으로부터 강제로 분리시켜 자신들의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 풍습에 따라 무려 수십~백수십년간이나 살게 했는데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민족들이 많았었고

그들의 지배가 끝나자 정체성을 잃었던 민족들조차 다시 새로운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는데

현대인들은 물리적으로 구속을 당하거나 강제되지 않는데도 왜 다들 스스로 원해서 하나가 되려고 하는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현대인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거대 피라미드 안에 참여하려고 하는것일까

바빌로니아 땅으로 끌려간 민족들도 하나의 영역 안에 있었고, 현대인들도 인터넷과 미디어와 여러 통신수단과 교통의 발달 등으로 사실상 하나의 영역 안에 있는중인데, 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개성이 사라지지 않았던반면 후자는 스스로 다들 원해서 자발적으로 복제인간이 되려고 하고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결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버리게끔 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단면 그 자체적으로 봤을때는 책임이 없는것 같아보여도 모든 요소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작동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어느 한 지점으로 유도하게 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러 책임없어보이는 원인들중 가장 크고 시초되는 원인은 아마도 공화정 정치체제일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은 권리를 받는다는 이 점은 다시 말하자면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말하자면 한 사람의 권리는 한 분깃뿐이지만 책임은 전체의 분깃에 대해 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려면 살수록, 그 사람의 움직임의 방향과 모양이 관계중심적으로 맞춰질수밖에 없다. 이는 바빌로니아의 느부카드네자르가 강제로 했던 구속보다 더 강한 구속으로 작용하면서도 구속당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책임 또한 스스로 진다. 책임을 동반한 눈에 보이는 구속에서 책임이 없는 눈에 안보이는 구속으로 바뀐것이다

물론 전근대 시대 왕국의 백성들도 큰 움직임 안에 포함되어있었으나 구조상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시간이 훼손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든 개인들이 연결되었다. 모두가 권리를 받는다는 그 보기좋은 말에는 모두가 연결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으며, 모두가 연결되었다는 말은 각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중심으로 사는것보다 집단의 자아로 살게되게끔 유도된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가 부여된 존재는 집단으로부터 나온것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 또한 같이 지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모양과 움직임의 방향을 그에 맞출 필요성이 있다. 이는 강제는 아니고 유도이지만 사실상 강제라고 생각한다.

또 이 기본 모형에 여러 부가적인 이유들도 더 있을것이다

예를들어 학교, 미디어, 사회구조 등이 각각 서로 맞물려 '되어지게끔' 강하게 시너지를 일으키는 식이다

공화국의 시민은 기본적인 교양을 갖춰야 권리 행사를 잘 할수 있다며 권리를 가지게될 '모든' 사람들을 학교에 보냈으나,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학교에서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는것은 사실상 사람을 하나로 동질화 시키는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들과 변증법적 유물주의와 실리성, 경제성, 효율성 등의 철학들을 배운다. 역사를 배울때에도 그 관점에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접붙임을 받게되는것이다. 게다가 아이들끼리의 사회에서도 모두가 동일한 양식을 취하게끔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미디어, 영화, 게임 등은 개인의 정신을 그 세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더 재미를 느끼려고 할수록 더 그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상의 영역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누리고 즐길수록 현실의 세상은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 '여러 상대적인것들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뿌리가 쇠약해진 상태 속에서 관계적인 이득 앞에 놓이게 되면 자신을 포기하기가 더 쉬워지게 된다

사회구조나 기술의 발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욕구와 충족 사이의 그 과정을 의도적으로 없애버리려는듯 느껴질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는 그 중간 단계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축소되어있다. 그 욕구-충족 사이에 존재했었던 과정은 비록 사람을 고되게하고 불편하게하고 애쓰게 만들고 피로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연마하고 발달시킬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효율성, 합리성, 실리성 등의 이유로 아예 없애버려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그게 사용되거나 쓰일 일이 별로 없어져 자연스럽게 영혼을 버릴수 있는 쇠약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또 관계의 부피를 전세계급 규모로 엄청나게 키워놓자 관계적인 이득의 가치 또한 그에 비례해 굉장히 커졌는데, 이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공산품으로 만들려는 길에 쉽게 빠지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각자가 고유의 시간을 가지면서 태어난다. 각 사람은 지능, 인성, 욕구, 정신, 환경, 성향, 두뇌기능, 역사, 유전자, 신체 등이 전부 다 다르며 사람은 "나-세상"의 구조 속에서 자신을 위해 눈앞을 보며 사는 존재이므로 스스로를 위해서 산다면 저절로 각자가 고유의 움직임을 낼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해 진실되고 자신을 위하다보면 저절로 개성이라는것도 생겨나는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되는 길보다 관계 속에서 잘 팔리는 길을 택했다. 절대적인 고유의 하나보다, 여러 상대적인 공산품중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한것이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서있으면 타인을 존중할때에도 그 자체로 저절로 존중이 되는데, 이들은 자신을 버리고 관계 부피에 따른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들인지라 자신을 볼때에도 관계속에서만 보고, 남을 볼때에도 관계속에서만 본다. 그래서 남을 존중해줄때에는 심리적인 트릭을 만드는식으로 존중해줄수밖에 없으며, 가지고 있는 메뉴얼보다 자극이 강한 예외의 경우가 생겼을때에는 그 경우까지 포함해서 다시 메뉴얼에 포함시키는식으로 처세한다. 또 상황에 따라 운영 및 연출을 잘해야지 자신의 캐릭터를 잘 보여줄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있다.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나온것이 바로 세계의 다양성 추구라 생각한다. 애초에 자신에 대해 진실된적도 없어서 진짜 자아라는걸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인간들이니 그냥 외면 이미지 종류가 많거나 벌집 갯수가 많으면 다양하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자신을 버렸으니 당연히 상상력이 자라날수도 없다. 모든것들은 외부의 형식을 취하거나 경로들을 취해 조립해 만든것들일뿐이며, 사물을 보고 해석할때에도 이 틀을 이용해서 해석할뿐이다. 게다가 이편이 더 쉽고, 효율적이고, 오답률이 낮을뿐만 아니라 위장도 쉬워서 자신의 수준 이상의것을 누리기에도 용이하다. 또 현대사회의 여러 미디어들로 인해 심성적으로 게을러진것까지 시너지가 더해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버리고 쉽고 편한길을 택하고 있다. 달라보이는것은 두뇌기능에 따라 세밀한 부분까지 조립하느냐, 뭉툭한 부분까지가 한계이느냐 이 차이에 따른것일뿐 모두가 원리적으로 봤을때는 복제인간들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의 사회성이란 거대한 비닐하우스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상력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100%의 자유가 나올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외에 환경적인 이유도 있다. 사람들을 계층화시켜 분리해놓은 전근대시대랑 다르게 현대시대는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맞춰놓고 같은 지대 위에 서게 만들어버렸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사람들의 부피도 인구가 폭증함에 따라 굉장히 늘어났기 때문에, 결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깊게 지낼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의 가차를 취할수밖에 없게되었다. 그것은 확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이쪽부터 저쪽까지 한발도 안맞고 걸어가는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패턴 안에 스스로를 넣어야되는것은 사실상 필연이라 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것들을 통제아래에 둔데다, 모든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연결시켜버려 기존의 나->관계의 도식이 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채 관계를 수단으로 살아가야되는데,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키고 한 틀 안에 담은데다 실리성 등의 철학에 따라 살다보니 관계가 시초가 되어버렸고,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되다보니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1단계를 거쳐 2단계가 나오는것이고 사물에 따라 그림자가 지워지는것인데, 1단계가 생략되어버렸고 그림자만 남게되었다는 소리이다. 관계는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는것일뿐이며 그 관계라는것은 자신을 확인하고 시험받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뿐인데, 여러 시스템들과 효율성 실리성 등의 철학에 따라 관계만 남겨놓게되니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는 관계라는게 사람을 정지시키고 로봇처럼 만드는것으로 바뀌었다

실리성, 경제성, 효율성의 이유에 따라 인간에게 불확실성을 없애버리고 개별성을 없애버리면 모두가 행복해질줄 알았더니 모두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모두에게 시간이라는게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관계가 중요한것 같아서 관계에다 초점을 옮기니 모든게 공허해졌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 정답이라서 동쪽으로만 가게끔 통로를 만들어놓았더니 모든게 허상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이게 어리석음에 따른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여러 시스템들에 의해 영혼이 단련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미약하게 된 상태이고, 잘못된 철학까지 학습했고, 관계적인 이득이라는 마약 앞에 늘 노출되어있고, 모두가 자유인이 되었고 모두가 같은 지대에 서게됨으로인해 가장 낮은 수준의 사람에게 맞춰지느라 양식이 통일될수밖에 없고, 콩알만해진 영혼만 버리면 너무나 쉽고 편한길을 갈수 있게끔 세상이 디자인되어있고, 공화정 시민으로서 잘 살기 위해서는 전체에 맞추는게 좋은 길이라,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 영혼을 버리게 된것이다. 생존을 위해서이든 저절로 유도되든 이득을 위해서이든 동인은 여러가지이나 모두가 영혼없음이라는 지점을 향해있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은 전부 자유의 지대 위에서 현대인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각각의 부분들은 아무 상관없어보이는것들인데 이것들이 역학적으로 교묘하게 유도되거나 작용되다보니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있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들이다. 바빌로니아에 사로잡힌 민족들은 다 똑같은 껍데기를 가지고있어도 다 다른 존재들이었으나, 현대인들은 껍데기 스킨이 수천만 이상이어도 다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피가 많을수록, 그 부피에 따른 가치가 많아지는것 같아보여도 그 부피의 사람들은 죄다 영혼이 없는 존재들인지라 사실상 한명에게 인정받는것과도 같다. 누군지도 모르는 한명에게 인정받으려고 자신의 영혼을 버리고있는것이다. 한 영역에 다양한 개성들이 있는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원리 안에 있다는점에서 한가지의 개성일뿐이다. 그리고 사실은 하나의 개성이지만 겉보기엔 다양해보이는 그 개성 가짓수를 위해서 모두가 어떤 시스템에 동의하고 지평을 더 넓히는데, 그 지평을 넓히는것에 따라 역설적으로 모두가 더 통일되는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껍데기와 알맹이의 해석이 상반되게 만들어진 일종의 사기 모형이라 생각한다




출처 : https://arca.live/b/history22/51733926?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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