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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에게.. | 22/05/12 18:27 | 추천 35

유재석과 비교되는 우에시마 류헤이 +13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414028886

인기 개그맨 우에시마 류헤이가 자살한 일로 현재 일본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벤트에 출연하여 웃음을 주던 사람이 자살했기에 '우리가 모르던 고민이 있었던 것인가'하고 자살 원인을 추측하고 있다.
일본이 한 개그맨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는 물론 우에시마가 인기 개그맨이기도 했지만 그가 망가지는 역할을 도맡아 하고 후배를 챙기는 인품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에시마는 처음에는 배우를 지망하던 인물이다. 같이 배우 수업을 받던 데라가토 지몬의 권유로 소극장에서 개그 꽁트를 보고 난 후 개그맨이 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데라가토 지몬과 함께 타조클럽을 만들었다.

한편 우에시마의 남다른 연기력과 언제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 타이밍을 감지하는 능력, 그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자세를 알아본 시무라 켄에 의해 시무라의 비서 & 제자로 발탁되었다. 우에시마는 시무라를 개그 스타일 뿐만 아니라 인격, 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자신의 스승이라 말했다.




시무라는 후배에게 똥군기를 잡거나 갑질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떻게 관객을 웃기느냐 그것 뿐"이라 강조했고 자신을 돕는 스태프나 조연들에 대해서는 "관객을 웃기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늘 했다. 그 철저한 프로정신에 우에시마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타조클럽도 기본적으로 시무라 켄처럼 꽁트를 구사한다.


우에시마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고 식사하면 돈도 척척 내는 시무라를 늘 동경했다. 그는 타조클럽으로 인기를 얻게 되자 자신도 재능은 있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후배들을 찾아내어 조언과 용돈을 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웃음을 잡는 타이밍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후각을 갖고 있던 우에시마는 무명 개그맨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러한 우에시마를 존경하는 개그맨들은 모여서 '류헤이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류헤이회의 멤버들은 대부분 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으니 그들의 재능을 간파한 우에시마의 안목은 대단했다.





우에시마 하면 워낙 망가지는 모습만 알려져 있었고 방송보다는 무대를 선호했던 시무라를 본받아 방송에서도 망가지는 역할만 고수하던 우에시마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류헤이회의 멤버들이 성공한 다음에 "내가 성공한 것은 우에시마상 덕분이다. 그분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절대 이 자리 올 수 없었다"고 말한 덕분에 우에시마의 능력과 인품이 알려진 것이다. 





우에시마는 자신의 선행을 밝히는 것을 매우 꺼렸다고 한다. 후배들을 도우면서 절대 생색을 내지 않았던 시무라처럼 우에시마도 "쓸데없는 소리(자신의 선행)를 하면 앞으로 내 개그가 안 먹히게 된다"며 싫어했지만 류헤이회의 멤버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우에시마는 "봤죠? 쟤들 중에 날 선배라고 생각하는 놈 없어요. 내 말 안 듣잖아요"하면서 바보 캐릭터를 끝까지 연기했다.


똥군기가 심한 개그계에서 우에시마는 후배들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고 류헤이회의 멤버들도 갑질로 인한 추문이 없다. 이 점은 우에시마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시무라 켄에서 시작된 갑질없는 개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받아 우에시마는 선배 눈치보지 않고 후배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자신은 추가로 조언만 해주었다. 그래서 우에시마는 "다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나서 난 류헤이회에 가면 꼬붕 같은 기분이 돼"라고 농담을 했다. 


류헤이회에서도 가수 활동을 하다가 인기가 사라져 오랫동안 고생하던 아리요시 히로유키는 우에시마를 제2의 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랐다. 아리요시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넌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절대로 개그맨을 포기하지 마라. 생활비가 없으면 나에게 말해라"고 챙기며 그를 키웠다. 지금은 인기 MC가 되어 우에시마를 놀리는 역을 맡게 된 아리요시는 "나는 그분에게서 개그가 무엇인지 배웠다. 내가 그분을 놀리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돌이나 신인 개그맨들이 우에시마를 무시하는 것을 보면 "우에시마상을 바보 취급하는 멍청이들을 보면 진짜로 분노가 차오른다. 그들은 우에시마상이 초일류 게닌(방송인)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아리요시는 나중에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우에시마에게 알렸고 우에시마의 환갑 때에는 노짱의 시계로 알려진 P모사의 시계를 선물했다. 선배 개그맨에게 주는 선물치고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말에 아리요시는 정색을 하며 "아버지에게 하는 것인데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우에시마를 존경했다. 
우에시마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다음에 아리요시는 "우는 것은 우에시마상의 장례식에서만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우를 지망하다가 개그맨이 된 데가와 테츠로와는 평생에 걸친 우정을 나누었다. 데가와도 우에시마와 비슷하게 망가지는 역을 솔선해서 맡았기 때문에 "텟짱이 있으면 내가 못해도 어떻게든 관객을 웃길 수 있을 것이다", "텟짱이 없으면 아마 나도 없어지겠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우에시마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면서 "데가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정도로 둘은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던 사이였다. 





우에시마는 존경하던 시무라가 코로나로 죽은 이후 자주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시무라상이 닦아온 개그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거 같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우에시마는 술을 마시러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주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살의 원인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우에시마는 그가 평생 존경하던 시무라처럼 프로 중의 프로 개그맨으로 불린다. 연예계의 대선배이자 시무라의 직계로 얼마든지 방송에서 꿀빠는 자리를 맡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항상 "나는 개그맨이고 무대 위에 서는 게 더 어울린다"며 후배들에게 방송인 자리를 내주었던 인물이다. 다소 인기 없는 개그맨들처럼 무대 위에서 구르면서 관객들을 웃겼다. 그리고 방송에 나가면 후배들에게 놀림을 받고 망가지는 역할만 고수했다. 

다만 드라마에 출연하여 개그를 일절 배제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나도 배우를 지망했었기에 연기에 대한 욕심을 아주 버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80세가 되어도 열탕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우에시마가 처음 인기를 얻었던 개그가 열탕 속에 들어가 괴로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겨우 61세에 스스로 생명을 버렸다. 앞으로 더욱 원숙하고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었는데 그는 너무나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언제나 명랑하기만 했던 우에시마. 그에게는 어떤 고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인들은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때와 마찬가지로 우에시마의 자살에 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절대로 자살할 리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우에시마의 죽음 이후로 우울증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에시마는 생전 정치적 발언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개그맨의 역할은 사람을 웃기는 것이지 사람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는 시무라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모든 면에서 우에시마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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