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본격적 여름이다.
그 덥다는 대구보다도 지금 부산을 '뜨급게' 달구는 사나이가 한명 있다.
사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출생 이후부터 늘 뜨거웠던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다 들어봤고,
누구나 알고 있다는 남자. 사실상 부산의 걸어다니는 하이패스인 이 남자.
1987년생 '부산대장' 위대한을 한 카페에서 만난 것은 5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근처 모텔에서 자다 나왔는지 와일드한 모습이었다.
모텔 싸구려 가운에 검은색 반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가운에는 '동래모텔'이 빨간 글자로 적혀 있었다.
(편의상 기자의 이름은 기, 위대한 시의 이름은 위 라고 작성합니다.)
기: 반갑다. 위대한 씨 이름은 참 많이 들어봤는데, 처음 뵙는다.
위: 씨바마 피곤해 뒤질라 카는데 개우 나왔심니다
기: 무슨 말씀인지 잘 못 알아듣겠다.
위: 부산말 몬알아들을끼믄 인타뷰 왜 하자 켔십니까
기: 피곤하다는 뜻인가?
위: 보맨 모릅니까 내 지금 뒤지기 직잰인데
그러면서도 잘 차려입고 나온 위대한을 보니, 확실히 그는 사나이다.
가운 사이로 드러난 터질것만 같은 젖꼭지
모두를 부드럽게 받아줄 것만 같은 쿠션같은 배.
그러나 가장 눈이 가는 것은 그의 반바지였다.
기: 허벅지에 이 상처는 뭔가? 꽤 깊어보인다.
위: 씨바마 내 칼 맞았다 아잉교 존나게 맞았는데 씨바마 그기 내 아는 동생이..
(이후 발언은 수위가 높고, 너무 길어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기: 그래도 근성이 대단하다. 칼 맞을 때 안 아팠나.
위: 피디님 칼 맞음 안아프겠심까 아프지요 주먹만 맞아도 아픈데
기: 근데 저 피디가 아니고 기자다.
위: 씨바마 내가 피디라믄 피디인기고 대통령이라믄 대통령인기제 말이 많심니까
기: 미안하다.
내 직책을 함부로 바꿔버리는 사람을 보통 용서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쩌겠는가. 위대한이 날 보고 피디라는데. 피디 하기로 했다.
기: 확실히 부산대장 답다. 근데 이젠 골목대장 타이틀 벗을 때 되지 않았나.
위: 무슨 말잉교 골목대장은 무슨 씨바마 무슨 부산이 무슨 골목이고 존나게 늘븐데.
부산이 골목이믄 마 스울은 씨바마 마 즘빵이가? 부산대장이 즌국대장임다 즌국구.
기: 미안하다. 용서해달라. 부산대장이 전국대장 맞는 것 같다.
위: 조심하이소 씨바마 내 대장자리 달을라꼬 손가락도 잘랐는데.
그가 오른손을 들어 보여준다. 과연 손가락이 하나 없다.
기: 혹시 한센병 앓은 적 있나
위: 한 뭐? 그기 뭔데
기: 한센병 때문에 손가락이 없어졌나 해서..
위: 그기 뭔데요.
기: 문둥병을 얘기하는 거다.
위대한의 눈빛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역시 부산대장. 사자. 사자 그 자체다.
인간이 사자에게 장난을 칠 수 있게 허락되어 있던가? 아니다.
그는 이미 눈빛만으로 날 다섯번은 넘게 죽였다.
기: 미안하다. 근데 손가락은 어찌 됐나.
위: 씨바마 내 대장 자리 달을라꼬 잘랐다 안하요. 남자니까.
기: 손가락 잘랐으니 남자인가
위: 그라믄 마 당앤하지. 씨바마 손가락 자르는 놈이 멫이나 된다꼬..
기: 그러면 주변 사람 중에는 진짜 남자가 없겠다
위: 당앤하지. 당앤하지. 당앤하지..그그는 당앤하지.
피디님은 손가락 자를라카믄 자르겠심니까. 몬하지? 내는 한다.
그는 연신 잘린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내 눈 앞에 들이댔다.
마치 그의 오른손에 꼬마 부산어묵이 한개 달려 연신 꿈틀대는듯 했다.
위: 하리수도 마 내 앞에 델꼬오믄 내 남자로 만들어가 줍니다
기: 근데 하리수 씨는 원래 남자였지 않나
위: 그니까네 씨바마 제자리로 돌리준다꼬. 피디님 대가리가 안 좋네.
기: 근데 저 피디가 아니고 기자다.
위: 피디님
기: 네
위: 피디님
기: 네
위: 피디님
기: 네
위: 피디입니다 알겠십니까
기: 알겠다 (침묵)
위대한은 마지막 남은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얼음이 입 안으로 와라락 쏟아지자 아무렇지 않게 씹어삼켰다.
이 남자,
남극 쇄빙선 대신 쓸 수 있지 않을까.
기: 혹시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 없나.
위: 할말이 뭐 있는교. 내는 마 할말 다 하고 살아가 읍심다.
기: 그러면 여기서 마쳐도 되나
위: 할말 다 했심다 내는 말로 안합니다 행동으로 하제
위대한이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위: 피디님 마 크피는 내가 쏩니다. 내 돈 많이 브는데예.
기: 무슨 말인가
위: 돈 돈. 돈 많다고...씨바마 귀때가리를 삶아뭇나 아까부터.
기: 그게 아니라 커피값 내가 다 이미 계산했지 않나.
위: 아 그라요? 존나게 미안하게 됐심니다. 내 갑니다 피디님
끝까지 기자인 나를 피디라고 부르고
커피값도 내가 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욕까지 먹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큼은 상쾌했다.
사자 우리에서 상처없이 풀려난 가련한 인간의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위대한을 만났다는 기분좋은 상쾌함 이었을까.
오늘도 동래모텔의 간판은 붉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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