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헤란 회담
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던 1943년 11월 28일
전쟁이후 독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해 의논하려고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즈벨트, 구소련의 스탈린이 테헤란에 모여 회담을 했다.
왼쪽부터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2.처칠이 구상했던 독일의 재편성
처칠은 독일을 독일중부에 흐르고 있는 마인강을 경계로 독일을 남과 북으로 나누자고 했는데
우선 북독일은 프로이센적이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들었다.
프로이센적이라는 것은 독일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탄생되기 이전부터
북독일은 프로이센왕가의 땅이었고, 문화적으로 엄격하고 호전적이고 복종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북독일인은 흔히 말하는 전투민족독일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와는 반대로 마인강남쪽의 남독일인들은 북독일인과는 달리 명랑하고 밝고 문화적으로 오스트리아에 더 가까웠다.
정치적으로도 남독일의 바이에른지방은 프로이센에 흡수되기 이전부터 하나의 독립된 왕국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바이에른지방은 자신을 바이에른 자유국이라고 부른다)
바이에른의 왕족들은 오스트리아 왕족들과 인척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게 바로 도나우 연방.
지도에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남독일국가 혹은 도나우연방의 구상안인데
처칠은 오스트리아 마지막황태자였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라는 인물을 다시 왕위에 앉히고
1차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의 영토와 남독일을 합친 대국을 만들려고 했다.
(지금의 남독일, 오스트리아와 동유럽의 체코,헝가리,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합친 크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
3.처칠의 의도
여기서 오스트리아도 전범국인데 왜 이렇게 후한 대접을 하지 ?
이런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데 처칠의 진짜 의도는
전쟁이후 중유럽에 열강국을 만들어서 소련이 동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었고,
(2차대전이후 동유럽에 공산화됬던 것을 생각해보자)
프랑스가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고 막으려고 한 걸로 생각된다.
4.물거품으로 끝난 처칠의 꿈
처칠의 제안은 루즈벨트와 스탈린에게 들어먹히지 않았다.
루즈벨트는 강한 독일을 원하지 않아서였는지 독일을 조각 조각 해체되기를 원했었고,
독일을 조각조각 나누려고 했던 루즈벨트의 제안
스탈린은 스탈린 나름대로 동유럽의 공산화를 원했기 때문에
독일을 남과 북으로 나누길 원했던 처칠의 제안은
그 이후의 회담부터는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이후 독일은 통일됨.
[0]
캥거루뒷차기 | 22/04/24 | 조회 3[0]
모든걸잃은자 | 22/04/24 | 조회 43[0]
이준석풀발3cm | 22/04/24 | 조회 13[0]
레논존 | 22/04/24 | 조회 7[0]
이나라는망했다 | 22/04/24 | 조회 1[0]
자유연금술사 | 22/04/24 | 조회 7[0]
보둔지덕 | 22/04/24 | 조회 25[0]
문재앙매국노 | 22/04/24 | 조회 18[0]
5년전투쟁 | 22/04/24 | 조회 6[0]
대일본천황폐하만세 | 22/04/24 | 조회 9[0]
yellow00 | 22/04/24 | 조회 6[0]
Komp | 22/04/24 | 조회 7[0]
불멸의철갑궁 | 22/04/24 | 조회 33[0]
왜사냐0 | 22/04/24 | 조회 18[0]
samkok | 22/04/24 | 조회 25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