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본격적으로 한반도 북방에 중공군이 나타남으로써 유엔군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전쟁에 또 하나의 불씨가 추가되었고 당연히 이 중공군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엔군은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음
그 대안 중 하나가 유엔군이 지금까지 확보한 영토 상당수를 보전하는 선에서 일단 진격을 멈추고 휴전을 제안하는 것이었는데, 미군에 이어 유엔군의 중요한 일익 중 하나였던 영국군의 합참이 내놓은 방안이 대표적 예시
영국 합참은 중공군이 개입해버린 이상 압록강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만주에 대한 폭격과 중공군과의 대규모 결전을 상정해야 한다 봤는데, 이렇게 전쟁이 확대되면 소련까지 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이 세계대전 규모로 확대될 것을 우려. 그래서 11월 13일에 워싱턴에 '정주-덕천 선을 기반으로 한 휴전안'을 제출
대충 그어본 영국 제안 휴전선인 정주 - 덕천 선.
(지도 처: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pnhH&articleno=332)
북위 40도선과 얼추 비슷한 이 선(영국은 '한반도의 목'이라고 표현함) 에서 일단 유엔군은 진격을 멈추고 중공군에게 휴전을 제안하고,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지금의 DMZ처럼 일정 넓이의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이를 중국이 포함된 유엔위원회의 감시 하에 둠으로써 휴전을 이끌어낸다는 방안
이 방안은 적어도 압록강 쪽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겠다는 이전 미국측의 방안보단 합리적이었지만, 어쨌든 당시 유엔군은 이 선보다 위에 있었기에 일정 수준은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었음
또한 11월 중순부터 중공군의 활동이 약간 소극적으로 변한 것도 유엔군에게 자력으로 압록강 도달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주어 영국의 이 제안은 결국 반려됨. 실제로 11월 21일에는 맥아더에게 '압록강이 보이는 능선에서 진격을 멈추라'라는 명령이 하달되어 아예 대놓고 압록강까지 밀고 갈 작정
그러나 중공군은 단지 그 당시 최종적인 공세를 위해 산악지대로 은밀히 숨어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을 뿐 절대로 한반도에서 물러간 게 아니었던거. 그리고 알다시피 11월 말부터 다시 공세에 들어간 중공군을 막지 못하고 12월 초에 평양을 넘겨주고, 1월엔 아예 서울까지 뚫려버린 건 다들 아는 사실
결국 한순간의 공명심 때문에 그나마 합리적인 선에서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게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선을 중공군이 받아들일 가능성 자체가 낮은 걸 생각하면...
출처: 원태재, 『6.25전쟁과 영국의 역할』, 『군사』,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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