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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미 | 26/10/18 13:33 | 추천 0 | 조회 27

열 살의 봄, 저는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 3 +1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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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ttps://humoruniv.com/pds1429031
2화 https://humoruniv.com/pds1429071
혼혈이라는 건 가끔 참 묘합니다.

한국 사람이 제 일본어를 들으면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순수 일본인이 듣기엔 어딘가 조금 어색했습니다.

일본 사람이 쵸로미의 한국어를 들으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잘했지만,
원어민이 들으면 말투에서 어색한 부분이 느껴졌을 거예요.

두 언어를 모두 할 수 있었지만,
어느 쪽에서든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아, 물론 지금은 좀 다릅니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어는 정말 자연스러워졌고,
한국어는 읽고 쓰는 건 괜찮지만
말할 때는 발음이 제법 어색해요.

아무튼 일본 초등학교에 처음 갔던 쵸로미는
일본어를 못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딘가 조금씩 달랐어요.

말의 뜻은 알아듣는데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이질감도 있었고,
아이들과 보이지 않는 거리감 같은 것도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어요.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등학생 사는 곳은 다 똑같았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어요.
포켓몬이었어요.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여서 포켓몬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누가 어떤 포켓몬을 좋아하는지,
어떤 기술이 좋은지,
게임에서 어디까지 갔는지.

옆에서 듣고 있는데
쵸로미도 너무 잘 아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슬쩍 끼어들어 한마디를 했어요.

그러자 한 여자아이가 쵸로미를 쳐다보며 물었어요.
「ポケモン好きなん?」
(포켓몬 좋아해?)

“응!”

「何が好き?」
(뭐 좋아해?)

그다음부터는 쉬웠습니다.
어제까지는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러운지 고민했는데,
포켓몬 이야기를 할 때는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좋아하는 포켓몬이 뭔지,
누가 더 강한지,
게임을 어디까지 했는지.

한국에서도 하던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일본 아이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조금 지나자
쉬는 시간만 되면
자연스럽게 같이 놀게 됐어요.

처음에는 여자아이들과
게임이나 캐릭터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고,
남자아이들과 친해진 계기는 조금 달랐어요.
운동이었습니다.

쵸로미는 원래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운동을 할 때는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었어요.

같이 뛰고,
공을 던지고,
잡고, 쫓아다니면 됐으니까요.

어느 날 체육시간에 달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쵸로미를 보면서 말했어요.

「え、めっちゃ速いやん!」
(뭐야, 엄청 빠르잖아!)

괜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때부터였는지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공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같이 곤충도 잡으러 가고,
누가 더 빠른지 괜히 시합도 했어요.

그러다 보면
쵸로미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누구 엄마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누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쵸로미에게
「韓国ってどんなとこ?」
(한국은 어떤 곳이야?)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今日何する?」
(오늘 뭐 할래?)
라고 물었습니다.

쵸로미는 그 변화가 좋았습니다.
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온 혼혈 아이’가 아니라,

그냥 포켓몬 좋아하는 애.
달리기 빠른 애.
같이 게임하는 애.
같이 놀 수 있는 애.
그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면
누군가 먼저 저를 불렀고,
쉬는 시간이 되면
같이 놀 친구가 생겼습니다.

급식을 먹을 때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사람이 있었고,
학교가 끝나면
다음 날 무엇을 할지 이야기했어요.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수십 명의 아이들이 저를 바라보던 시선도
어느새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은 반 아이들이었으니까요.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물었습니다.
「学校どうやった?」
(학교 어땠어?)

일본에 온 직후에는
늘 “괜찮았어.”
정도로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답이 길어졌습니다.
“오늘 체육시간에 있잖아.”
“누구랑 포켓몬 했는데.”
“점심시간에 누가 넘어졌거든?”
엄마가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계속 떠들었어요.

아마 엄마도 그때쯤 알았을 겁니다.
이제 딸이 정말 괜찮아졌다는 걸요.

그 시절의 쵸로미는 걱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가 있었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있었고,
내일이면 또 놀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혼혈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런 복잡한 문제는
그때의 쵸로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어떤 포켓몬을 키울지,
내일 체육시간에 뭘 할지,
쉬는 시간에 누구랑 놀지가
훨씬 중요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참 단순했고,
그래서 참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어요.
말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친구들도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까이 가보니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게 같으면 이야기를 나눴고,
같이 뛰다 보면 웃었고,
매일 같이 놀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어요.

열 살의 쵸로미는 그렇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생기자 낯설었던 일본도
조금씩 제 일상이 되어갔어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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