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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하게 되기까지
2023년 10월
10여 년간의 홀로서기에 실패하고 지방으로 돌아와 일을 하게 되었다.
잔기침이 많았는데, 청결하지 못한 집에 살아서 그러려니 했다.
맡게 된 업무는 여러 현장에서 에어컨 청소 등의 작업을 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2024년 1월
코로나에 걸리고 기침이 많아지게 된다. 두 군데 병원에 갔는데도 기침이 잡히지 않아서 2차 병원에 갔다.
천식 진단을 받고 흡입형 약을 받았다. 그 약으로 기침이 어느 정도 잡히게 되었다.
2025년 8월
업무 회의 중에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기침이 심했다. 이후 다른 현장 한 곳을 들렀는데도 기침이 줄지 않았다.
병원에 들렀더니 입원해야 한다고 하더라. 2주 정도 입원했다.
2025년 9월
퇴원하고 나서도 기침이 계속됐다. 현장 한 곳에 견적을 보러 가다가 기침이 심해져 길에서 토하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으로 전원 갔다.
현장을 보다가도 기침이 심해지면 구역질이 났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사서 들고 다녔다.
2025년 10월
일하는 중간에 기침이 나오면 구석에 가서 토하고 와서는 다시 일했다.
2025년 11월
사무실에 나가서도 기침하고 토했다. 11월 중순에 대학병원에 검사하러 갔는데, 검사하다가 똑같이 기침하고 토하는 증상이 있어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중에도 그런 증상이 몇 차례 있었다. 입원한 지 2주 차 정도부터 기침하면서 손을 떨기 시작했다. 주로 밥을 먹을 때 그런 증상이 있었다.
2025년 12월
별다른 진전 없이 퇴원했다. 하루에 약을 서른 알 정도 먹었다.
누워서 컴퓨터를 할 때는 손이 떨리지 않았는데, 주로 누군가와 대화할 때 기침하고 손이 떨렸다.
2026년 1월
서울로 병원을 다녔다. 어디서는 천식이 아니라고 하고, 어디서는 천식이 맞다고 하고, 어디서는 과호흡이라고 해서 어려웠다.
신경과 진료도 받았다. 약을 먹고 괜찮았는지, 안 괜찮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비슷했던 것 같다. 담배 연기를 맡으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정신과 진료도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많이 낮다고 한다.
2026년 2월
진료를 받고 돌아와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또 증상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밖으로 나와 기침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에게 보여 드리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응급실에 가서 안정제를 맞고 괜찮아졌다. 잠깐은.
2026년 3월
입원 권유를 받게 되었다. 3월 11일 입원하게 된다.
이후 4월 9일까지, 폐쇄병동에서의 하루하루가 시작된다.
-폐쇄병동에서의 생활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면 입원결정서를 작성하게 된다. 나는 자의입원으로 입원했다. 처음 진단명은 적응장애였다.
병동에 들어가서는 소지품을 반납하고, 다른 병동에서처럼 간단한 내력을 작성하게 된다.
내가 생활하게 된 폐쇄병동은 남자 4인실 2개, 여자 4인실 1개, 여자 6인실 1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병동에 들어갔을 때, 내가 있던 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그 아이와 면담을 진행했다. 귀신을 본단다. 퇴원시켜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단다.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나도 면담을 진행했다. 증상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치료하기로 했다.
병원 공용 공간에는 공중전화기 2대와 루미큐브, 장기, 바둑, 읽을거리, TV, 탁구대, 러닝머신, 자전거 등이 있었다.
일주일 중 5일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참여는 자율적이었다.
3월 16일, 감정 일기를 받았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나오는 칭찬 일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감정일기를 시작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
덜 졸릴 때 진득한 시간으로 보자,
같은 병실이라는 공간에서도 사람이 오고 간다.
내가 네게 오래 들르지 않아 너는 만취인으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인사불성인 네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어.
오랜만이다 내가 떠나보낸 나야, 네가 떠나간 너야.
우리가 서로 해치려 하진 않았었는데, 같이 있으니 꽤 아프다.
너의 출입 이후로 자는 시간이 늘었어. 다친 너를 보살피기엔
나 또한 그러하여 겨를이 자주 없어.
네가 더 쓰라리지 않길 바란다. 현재는 너를 재우는 방법 말고는
잘 모르겠다. 물어보는 상상은 많이 해.
자주 보자. 전에도 했던 대사 같은데,
잘 보자. 앞으로도 하면 따듯할 대사일까? 저녁에 또 보자.
저녁밥은 안 왔지만 너도 왔고, 나도 있네, 사족을 달자.
담당 선생님 다크서클이 진하다. 걱정스럽다.
병실에 다른 사람은 다 떠났다, 또 누군가 오겠지,
설렘도, 벅참도, 반가움도 아닌데, 아직은 Null이다.
병동 생활에서는
내 손을 만져주는 할머니가 있다. 종교인이시다, 손을 떨면 물러가라 하면서 손을 때리신다. 자주 만져주신다. 누군가 손을 얹고 있으면
떠는게 덜하다.
3월 19일
오늘 입원한 또 다른 학생이 부모님과 통화하며 퇴원시켜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단다.
그 아이들은 그럴 마음이랑 용기가 있는걸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3월 21일
오늘은 노래 시간이 있다. 한시간 정도 남짓, 원하는 사람들이 방에 모여 노래를 부른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나는 버튼 누르기를 양보했다. 다른 환자들이 더 간절해 보여서.
병동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많다, 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쉽다.
병동에서는 다들 나의 농담을 받아준다. 가지고 있는 루미큐브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가끔 환자들이 난동을 부린다. 전화기를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지른다. 나의 병동 동료들과
여기 선생님들이 가끔 아프더라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3월 22일
머리를 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빙글 빙글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이 있다.
혼자 울다 웃다 한다.
3월 23일
침대에선 잠을 잘 수 없어서 매트리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잠을 청한다.
치매 어르신이 우리 병실에 왔다. 자꾸 행동을 까먹고는 반복하신다,
전화를 수십차례 하러가거나, 수십차례 씻으러 가거나.
3월 24일
어제의 나를 보는 듯한, 상태가 안좋은 환자가 있어 간호사님께 말씀드렸다. 신경 끄란다.
내가 어제 그럴 때도 간호사님이 신경 끄랬단다.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오지랖일까?
3월 25일
일주일 더 있어보고 퇴원을 하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퇴원이 겁나서 일부러 이상한 행동을 하는건가? 나는 나이롱 환자인가?
3월 27일
침대에서 자는데 성공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구나.
심한 손떨림과 기침에서 희미한 손떨림으로 줄었고 기침은 사라졌다.
잠도 잘 잤다. 운동을 시작했다. 자전거 3km씩 하루 여섯번, 탁구도 자주 친다.
3월 28일
병동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이별하고, 나는 그럴때 아파한다 겪어도 쉬이 무뎌지지 않는.
가족 면회가 끝나고 다른 환자가 나에게 놀자고 다가왔다, 어머니가 보셨을듯, 고마웠다. 환자에게도 어머니에게도.
23일에 온 치매환자는 이장님이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한다. 스스로 덜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아픈 사람을 괴롭힌다. 치매 환자는 금방 잊고, 나는 그 환자가 되어 아파본다.
3월 30일
감정일기 한권을 다 채웠다,
"두번째 감정일기를 시작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
안녕! 너에게 두 번째 쓰는 편지네
내 생각엔 너랑 꽤 친해졌어, 네가 언제 불안해하는지
우울한지, 어떻게 하면 그런 기분이 풀리는지, 네가 언제 웃고 기뻐하는지, 하고 싶은걸 해 라는 나의 오랜 물음에
이렇게도 답할수 있어보여. 나는 너를 더 알아볼래.
네가 나를 아프게하든 웃게하든 우리는 더 나아질꺼야.
고마워, 그동안 잘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나를 기다려줘서, 벚꽃이 예쁘게 피었고 병동의 사람들은 웃는날이 더 많아졌어.
우리도 그러자. 자주 예쁘고 웃자.
4월 2일
내가 자살시도를 했었었구나, 인지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지.
누군가에게 말 못할 이야기들을 선생님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적었다.
환자 한명에게도 이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해해주네, 고마웠다. 시원도 하고.
그림그리기때 그린 그림을 한 환자가 가져왔다. 시를 쓰고 싶다고, 알려달라고 했다.
그림을 보고 마음이 가는대로, 쓰고 싶은대로 쓰면 돼.
진지하게 시를 쓰는 모습이 예뻤다. 제목을 비워둔 시가 하나 세상에 나왔다.
4월 3일
팔을 긁고 꼬집어댔다, 떨림, 기침, 구토, 안정제를 먹고도 한참을 울었다.
우울이 나를 난도질하고 지나갔다.
4월 4일
어제 감정은 지나가고, 운동을 하고, 푹 자고,
면회에서 어머니가 같이 살자고 하셨다. 사랑한다고 표현해봤다. 어머니는 서툴었고, 나는 열심히 했다.
한마디가 참 어려운 일이다.
4월 5일
낮에 새로온 40대 환자 통화를 도와드렸다. 자살시도로 입원한 환자에게는 같이 환기할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즐거운 행동들을 했다. 금요일 토요일에 입원한 환자가 선생님을 보는게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 영향을 받으면 어떻게하지?
의문이다.
4월 7일
4월 9일에 퇴원이 결정되었다.
4월 8일
걱정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같은 나이의 학생이 들어왔다. 서로 친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애를 썼다.
아프게 만났지만 서로로 인해 웃음을 많이 찾았으면 해.
4월 9일
퇴원하고 바다를 먼저 찾았다. 비가 살짝 내리는 바다. 집에 돌아와 아빠를 만났다. "축하해." 또 상태가 안 좋아졌다. "갈게." 방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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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우는 일 없이 웃는 일만 가득하길.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침부터 눈물나네 힘내세요
힘내
글을 차분하게 잘 쓰시네요 배려심이 많으신 분 같아요
역시 폐쇄병동은 탁구지!!
그래서 병명이 뭐임? 뭔데 기침이 그래 심하게 났을까
해리[전환]장애 라고 합니다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나는 케이스라네요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