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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ear.. | 18/12/27 13:00 | 추천 222 | 조회 2488

(리뷰)희주는 여전히 진우를 모른다. +148 [51]

디시인사이드 원문링크 https://m.dcinside.com/view.php?id=superidea&no=168085

재회는 사고였다.

그날, 진우는 'Emma'라는 간판 하나면 충분했을 것이다.

진우는 애초에 희주의 공방에 들르면서 희주를 만날 거란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다. 희주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차를 타고 떠날 참이었으니까. 세주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로 미뤄두었던 다짐을 잊을 만큼 너무 가까운 희주와의 거리가 심리적 결계를 무너뜨린 것뿐이다. 아마 깔끔한 분위기의 동네와 집만 겉에서 살펴보게 되더라도 희주가 잘 지내고 있다는 기분만 들면 만족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희주에게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 희주에게 고통일 뿐인 세주를 찾는 일은 희주 아니라도 진우에게 이미 차고 넘치게 절박한 일이었으니까.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빴다고 해야 할까. 진우의 떠나는 뒷모습이 희주의 시야에 붙잡힌다. 그렇게 1년 만에 재회하는 진우와 희주. 희주는 냉장고에 물건들을 차분히 넣을 수 없을 만큼 잔뜩 긴장한다. 화장실에 가서 비에 젖은 머리를 정돈하고 심호흡을 하고 진우와 대면한다. 가볍게 기타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여기서 기타나 배워볼까. 별 뜻 없이 던지는 농담에, 묘하게 어두워지는 희주의 표정을 진우는 예민하게 캐치한다. 다시 가족들 얘기를 꺼내며 희주에게서 세주 걱정을 붙들어 매 주려는데 희주 쪽에서 사전 예고 없이 날아와 진우 앞에 터지는 폭탄. .

"왜 시치미를 떼세요?"

잠시 동안의 정적. 다시 시치미. 이어지는 희주의 합리적인 의심들. 사실은 의심이 아닌 진실들. 더 피할 수 없게 되자 진우는 마침내 1년간의 거짓말을 멈추고 진실을 말한다. 세주는 사라졌다고.

1년 전 진우가 그라나다에 머물다 간 날들에 대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희주는 당연히 분노한다. 원망의 언어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망의 말들 곳곳에 희주가 지난 1년간 진우에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진짜 걱정했고 그렇게 떠나 버려서 마음이 너무 아팠으며. 1년 내내 생각했다고. 해명 또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 진우 역시 1년 전에는 차마 표현조차 못했던 마음들을 꺼내고 만다. 메일을 왜 보냈냐는 질문에는 당신이 걱정할까 봐. 오늘 왜 온 거냐는 질문에는 보고 싶어서.

잘못한 사람과 추궁하는 사람, 들킨 사람과 알게 된 사람의 구도 하에서 원망하고 해명하는 동안, 지난 1년 당신을 걱정했고 많이 생각했고 그리워 했노라고 서로의 진심을 오롯이 전하고 만다. 세주의 실종은 두 사람을 사납게 갈라 놓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진우와 희주는 1년 전을 포함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느낄만한 여유가 없었다. 동생을 찾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무너진 희주에게나, 그걸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진우에게나, 이 모든 것이 지난 1년 동안 그들이 꿈꾸던 재회는 아니었을 테니까.

비난의 핵심은 진우가 세주의 실종을 모르도록 숨기는 바람에 찾아볼 타이밍을 놓쳤고 호스텔 계약이 사실은 라이센스 계약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게 했다는 점인데, 타이밍의 문제는 진우가 1년 동안 경찰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세주를 추적해 왔다는 점에서, 정황상 경찰에 신고를 안 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센스 계약은 어차피 액수의 문제라 희주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주는 진우를 용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주의 절망은 단순히 진우에게 속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분노의 본질은 희주가 그런 진우에게 진심을 다 했고 그런 진우를 사랑했다는 데 있다. 세주의 답장을 보낸 게 진우라는 걸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짐작을 했음에도 다시 만난 진우를 처음 봤을 때 낫지 않은 진우의 다리를 보고 희주는 마음부터 아팠으니까. 진우에게 이 집에서 나가라고, 다시는 연락도, 찾아오지도 말라고 했지만 실상은 1년 내내 진우를 생각했던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벌인 셈이다.

동생의 실종은 알았지만 희주는 여전히 아는 게 없다. 희주는 진우가 희주를 위해 숨긴 사실이 또 있다는 걸 모른다. 자기 동생이 만든 게임 때문에 진우가 다리를 절게 됐고 지난 1년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사투를 벌여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희주는 의도치 않았던 너무 이른 재회 이전에 진우가 희주에게 가기 위해 차곡차곡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진우는 세상이 하는 그 어떤 오해에도 불구하고 미친 세상의 룰에 따라 필사적으로 살아남고, 이혼을 마무리하고, 세주의 흔적을 지우며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마지막 퀘스트, 희주에게 하고 싶었던 말. 거짓과 변명에 지쳐있던 진우의 삶에, 한줄기 빛이었던 당신의 의미. 언젠가 당당하게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진우가 무슨 일들을 겪어 왔고 겪고 있는지 아직도, 희주는 진우에 대해 아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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