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두 종파의 사이가 험악한 이유.reason
무함마드
평가를 떠나서 이슬람의 예언자이자 한 시대를 주물렀던 주연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 양반이 영원한 잠에 들면서 "지도자" 자리에 문제가 발생한다.
후계자를 다뤄야 했는데 무함마드는 물론 예언자로서 종교지도자지만
동시에 무력으로서 아라비아를 통일한 세속 정복 군주기도 했다.
이슬람의 고질적인 문제이자 약점 두 가지가 여기서 기인하는데.
교리 자체가 선지자의 군사를 동반한 정치력 확보 전쟁을 담고있기에
경전이면서도 일정수준의 폭력성을 언제나 동반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 할것은 두 번째.
'세속 지도자(군주)' / '종교 지도자(교황)'의 작위를 무함마드가 한 손에 꽉 쥐어 결합한 상태에서 사망하여 붕 떠버린 것.
이슬람권이 유달리 정교분리가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중세 리즈시절 교황청처럼
"세속+종교 지도자"라는 너무나 거대한 타이틀이 붕 떠버린 상태인만큼
'어떻게 선정할거냐?'를 놓고 두 파벌이 살벌하게 경쟁한다.
하나는 "종교지도자로서 가장 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는 자가 다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는 "세속 군주로서 혈통과 가문에 의거해 세습하여야 한다" 라는 입장.
전자가 수니파
후자가 시아파
결국 전자가 치열한 신경전과 정치력, 물리력 싸움 끝에 승리하고,
무함마드의 사위 + 최초의 남성 무슬림으로서 공을 많이 세웠던 '알리'는 견제를 꾸준히 당하며 정치 일선에서는 반쯤 물러난다.
문제는 이슬람의 3대 지도자를 세금 개혁과 자기 친족 우대등으로 불만이 많던
"민중 폭도들이 암살하면서" 알리를 추대해버린 것.
이에 복수를 천명한 3대 지지자, 우마이야는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바로 들이박아버리고
이 와중에 알리는 협상에 반발한 내부 반대파에게 암살 당한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더 심각해지는데...
알리의 후계자는 어찌어찌 우마이야와 군사적 대립을 이어나가지만
결국 패배했고 그 휘하 세속 군주 지지자들은 피난 가다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다
즉, 적어도 수니파가 승리했으므로 "칼리파"라는 작위는, 수니파의 주장대로
1) 종교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므로
2) 민중에 의하여 선출되는 작위로 결정된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우마이야는
"칼리프 선출에 군사 대립이 많았죠? 이제부터 혈통에 따라 세습합니다~" 선언하고
그대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세습에 성공한다(...).
지들이 밟아놓고, 밟은 상대측 논리로 세습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학살까지 당한 시아파는 수니파를 향해 이를 뿌득뿌득 갈수밖에 없었고
이 뿌리부터 단단히 꼬여버린 관계는 [여기 적기엔 너무 존나 많은일]들이 있던 끝에
후일 페르시아 / 아라비아간의 역사적-지역적 감정과 결합까지 하면서 현재 중동 난장판으로 이어진다.
오죽하면 중세~근대까지의 긴 시간동안 (실제 차별과는 별개로)
어쨌든 수니파의 공식적인 유대-기독교를 향한 입장은 "종교세만 내면 백성임 ㅇㅇ" 이었는데
수니파의 시아파를 향한 태도는 그냥 짤없이 "죽여라"였다.
심지어는 지금도 수니파랑 시아파를 오해하면 은근히 불쾌해할거다.
굳이 종교가 아니라도 철학이나 정치등에서도 적용되는 인간 본질에 가까운 면모지만
인간의 사상은 적이 있으면 극단화하는 면이 존재하는지라 이런 면모도 현대 이슬람의 퇴보에 영향을 가했다.






기독교도 비슷한 시기에 아에 이교보단 이단을 더 죽이고 싶어했듯이 인간의 행위는 비슷한듯
우마이야 저 색기는 그냥 권미새 같음
꾸란을 찢어서 상대방이 공격을 주저하게 하거나
무함마드 마누라(말이 좋아서 마누라지 늙은 남편 죽이려 한 암살자)랑 편먹어서 대립한 거 하며...그냥 중동판 조조? 답글
다른 종교도 안그런건 아니지만
기독교고 이슬람교고 아브라함계 종교가
자기네들끼리 오지게 싸우는거 같음
수니와 쉬아도 무시하고, 모두가 칼리프 가능하다고 본 애들은 오만에 있는 이바디파(수니와 시아 둘다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