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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 26/10/12 00:00 | 추천 11 | 조회 1391

전세계를 속인 나치의 기만작전 +3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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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속인 나치의 기만작전


전세계를 속인 나치의 기만작전_1.webp

▲제2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역에 도착한 유대인 수용자들


나치의 끔찍한 인종차별은 당시에도 전세계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끔찍한 학살과 불법적인 생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종전이 되기 전까진 알지 못했고 국제 적십자사에서도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른 열강국가에서도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었지만 정부가 직접 특정 인종에 대한 국가적 폭력을 주도하고 국민들에게 소수 인종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심과 범죄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나치 스스로도 자신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인종적 순수함을 지키는 행위라고 포장하고, 정당화하기 급급했고 자신들의 범죄 행위는 문제가 없다고 자위하기 바빴지만

자신들도 이것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행위인지 인지하고 있었는지 유대인의 집단학살이 결정되는 반제회의에서도 나치는 '학살'이라는 단어 대신 '최종해결책'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을 정도였다


나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절멸수용소와 강제수용소를 건설하고 그 곳에 나치의 이념에 반대되는 자들을 집어넣고는

죽을 때까지 착취하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숭용자들을 가차없이 학살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달한 1944년, 나치는 눈에 뵈는 것도 없는건지 끔찍한 집단학살 행위가 경각에 달했고 국제 적십자사에서도 이를 두고만 보지 않고 직접 행동을 개시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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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지엔슈타트 게토의 거리 풍경


나치는 자신들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 알량하게나마 남아있는 도덕적 명분을 상실하고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될 상황을 두려워했고

나치는 적십자사의 방문에 맞춰서 전세계를 속일 기만작전을 꾸미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적십자사의 귀빈들을 맞이할 장소로 테레지엔슈타트의 게토가 선정되었다


테레지엔슈타트(현재 체코의 테레진)의 게토는 자신들의 절멸행위가 벌어지지 않는, 그저 소수민족들이 생활하는 집성촌처럼 꾸미기 위해서

가짜 상점, 가짜 병원, 가짜 학교, 가짜 극장 등 게토 수용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기 시작했고

깨끗한 거리와 번듯한 시민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병자, 장애인, 고령자 등 7,503명의 수용자들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로 보내 청소를 하는 등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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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적십자사를 위한 나치의 '미화 활동'을 비판하는 게토 수용자 베드리히 프리타의 풍자화


이 이상적인 보금자리에 설 자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저명한' 유대인 수용자들이나 비유대인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등 뒤에 총칼을 들이밀고 연기를 하라는 나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적십자는 속아넘어갔다. 당시 게토의 수용자이자 랍비였던 레오 배크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었던 국제 사회마저 기만당하자 잊혀지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 회고했다


거대한 게토 구역 하나가 통째로 나치의 연극의 장이 되어 모든 유대인 수용자들이 나치의 명령대로 웃고, 마시고, 떠들었다

나치는 이 시기에 게토 내부로 관현악단을 파견하여 수용자들을 위한 공연도 개시하는 등 적십자에게 '게토는 위험한 공간이 아닌 안전한 분리구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열린 음악회


적십자는 나치의 인종탄압을 우려하면서도 나치의 포템킨 마을(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알맹이는 없는 허례허식을 비꼬는 관용어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떠나자 나치의 탄압과 학살은 또 다시 시작되었다. 소련군 진격해오자 독일군은 자력으로 걸을 수 있는 자들을 다른 수용소로 이감시켰고, 걸을 수 없는 병자들을 학살했다

1945년 5월 8일,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테레지엔슈타트는 약 144,000여 명의 사람들이 수용되었고 약 33,000여 명이 게토에서 사망하고 9만 여명이 절멸 수용소로 끌려갔다


전후 나치의 전범들은 자신들이 조작한 게토의 풍경을 보고 작성된 국제 적십자사의 보고서를 증거로 들어 무죄를 주장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했으나

그것을 믿어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나치의 전범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국가 폭력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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